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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상의 물건

주머니 사전

by 프로이데 전주현

자투리 시간을 사랑한다. 그 시간은 세찬 강물 같아서 가만히 내버려 두면 그저 흘러가버린다. 나의 오랜 버릇은 그 시간을 조금이나마 곁에 두려고 애쓰는 것이다. 약속 시간에 늦는 친구를 기다리며 주변에서 흥미로운 걸 관찰하며 메모를 하거나, 버스를 기다리며 뉴스 기사 한 문단을 읽는다. 주문한 커피가 나올 때까지 이동진의 파이아키아를 시청하기도 하고, 기차 안에서 듀오링고의 알람에 응하며 외국어 공부를 한다. 그렇게 하면 잠깐이나마 착각할 수 있다. 부지런히 살고 있구나, 시간을 아끼고 있구나, 하면서.


이 습관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자투리 시간을 알차게 활용할 생각을 하면서 가방을 꾸리다 보면 가방이 상당히 무거워진다는 거다. 보부상이 따로 없다. "분명 필요한 것만 담았는데 왜 이리 무겁지?" 외출 전, 스스로에게 묻는 단골 질문이다. 가만히 보면 꼭 필요한 물건은 얼마 들어 있지 않다. "혹시 짬이 날 수도 있으니까, " 하는 생각, 그게 늘 가방의 덩치를 키운다. 그때 읽을 책 한 권을 챙기면 이런 생각이 뒤따라 온다. "책을 읽고 싶지 않을 수도 있잖아, 그러면 이어폰도 챙겨 가는 게 좋겠지? 그런데 음악을 듣고 싶지 않을 수도 있으니, 노트도 한 권 챙기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이제 자투리 시간을 넘어서 예기치 못한 상황을 걱정하는 데까지 향한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는데 비 피할 곳이 없으면? 그럼 우산 하나 넣어야겠지. 귀가 중에 장을 보고 들어 올 수도 있으니 장바구니도 챙기고..." 이 때문인지 몰라도 나의 두 어깨는 항상 화가 나 있다.


이런 나의 보부상 라이프를 그대로 반영하는 롤모델이 있다. 바로 우리 아빠다.




아빠는 좋은 가방들을 다 제쳐두고 늘 짐색을 메고 다닌다. 신발주머니처럼 생긴 가방인데, 어깨 끈을 좌우에서 당기거나 풀면서 가방의 입구를 닫았다가 여는 형식의 조리개 모양이다. 대체로 등을 최소한으로 덮으면서 어깨와 팔을 비교적 자유롭게 하고, 가방 자체만으로는 아주 가벼운 재질로 되어 있는 가방이다. 수납력은 천차만별인데, 테트리스하듯이 차곡차곡 가방 밑바닥에서부터 물건을 쌓아 올리다 보면 꽤 많은 물건이 들어간다. 교회 갈 때마다 챙겨 입는 양복 위에도, 조깅하러 나가는 운동복 위에도, 아빠는 늘 짐색을 멘다.


상황에 맞게 옷을 갖춰 입길 즐기는 엄마 입장에선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게 고역이다. 잘 차려입고서 왜 그 가방을 메냐고, 저 가방 어디 갖다 버렸으면 좋겠다고, 저번에 새로 사준 백팩은 왜 안 쓰냐고. 아빠는 엄마의 의견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그러면 엄마가 다른 말을 덧붙인다. 뭘 그렇게 많이 들고 다니냐고. 가방 터지겠다고. 그러다 아빠가 'What's in my bag?"이라도 하면, 나는 벙어리가 된다. 책(또는 신문), 노트, 비상용 우산, 필기구, 휴지... 내가 꼭 챙기는 물건들이 고스란히 아빠의 짐색에도 들어있다. 엄마의 편을 들 수가 없다. 비록 목소리 내서 아빠를 지지하진 못하지만(엄마 눈치 보느라),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혹시 모르잖아, 기다리는 시간이 생길지도, 노는 시간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엄마가 혀를 내두르고 핀잔주길 포기하는 건 그쯤이다. 가끔은 화살이 나를 향하기도 한다.


"너도 너네 아빠처럼 가방 너무 무겁게 들고 다니지 마라."


아하하. 웃음으로 무마하려고 한다. 이쯤 되면 엄마가 옛날이야기를 꺼낸다. 데이트하던 시절, 아빠 가방이 꽤 무거워 보이길래 안에 뭐가 들었냐고 했더니, 법전을 들고 왔단다. 헌법학자라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굳이? 엄마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와. 아빠의 보부상 능력치는 나보다 훨씬 더 높구나. 자투리 시간에 법전을 펼쳐 볼 생각을 하다니. 롤모델의 활약상에 눈에 생기가 돈다.


두껍고 무거운 법전을 넣어 다니는 사람의 가방엔 뭐든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아빠의 짐색은 현실판 헤르미온느의 가방, 도라에몽의 주머니일지도 모른다.




그런 아빠가 어느 날, 나를 불렀다. 아마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던 거 같다.


"들고 다니기 좋을 거야."


앙증맞은 크기의 책이었다. 미끈한 커버에 빨강과 검정, 베이지 색 조합이 감각적이었다. Webster's New World : Pocket Dictionary Fourth Edition.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영영사전이었다. 아빠도 나의 보부상 자질을 일찍이 눈치챈 모양이었다. 성경책에서나 넘겨 봤을 법한 얇은 종이들, 그 위를 수놓은 조그마한 글씨. A부터 Z까지, 빼곡히 적혀 있는 페이지들. 만화 속에서 본 개미 왕국을 내려다보는 기분이었다. 어릴 적부터 외국어 공부만큼은 즐겨했던 나는 아빠의 깜짝 선물이 맘에 쏙 들었다.


온라인 사전을 이용하면 단어의 뜻을 빨리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왠지 시간을 조금 더 들여가면서 단어의 뜻을 탐색하는 게 좋았다. 손끝을 예민하게 사용하면서 얇디얇은 사전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종이 소리가 사각사각 나는 게 맘에 들었다(그 소리를 듣겠다고 일부러 종이를 살짝 구겨가면서 세차게 사전을 넘길 때도 있었다). 좀 더 공을 들이는 기분이었다.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다는 감각은 나를 즐겁게 했다.


'아빠의 짐색에 이 주머니 사전도 들어가 있었겠구나. 그렇다면 보부상의 딸로서, 나도 기꺼이 사전을 들고 다녀야지!' 사전을 선물 받을 당시엔 분명 이렇게 생각했는데, 요즘엔 가방을 챙길 때 스마트폰을 빼놓진 않았는지 확인하는 게 전부다. 나의 아날로그, 나의 집중력을 도둑맞았다! 이 시대에! 그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종이 사전을 가끔씩 펼쳐야 하지 않을까? 그때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을 깨워야 할까? 수업 중 스마트폰 사용을 극도로 꺼려했던 대학교 교수님들이 그 질문을 적극 지지해 주셨다. 덕분에 20대 초반엔 한동안 아빠의 주머니 사전과 영독-독한 종이사전을 가방에 넣어 다녔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언어 습관이 바뀐다.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 말 안에 담아내는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하다. 마음을 표현하는데 필요한 건 신조어도, 화려한 외국어도 아닌, 아주 기본적인 단어일 거라고 믿는다. 그렇게 생각하니, 2000년도에 fourth edition을 펴낸 주머니 사전 속 어휘만 알고 있어도, 마음 터놓고 이야기하는 덴 충분하겠구나 싶다.


오늘도 아빠는 짐색을, 나는 나만의 가방을 무겁게 꾸린다. 엄마는 우리 두 사람의 가방을 괜히 한번 건드려 본다. "아이고 무거워라, " 하면서 핀잔을 준다. 아빠와 나는 일관되게 대답한다. "별로 안 무거워." 종이 사전의 종이 모서리가 살짝 누레졌듯이, 가족 셋이서 투닥투닥 대는 것도 오래오래 지속되고 있다. 마음 한편이 누렇게 따뜻해진다. 오늘은 어떤 자투리 시간을 맞닥뜨리게 될까? 그 강물에 손발 시원하게 담그고 쉬어갈 수 있는 여름날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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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사진) 보부상 아빠가 준 영영사전과 보부상 딸의 내돈내산 독영-영독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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