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 함머러 치마
친구 G는 딸을 간절히 원했으나 아들을 낳았다. 내게 부케를 던져 줄 정도로 가깝고 오래 지낸 친구다. G에게는 아기자기하고 이쁜 것을 오래오래 곁에 두고 사는 습관이 있는데, 그 때문에 G의 서랍엔 테디베어를 비롯한 각종 장난감이 늘 가득 차 있었다. 며칠 전, G의 아들이 세상에 나온 지 100일을 넘겼길래, 오랜만에 G의 얼굴도 보고 조카와 인사도 나눌 겸 수원으로 향했다. G의 뱃속에서 한 번은 심장을, 또 한 번은 뇌를 만들고 있던 그 작은 생명이 이제 나와 같은 세상에 나와 공기를 나눠 쉬고 웃고 있다니. 놀라운 재회였다.
G는 아이를 갖는 게 기쁘면서도 두려웠다고 여러 번 말했다. 내가 느끼기엔 두려움이 조금 더 컸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G가 아들을 보면서 웃고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은 사랑스러웠다. 처음이라 어설픈 게 많았는데 그 때문에 더욱더 사랑스러웠다. 조카가 잠에 들고 나서야 둘만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바뀐 삶은 어때?
봤잖아. 정신없어. 이거(육아) 절대 혼자 못해.
그래도 이쁘지?
맨날 챙겨주는 건 난데 아빠한테 더 잘 웃어줘서 좀 질투나. 그래도 너 오기 전에 세뇌 교육을 좀 시켜놨더니 잘 웃네. 오늘 주현이 이모 온다고 잘 웃으라고, 잘해보자고 몇 번이나 말했거든.
(...)
흐흐. 내 눈엔 변한 게 보이는데. 너 이전엔 아기 사진으로 프사 절대 안 할 거라고 했잖아. 근데 요즘은 프사에 스토리에 온통...
너도 나중에 겪어 보면 알 거다.
이쁘지?
이뻐. 근데 좀 아쉬운 건 있어.
뭐?
나 갖고 있는 장난감이나 소품들, 딸이었으면 같이 더 잘 갖고 놀 법한 것들이거든. 나 그것도 갖고 있어, 어렸을 때 입던 원피스. 아주 빈티지인데. 딸내미였으면 바로 입혔을 텐데 아쉽지.
G와 대화하면서 새삼 느꼈다. 엄마가 딸에게 옷을 물려주는 게 아주 특별한 거란 걸.
내겐 퍼스널 쇼퍼가 있다. 그 사람은 나의 나이와 체형, 취향의 변천사를 알고 있으며 내가 처한 상황(이를테면 어떤 자리에 나갈 일이 많은지)도 비교적 잘 알고 있다. 발 사이즈도 같아서 본인이 신던 신발을 고스란히 내게 주기도 한다. 패션 센스가 훌륭하고, 시간과 장소에 따라 옷을 갖춰 입는 습관이 있다. 워낙 옷 관리를 잘해서 저가 브랜드의 카디건도 보풀 하나 없이 오래오래 입는다.
바로 우리 엄마다.
본가(대구)에 내려갈 때마다 엄마의 옷장을 구경한다. 내가 굳이 열어보지 않아도 엄마가 나를 먼저 부른다.
이것 좀 입어 봐라.
잠옷은 있니?
요즘은 스키니 안 입어(통 큰 바지를 찾아 입는 내가 대견스러운 듯)?
이거 홈쇼핑에서 싸게 샀는데...
옷걸이에 남색 바지 하나 걸어둔 거 있을 텐데 보이니?
나를 옷장 앞으로 부르는 엄마의 말은 이처럼 제각각이다. 그 말에 제깍 반응할 때도 있지만 귀찮아하면서 느릿느릿 움직일 때도 많다. 퍼스널 쇼퍼의 호명은 대체로 갑작스럽기 때문이다.
어쩌다 나는 엄마의 인형 옷 입히기 놀이에 참가하게 된 걸까. 어쩌면 멋쟁이 엄마의 딸로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뾰족한 구두코, 셋업 슈트, 롱 코트, 블라우스, 블랙 앤 화이트, 검은색 가방, 회색이나 올리브색처럼 점잖은 색깔들, 재미나고 알록달록한 겨울 스웨터, 가장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빨강, 어둡고 진한 립스틱, 파마를 하지 않은 단정한 머리, 번쩍이는 장신구 대신 재미있는 장신구(이를테면 부엉이가 그려진 브로치), 다듬지 않아도 개성 있는 눈썹, 빵 터져서 웃을 땐 눈이 함께 웃는 얼굴, 민감하지 않은 피부와 식성, 하루에 커피 여러 잔, 피아노, 쿠키, 안경을 쓰지 않은 눈, 작게 반짝이는 귀걸이보단 볼드한 귀찌...
어릴 적부터 내가 떠올리던 엄마의 이미지들이다. 아무래도 어린이의 눈엔 시각적인 요소들이 가장 먼저 기억에 남았는데 그중 빠지지 않고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엄마의 복장이었다. 엄마는 갖춰 입는 걸 좋아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멋있어 보이면 참고 입었다. 특히 신발이 그랬는데, 나를 임신했을 때도 힐을 신고 다닐 정도였다(엄마 말로는 단화보다 힐이 허리를 잘 받쳐줬다고). 그런 엄마를 옆에서 보면서 생각했다.
처음엔 불편한 것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편해지는구나.
시간과 장소에 따라 옷을 고르는 걸 귀찮아하면 안 되겠구나. 예의 바른 습관이니까.
외모가 전부는 아니지만 외모를 가꾸면서 자기 자신과 좀 더 친해질 순 있겠구나.
취향 있는 사람은 블라우스 단추 하나 잠그면서도 행복하겠구나.
나도 뾰족구두를 신고 점잖은 옷을 입으면 엄마처럼 멋진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엄마의 재킷, 셔츠, 치마, 구두, 가방... 을 관찰하며 엄마의 모습이 미래의 내 모습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펑퍼짐한 핏의 바지를 챙겨 입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날이 많은 요즘에도 그 바람은 여전하다.
내 나름대로의 취향과 고집이 생긴 지금, 엄마의 퍼스널쇼핑 타율은 7할 정도다. 아무리 엄마의 스타일링을 동경한다 할지라도, 번쩍번쩍 거리는 티셔츠나 새빨간 원피스는 아직 어렵다.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나 여러 문학 작품이 이야기하듯이, 옷 입히기 놀이의 대상이 되는 인형에게도 거부권이 있으니, 뭐,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엄마에겐 필살기가 있다. 클래식하거나 빈티지한 아이템을 내게 건넬 때인데, 성공률이 거의 100%다. 그중 하나가 오늘 소개하고픈 레지 함머러(Resi Hammerer) 치마다.
그날의 퍼스널 쇼핑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옷장 앞의 엄마가 거실 소파 위의 나를 불렀다.
주현아, 너 추위 잘 타잖아. 진짜 따뜻한 치마 있는데.
엄마는 로마에서 피아노를 공부하던 시절, 오스트리아에 간 적이 있다고 했다. 학생 신분이었던 때라 풍족하게 지내진 못했지만, 고급 레스토랑에는 못 갈지언정 오래 두고 입을 만한 옷이나 기념이 될만한 장식품은 조금씩 사 모았단다. 그때 샀던 치마라고 했다. 와, 정말 튼튼해 보였다. 한겨울에 기모 스타킹을 챙겨 신지 않아도 될 정도로 두께가 도톰했다. 진녹색 바탕에 검은색 하운드투스(houndstooth) 무늬, 무릎을 살짝 덮는 기장까지, 단정한 이미지의 연속이었다. 결혼식장 하객룩으로나 주일 예배 복장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갖춰 입는 신발이나 상의에 따라 세미 캐주얼의 느낌도 살릴 수 있는 옷이었다. 무엇보다도 관리 상태가 최상이었다. 치마 안 쪽에 박음질되어 있는 빈티지한 태그가 아니었더라면 40년 정도 된 옷인 줄 몰라 볼 정도였다.
태그에 적힌 이름을 검색해 봤다. 로지 함머러는 오스트리아의 스키 선수의 이름이자 그 선수가 만든 의류 브랜드로, 로덴 천과 스포츠쿠튀르(Loden und Sportscouture)로 유명하다고 한다. 거칠고 폭닥한 모직 천과 올리브색이 시그니처라는데 엄마가 내민 치마의 인상착의(?)가 딱 일치했다. 어쩌다 독일어와 유럽을 공부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옷에서 풍기는 유럽 특유의 느낌이 반갑기도 했다.
얼른 바지를 벗고 치마를 입어 보았다. 젊은 시절의 엄마에게 꼭 맞았던 치마는 마치 내 것인 양 허리와 골반, 허벅지를 속속들이 덮어주었다. 자기에겐 더 이상 맞지 않는 옷이 내게 꼭 맞는 걸 보고서 엄마는 탄성을 질렀다.
딱 맞네! 잘 입겠다.
엄마가 좋아하니 나도 그 치마가 더 이뻐 보였다. 엄마의 일부가 엄마를 떠나 내 것이 되니 엄마와 더욱 가까워진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엄마의 것을 가져감으로써, 엄마로서의 엄마가 조금 없어진 듯한 느낌도 받았다. 나를 서늘하고 쓸쓸하게 하는 느낌이었다. 그 기분을 떨쳐내려고 엄마에게 괜히 새 옷을 사러 가자고, 옷에 관련된 이야기를 더 들려달라고, 애교 아닌 애교를 부렸다. 그리고 오래오래 이 치마를 입을 수 있도록 관리해야겠다면서 괜찮아 보이는 치마걸이를 샀다.
언젠가 엄마가 된다면 나는 아들인지 딸인지 모를 그 생명에게 무엇을 물려줄 수 있을까? 내가 그랬듯이, 내 옷을 물려받고 싶어 하는 딸이려나? 그런 엄마가 되려면 멋진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아참, G가 그랬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 김칫국은 마시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