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 마을 이야기
집으로 들어가는 그 짧은 시간에 이장님은 현서를 토닥이기 바빴어. 조각가 옆에만 있으려 하지 말고 일단 학교에 다녀오라고 회유 중이었지. 여름학교에 가서 미술 숙제 열심히 한 거 선생님께 보여드려야 하지 않겠냐는 말에, 현서는 울어서 눈이 팅팅 부은 얼굴을 보면 친구들이 놀리지 않겠느냐고 반박했지. 이장님은 다른 수를 썼어. 조각가 아저씨는 할아버지가 옆에서 지켜볼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고. 그러자 현서는 조각가와 할아버지의 얼굴을 한 번씩 번갈아 보더니 “알았어요,” 하고 시무룩하게 말했지.
“할아버지, 아저씨를 잘 봐줘야 해요. 아저씨, 할아버지 말 듣고 있어요!”
하지만 말은 그렇게 했어도 한참 동안 얼룩덜룩한 얼굴로 조각가의 옷소매를 놓지 않으려고 했어. 붙잡아주는 손이 없다면 곧 주저앉을 사람처럼 보였거든. 조각가는 여전히 두 눈을 꾹 감고 있었지. 이장님은 가까스로 현서의 손을 조각가의 옷소매에서 떼 놓으며 말했어.
“현서야. 저기 금귤 아저씨가 학교까지 태워 주실 수 있을 거다. 그 아저씨 실력으로는 아직 저기 골목 어귀에 있을지도 모르니, 어서 가 보거라. 그러면 지각은 안 할 거야.”
현서가 붙잡던 조각가의 옷소매를 이장님이 대신 잡았어. 현서에게 일부러 보여주기 위해서였지.
“이것 봐라. 할아버지가 이렇게 꼭 붙잡고 있을 테니, 안심하고 다녀와.”
현서는 어기적어기적 움직였지.
“아저씨, 학교 다녀올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조각가는 고개를 끄덕였어. 그제야 현서는 금귤 아저씨의 트럭 쪽으로 달려갔지. 현서가 없어지자, 이장님은 조각가의 옷소매에서 손을 떼고 엄숙한 목소리로 조각가에게 말했어.
“따라와.”
애제자의 투정인지 방황인지 모를 돌발행동에 조금 뿔이 난 모양이었지. 조각가는 두 눈을 감은 상태로 이장님의 발소리를 따라 조심스레 잰걸음을 했어.
“무릎 앞에 평상이니 거기 좀 앉아 봐.”
이장님의 말에 조각가는 손끝으로 평상 바닥을 확인했지. 그리고 엉덩이를 아주 조금만 걸치고 앉았어.
“아까부터 눈은 왜 뜨지 않고?”
질문하고서 이장님은 하늘을 올려다봤지. 조각가가 답할 때까지 한사코 기다릴 작정이었어. 몇 분간 두 사람 사이에 적막이 돌았지. 그래도 스승과 제자 간의 연은 무시할 수 없는지, 적막을 깨고 나오는 말소리가 들리긴 했어. 눈은 감은 조각가 쪽이었지.
“되돌아봐야 할 게 있는 것 같아 그랬습니다.”
또 한 번의 정적이 두 사람을 훑고 지나갔어. 이번에는 이장님 쪽에서 소리가 났지.
“내가 괜한 숙제를 준 건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다시 한번 정적이 찾아왔어. 이번엔 좀 짧았지.
“스승님께선 늘 제게 필요한 일만 주셨죠. 다만 이번 작업으로 도통 구분이 가질 않게 되었어요. 무엇이 꿈이고 현실인지. 날아오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하늘이 저를 꾸짖었지요.”
“그럴 줄 알았으면 내가 먼저 꾸짖을 걸 그랬다. 하늘의 꾸짖음보단 나았을 터.”
“제가 겁을 먹으니, 갈매기도 겁을 먹었습니다. 갈매기가 겁을 먹자, 세상이 겁을 먹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 현서에겐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한창 헤매고 있었는데 그때 제 방에 들어와 주었거든요. 어쩌면 갈매기 녀석이 현서에게 SOS를 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말을 끝으로 잠깐 다시 침묵이 이어졌어. 하지만 누구 한 명 대화를 이어가야만 한다고 재촉하지 않았지. 이장님도 조각가도 갈매기 마을의 바람이 지나가는 속도에, 그 느즈막 하고 소금기 어린 속도에, 맞춰 이야기하고 있었어.
“스승님이 언제 한번 말씀해 주셨었지요? 헤맬 땐 두 눈을 감아 보라고. 그 상태로 무언가 보려고 하라고. 밖을 향해 있는 눈을 안쪽으로 돌려 본심을 파악해 보라고.”
“늙은이가 별소릴 다 했구먼.”
“스승님 밑에 있으면서 조각을 공부한 걸 후회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배울수록 조각이 두려워졌죠. 내 생각이 손끝으로 빠져나가고, 어떤 물질로 구현되어 세상에 남아 있을 거라는 게 부끄러웠습니다. 애써 감춰도 모자랄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기분이었습니다.”
“갈매기 마을은 갈수록 유명해지고 있어. 환경 문제니, 시민운동의 표본이니 전통문화의 계승이니 … 오래 남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한데 모여 있으니 아마 점점 더 유명해질 게다. 아마 이전처럼 한적한 바다마을로 있을 순 없을 거야. (…) 광장에 들어선 조각상은 그런 의미에서 엄청난 상징성을 가질 테지. 내가 너에게 굳이 의뢰하지 않았더라도 어쩌면 유명 조각가들이 분수 제작에 참여하고 싶다고 먼저 러브콜을 보내왔을 거야.”
조각가는 스승의 진심에 귀를 기울였어. 그러는 사이에 눈을 좀 더 질끈 감았지. 그러지 않으면 ‘두 눈을 뜨고 스승님의 모습을 바라보고 싶다’고 마음먹을 것만 같았지. 반면에 이장님은 조각가에게 말하는 내내 일정한 톤의 목소리를 유지했어. 잡음 가득 섞인 마을 방송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편안한 소리였지. 마을의 수장 노릇을 하느라 이 집 저 집 평상에 앉아 흔한 농담 따먹기나 속내털이를 해본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었을까, 오랜만에 제자와 대화하면서 이장님은 자유로움을 느꼈지.
“오래도록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마을엔 조심스러운 마음이 필요하지. 너는 부끄럽고 머뭇거리는 네 태도가 이번 작업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 마음이야말로 이 마을에 필요한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단숨에, 밀어붙이는 듯한 그런 에너지가 필요한 게 아니야. 조금씩 천천히 다가가면서 나는 법을 익히는 에너지가 필요한 거지. 모으고 고민하고 축적하고 다시 뒤엎는 마음이 결국엔 이 마을을 살릴 거라 믿는다. (…) 네가 눈을 떴을 때 불안해하는 건, 아마 지키고 싶은 게 생겼기 때문이겠지. 이 마을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보게 되었기 때문이겠지. (…) 꿈과 현실을 혼동하는 데 어쩌면 좋겠느냐고 물었지? 혼동을 좀 하면 어떠냐고 묻고 싶구나. 혼동하는 과정 중에 네가 눈을 감고 보이는 것 너머의 것에 집중하기로 한 거라면, 아들아, 부디 그 흔들거림을 소중히 하거라.”
이장님은 평상에서 일어나 조각가의 어깨 위에 손을 툭 얹더니 다시 멀리 슬리퍼를 끌고 걸어갔어.
“나를 이장이라 부르는 사람들에게 가봐야 할 시간이다. 너는 여기서 좀 더 눈을 감고, 네가 원하는 대로 도망을 치든, 조심을 하든, 흔들리든 하면서, 현서를 좀 기다리려무나. 좋은 아이야 현서는.”
조각가는 두 눈을 감은 채 이장님이 걸어간 쪽으로 고개를 돌렸어. 이장님은 그를 본체만체하고서 출근길에 올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