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폴 체크무늬 셔츠
아프리카에 간 적이 있다. 심장을 닮은 대륙의 심장부에 있는 나라, 부룬디가 도착지였다. 수도인 부줌부라까지 비행기로 꼬박 하루가 걸렸는데도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지칠 줄 몰랐다. 국민 다수가 기독교인이지만 부족/민족 갈등이 심하고 인프라가 부족하여 빈곤과 개발 문제가 수두룩한 나라였다. 그런 곳으로 단기 선교를 다녀오겠다는 딸내미의 말에 아빠는 얼굴부터 찌푸렸다.
입국 비자 스티커를 여권에 붙이고 공항 밖으로 나왔을 때,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단번에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을 떠올렸다. 라피키라는 주술사 원숭이 캐릭터가 왕과 나라의 운명을 점치던 나무 같았다. 단기 선교를 와 놓고선 우습게도, (그리고 무지하게도) 야생 동물이 가득한 초원 풍경을 가장 먼저 상상하고 말았다. 하지만 선교사님은 국립공원에 가도 그런 풍경은 볼까 말까 하다고 하셨다. 편견 어린 환상은 깨졌지만 덕분에 마음은 제대로 잡았다. 배우고 참여하고 기도하려는 마음이었다.
햇살이 따가웠다. 습도도 상당했다. 기껏 맞춰 입은 검은색 단체 티셔츠에는 아프리카 지도가 그려져 있었는데, 티셔츠가 땀을 잔뜩 먹자 지도 위에 허옇게 땀자국이 남았다. 어느 염전의 소금 결정처럼 적나라했다. 나도, 친구들도 아차 싶었다. 캐리어에 청바지 또는 긴치마에 티셔츠만 잔뜩 챙겨 왔기 때문이었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10일 간 부룬디 곳곳을 누빌 예정이었다. 산속에 있는 교회부터 태권도 수업이 열리는 학교, 어느 부족의 예배당까지… 작은 벤을 타고 이동하면서 현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위한 예배와 공연을 선보일 계획이었다. 따라서 노출이 심하거나 단정치 못해서 오해를 살만한 복장은 피하는 게 좋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또, 혹시 말라리아 등의 피해나 화상을 입을 수도 있으니 가급적이면 피부를 드러내지 않는 기능성 옷을 가져오자고도 했다.
나는 그때 특별한 옷을 하나 챙겨 갔다. 빈폴 체크무늬 셔츠였다. 비행기에서 제공하는 담요로 추위가 가시질 않을 때, 햇빛이 강렬하지만 느긋하게 선크림을 덧바를 수 없을 때, 갑자기 몰아친 비바람을 조금이라도 피하고 싶을 때, 이불과 카디건 심지어는 우산 대용으로 쓸 옷이었다.
원래는 아빠의 것이었으나 이젠 내 것이 된 옷이었다.
감동 바사삭 일지 모르겠으나... 사실 아빠는 내게 그 체크무늬 셔츠를 줄 생각이 없었다. 아끼는 옷이라고 했다. 그럼 왜? 계기는 세탁 실수였다. 어느 겨울날, 아빠는 세심한 빨래가 귀찮았다. 하지만 빨래를 언제까지나 미룰 수는 없었다. 아빠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속옷과 양말, 겉옷, 수건 등을 구분하지 않고서 통돌이 세탁기에 때려 넣었다. 그중에 내가 부룬디로 가져간 체크무늬 셔츠도 껴있었다.
노란끼가 조금 섞인 베이지색 천 위로 굵고 얇은 선들이 나름의 질서에 따라 그어져 있었다. 가까이서 자세히 보면 의외로 많은 색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래된 나무의 밑동, 구름 한 점 없는 한낮의 하늘, 이제 막 익기 시작한 체리의 표면, 빛바래고 먼지까지 쌓인 택배 상자… 제각각이었을 색이 뒤섞여 있었다. 각각의 색은 직선 주행을 하다가 서로 뒤섞였다가 또다시 헤어지길 반복했다. 마치 인생 규칙을 담아낸 패턴 같았다. 단정하고 클래식한 옷이었다. 아빠가 좋아할 만했다.
그런데 이런, 아끼는 옷이라더니 세탁기에 때려 넣고야 말았다. 실수로 뜨거운 물에 빨아버렸다(무심도 하여라). 그리고 그 셔츠는 재미있게도 내 어깨선과 팔길이에 꼭 맞는 사이즈로 줄어들었다. 제아무리 검소한 아빠라도 본인 품에 맞지 않은 셔츠를 계속 갖고 있을 수는 없을 터. 부룬디에 갖고 갈 짐을 챙기던 날, 아빠는 내게 셔츠를 내밀었다.
이거 한 번 입어봐라.
아빠 거 아니야?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셔츠를 집어 들었다. 꽤 도톰했다. 옷감 성분의 일부가 울로 되어 있어서 착용감도 꽤 포근했다. 하지만 두 손가락으로 살짝 비벼대면 까슬까슬한 감촉이 도드라졌다. 어린 시절, 면도를 하루 거른 아빠가 애교 삼아 들이밀던 턱처럼 억셌다. 무엇보다도 자로 잰 듯, 내게 꼭 맞았다. 아빠는 잠깐 아쉬워하다가 무언가 훌훌 털어버리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너 주려고 딱 맞게 줄여 놨지.
정말? (에이 넉살은.)
뜨거운 물에 빨았더니 줄어들었네. 선물이다. 니 입어라!
엄마의 옷을 물려 입거나 신발을 빌려 신은 적은 있었어도(엄마의 심미안과 센스, 그리고 옷 관리 능력은 정말이지 환상적이다! 반면에 아빠는... 얾...) 아빠의 옷을 물려 입는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기분이 묘했다. 남의 옷을 내 것인 양 입으면 마치 내가 그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었다.
옷에는 그 사람의 자세와 태도가 은연중에 담긴다(적고 보니 셜록홈스가 할 만한 말 같다). 어깨 한쪽이 좀 더 삐죽 튀어나와 있다든가, 한눈팔다가 음료를 흘리는 곳이 겹친다든가(그래서 특정 부위의 옷감이 늘 먼저 얼룩덜룩해진다든가), 왼팔보다 오른팔을 좀 더 여기저기 더 쓸고 다닌다든가 … 그렇다면 아빠의 옷을 입으면 아빠가 된듯한 느낌을 받으려나? 어딜 가든지 자투리 시간을 어떻게 쓸지 생각하고, 비닐봉지 하나라도 버리기 전에 재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추억의 물건이라면 쓸모가 없어졌다 하더라도 쉽게 버리지 못하고, 잘 웃다가도 금세 어딘가에 훅 빠져서 심각해지고?
모를 일이다. 그럼 어떡해, 입어보는 수밖에.
부룬디의 햇살이 버거워질 때마다 나는 가방에서 체크무늬 셔츠를 꺼냈다. 도톰한 긴팔이었기에 입을 엄두는 못 내었고, 양산 대용으로 어깨에 살짝 걸치고 다녔다. 셔츠가 나를 뒤에서 안아주는 모양으로. 여름옷은 아니었는데도 까슬까슬한 질감이 도드라져서 그런지, 어르신들이 여름날 덮고 자던 마 소재의 이불이 생각났다. 겸연쩍어하면서 내게 셔츠를 입어보라 권하던 아빠의 얼굴도 종종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빠 옷을 입었더니 아빠 생각이 많이 났다.
불편과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오고 싶었던 부룬디행을 가장 우려한 사람이 아빠였지? 근데 아빠, 여기 봐봐. 사람들도 순박하고 친절하고, 주변 풍경도 탁 트였고... 맨날 나한테 전기 낭비가 취미라고 물었잖아. 그땐 그 말이 잔소리 같아서 싫었거든? 근데 여기 와서 찬물 샤워하면서 선교사님 따라다니다 보니 아빠 말이 맞더라. 나 전기 낭비하는 게 취미였나 봐. 당연히 여겼던 전기, 온수, 포장도로,... 그런 게 여기선 참 귀해. 선교사님 댁 가는 길도 계속 가로등 없는 비포장 도로거든? 저녁엔 설마 사람이 있겠어, 싶을 정도로 어두워지더라고. 그런데 우리 스탭 중 한 명이 그런 도로에 잠깐 차를 세우더니 양손 가득 망고를 사 오더라. 캄캄한 길 위에 노점상이 있었대. 깜짝 놀랐어. 그리고 엄청 고마웠어. 다른 얘기지만 망고는 정말 맛있었고.
나는 어깨 위 셔츠가 아빠라도 되는 것처럼 말을 걸었다. 그러는 사이, 더위가 살짝 가셨다.
귀국일을 하루이틀 앞두고 나는 부룬디에서 짧게나마 여유를 부렸다. 숙소 앞 정원에서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었다. 별이 쏟아지는 하늘을 기대했는데 웬걸, 매일 구름만 한가득이었다. 이래선 서울 하늘과 다를 게 없는데. 그때 나는 다시 한번 라피키를 떠올렸다.
나무 위에서 점괘를 확인하는 라피키, “It is time(바로 지금이구나)!” 라며 환호하는 라피키, 이젠 기다리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라피키, 생기를 되찾은 라피키.
그러고 나서 애니메이션 속 그 장면에 아빠와 나를 대입해 보았다.
세탁기 앞에서 줄어든 체크무늬 셔츠를 확인하는 아빠, “It is time(내 손을 떠날 때가 되었구나)!”하고 말하는 아빠, 미련을 버리고 새로운 주인을 찾아주겠다는 아빠, 셔츠가 내게 꼭 맞는 걸 보자 “됐다!” 하고 쿨하게 자리를 뜨는 아빠.
혹시 아빠는 체크무늬 셔츠를 내게 주면서 딸내미의 부룬디행을 허락한 게 아닐까? 그렇다면 이 셔츠에는 “믿는다, 다녀와라, 조심해라, 좋은 거 많이 보고 배우고 와라, " 하는 표현도 섞여 있으려나? 오. 이 정도면 <라이온 킹> 같은 가족 영화의 한 장면으로도 손색이 없겠다. 그럼 어떡해, 그렇게 생각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