갈매기 마을 이야기
현서의 작은 손이 조각가의 등을 움켜쥐었어. 잠에서 깬 모양이었지.
“집에 거의 다 왔다.”
조각가는 투박하게 있을지도 모를 현서의 잠투정을 달랬어. 현서는 뒤통수 위에 닿는 철제가 우산 살이라는 걸 알아차렸어. 현서를 업느라 양손을 쓴 조각가가 우산을 들 정신까진 없었던 모양인지, 우산을 자신의 이마에 슬쩍 걸쳐서 현서를 우산으로 덮고서 걷고 있었어. 조각가가 큰 나무 밑을 지나가자, 나뭇잎에 맺혀 있던 빗방울들이 한꺼번에 쏟아졌지. 후두두두 하며 우산 천이 공격을 받자 현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주변을 두리번거렸어.
“아저씨, 저 오래 잤어요?”
“일어난 김에 아저씨 우산 좀 씌워 줄래? 땅이 질어서 현서가 걷기엔 힘들 거 같으니, 아저씨가 계속 업고 가마.”
현서는 조각가의 이마와 오른쪽 상체 앞에 걸쳐진 장우산의 대를 집어 들었어. 조각가의 시야를 너무 가리지 않으면서 자신의 머리도 보호할 수 있을 정도로 균형감 있게 우산을 들었지.
“아저씨, 갈매기가 문을 열어줘서 아저씨 방에 들어간 후에, 분명 조각 반죽도 보고, 갈매기도 달래고, 바빴는데 분명히, 저 언제 잤어요?”
조각가는 바람 빠진 휘파람 소리를 내면서 현서의 입을 단속했어.
“작업실에서의 일은 고마웠다. 현서가 없었더라면 아저씨가 악몽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을 것 같구나. 오늘 일도 어디까지나 우리끼리의 비밀로 하자꾸나. 괜찮지?”
현서는 머쓱한 듯 조각가의 등을 손가락으로 두드렸어. 검지로 ‘네’ 하는 글씨를 써 내려갔지.
“신나는 것이 생기면 저도 모르게 떠들게 되어요. 할아버지가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 저도 모르게 또 그랬네요.”
“그만큼 현서가 아저씨의 미술 숙제에 관심이 많은 거지. 아저씨 어깨가 무겁구나.”
“제가 주물러 드릴까요? 할아버지한테도 자주 해드려요 저!”
조각가는 대꾸하지 않았어. 평소와 다른 무거운 분위기에 현서는 한동안 우산을 들고서 바닥만 내려다봤지. 그러다가 역시 침묵은 견디기 어렵다는 듯이 다시 조각가에게 말을 걸었어.
“저도 제가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어요 아저씨.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가 생긴 건 처음이에요. 처음엔 비누 조각했던 게 재밌어서 아저씨의 미술 숙제에 제가 조각했던 비누 조각을 비교해 보는 재미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냥 그런 마음은 아닌 거 같아요. 생각해 보니 처음이에요. 무언가 만들어지고 빚어지는 걸 처음부터 지켜본 게. 그래서 그런 걸까요?”
“그럴지도 모르겠구나.”
“아저씨.”
“응?”
“죄송해요. 놀이터에서 애들한테 광장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바람에 제가 아저씨 방에 약속도 없이 나타났고,”
조각가는 잠에서 깬 이후로 땅 아래로 흘러내리려는 현서를 다시 고쳐 업었어. “괜찮단다,” 하는 말 대신 현서를 바로 세워주었지. 이전보다 빨리 걷기 시작했어. 비바람이 거세지는 와중에 이장님 댁 지붕이 눈에 들어오자 조금 더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했대. 현서는 말없이 자신을 안고 걷는 조각가의 왼쪽 어깨에 턱을 괴고 한껏 체중을 싣고서 업혀 있었어.
“그런데 아저씨, 아까 왜 그러고 계셨던 거예요?”
저 멀리 이장님의 모습이 보였어. 하숙집에서 출발할 때 조각가가 문자를 넣어둔 덕에 대문 앞까지 마중을 나와 있던 거였지. 조각가는 종종걸음으로 뛰었어.
“현서야.”
“네?”
“악몽을 조심하렴. 창문 꼭 닫고 이불 꼭 덮고 자려무나.”
조각가는 이 말을 끝으로 이장님의 이름을 부르며 현서를 등에서 내려 주었지. 현서는 조각가의 말을 좀 더 풀어서 듣고 싶었지만, 천둥소리가 헤어짐과 귀가를 재촉했지. 조각가는 현서에게서 우산을 넘겨받자마자 꾸벅 인사를 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지. 현서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서 그 모습을 잠깐 동안 보다가 집으로 들어갔지.
조각가는 손에 쥐고 있던 우산을 다시 어깨에 걸쳤어. 고개를 떨궜지. 비 내리는 방향으로, 갈매기가 안겨 있었을 품 쪽으로. 섬뜩하고 공허한 눈빛을 아래로 쏟아냈어. 만약 갈매기가 안겨 있었더라면 처음으로 조각가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을지도 모를 정도였지. 그랬더라면 아마 갈매기의 물갈퀴가 조각가의 옷에 진흙덩이를 잔뜩 묻혔겠지. 조각가는 더럽혀지거나 상처를 입겠지. 하지만 그만큼 갈매기도 다쳤겠지. 무서웠겠지. 그런 생각을 들자 조각가는 양팔을 더 세게 움켜쥐었어. 이윽고 갈림길에 들어섰지. 하숙집으로 가는 길 대신 해안가 산책로로 향하는 길로 들어섰어. 폭풍우 치는 밤이었는데도 말이지. 설마 그날 빼먹었던 산책 생각이 났던 걸까?
지금 생각해 보니, 악몽 때문이었던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