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날 밤의 갈등
우리 사전엔 동상이몽이란 표현이 있다. 같은 자리에서 다른 꿈, 생각을 하는.
오마카세(おまかせ [お任せ∙御任せ])란 표현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오(お)는 미사여구나 존댓말에 쓰이는 접두사이고 마카세는 ‘맡기다’란 뜻의 동사 ’마카세루(まかせる [任せる·委せる])‘의 활용형으로, “손님이 메뉴를 고르지 않고 셰프가 그날그날의 신선 재료로 식사를 구성하도록 맡깁니다 “ 란 뜻의 코스 요리를 뜻한다.
본래 스시 문화에서 시작된 말이지만 이제는 분야를 막론하고 한우 오마카세, 티 오마카세 등 다양한 방면에서 쓰인다. 코스 요리를 맡은 사람을 강조하는 이모카세, 아빠카세 같은 표현으로 그 활용이 확장하기도 했다. 오마카세의 단점은 비용이 꽤 비싸다는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서 꽤 인기몰이 중이다. 그걸 보고 있자면 요즘 우리 사회가 전문가(셰프)의 큐레이션을 통해 취향과 경험의 확장을 원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날 놀라게 해 봐! “ 하면서 팔짱을 끼고 음식을 기다리는 까탈스러운 손님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도파민 중독 시대라더니, 이젠 자기 입으로 들어갈 음식조차 서프라이즈와 사연이 얽힌 도파민을 원하는 건가 싶달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게 오마카세는 결코 평범한 경험이 아니다. 어쩌다 가끔, 기념일에나 시도해 볼랑 말랑한 그런 럭셔리다. 하지만 이런 내게도 타협책은 있다. 어느 식당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코스 요리 또는 세트 메뉴 옵션이다. 어떤 것을 먹게 될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으면서도 음식의 연출과 맛을 여전히 기대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단품 메뉴보다는 조금 더 웃돈을 줘가며 주문을 하거나 예약을 해두어야 한다는 점. 꽤 오마카세스러운 특징들이다. 비용 측면에서나 도파민 측면에서나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이런 마음으로 나는 삿포로 가족 여행의 마지막 저녁식사 일정을 준비했다. 메뉴는 바로 털게 코스 요리! 여행의 계기가 되었던 바로 그 식재료, 게를 먹어야만 했다(비장). 사실 말이 코스 정식이지 비용만 보면 오마카세라 해도 될 정도였다. 하지만 삿포로까지 와서 게 요리 먹는 데 돈을 아낄 순 없는 법. 나는 아래 기준들을 따져가며 식당을 골랐다.
1. 지출이 꽤 크더라도 검증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그러나 너무 비싸지는 않을 것! 엄마, 아빠 입에서 ”이게 얼마라고? “ 하는 말이 안 나올 정도로만.)
2. 관광객들만 있지 않은 곳(구글맵에서 현지인의 후기를 읽을 수 있는 곳)
3. 아주 중요한 포인트 - 고관절이 불편한 엄마를 위해, 테이블 좌석이 준비된 곳(신발을 벗거나, 나비다리를 하고 앉아야 하는 좌식 테이블만 있는 곳은 과감히 걸렀다.)
4. 가게 내부가 시끌시끌하지 않고 조용한 곳(어쩔 수없이 시끌시끌하다면 프라이빗한 룸이 따로 있는 곳)
5. 식당 근처에 유흥업소가 적거나 없는 곳(부모님과 다녔을 때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없는 곳. 일본 여행을 할 때마다 유독 고려하게 되는 포인트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을 맞았다.
식당 정문을 옆으로 밀자 오른쪽에 털게 수조가 나타났다. 딱딱한 껍질 위로 삐쭉삐쭉한 털을 세우고 있는 녀석들의 표정은 (미안하게도) 한없이 평화로웠다. 진입로에 계단 턱이 하나 있어 휠체어를 접느라 바삐 움직였다. 때문에 드르륵 탁! 하고 힘 있게 문을 열어젖힌 것에 비해 식당에 들어가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저 사람들 저기서 뭐 하는 거지?’ 하는 눈초리로 우리를 쳐다보던 일본인 몇 명과 눈이 마주쳤으나 개의치 않기로 했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엄마가 조심히 식당 안으로 들어가서, 기분 좋게 털게를 먹는 거니까.
예약했다는 말과 함께 예약자명을 이야기하자 매니저 한 분이 나와 우리를 방으로 데려갔다. 매니저는 예약할 때 미리 주문해 둔 메뉴를 확인받더니 뒷걸음질로 방문을 살포시 닫고 나섰다. 오롯이 넷만 남은 우리 가족은 이틀 간의 여행을 돌아보며 따뜻하게 데워진 물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막 오타루 당일치기 여행을 하고 온 날이라 영화 <러브레터>와 치즈 케이크 이야기가 가장 먼저 나왔다.
만족스러운 호텔 조식 서비스와 이동이 편리한 삿포로의 도로 설비에 관해서도 수다를 떨었으며, 이번 여행의 숨은 주역인 여행용 휠체어에 관한 후기도 꾸준히 나눴다. 바퀴가 크고 쿠션감이 좋은 휠체어를 샀더라면 이동이 더 편했겠지만 들고 다니기 무겁고 짐스러웠을 거라면서, 앞으로도 같은 휠체어를 들고 다니면서 이렇게 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이 이어졌다(그래, 분위기 괜찮았어).
그러는 동안 털게가 몇 번이고 우리 테이블 위에 다녀갔다. 털게 계란찜과 털게 가지무침, 털게 회와 모둠 사시미, 1인 1 털게찜, 털게 감자 그라탱, 털게 해물탕, 모둠 튀김(근데 털게도 튀겨버린), 그리고 털게 볶음밥과 된장국까지… 천천히 한 접시씩 나오는 바람에 정말 본격적으로 배불리 먹어 버렸다.
식사 내내 남편과 나는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 마냥 엄마의 표정을 살피며 음식 맛을 물었다. 아무래도 여행의 계기가 엄마에게 게 요리를 대접하는 거였으니, 차일피일 그 과제를 미루던 아빠가 보란 듯이 엄마의 호감을 끌어내고 싶었다. 그래야 아빠가 한국에 돌아가서도 엄마에게 게 요리를 많이 사주지 않을까 싶었고, 혹시 그렇지 않더라도 나중에 엄마가 이번 여행을 추억하면서 “그래도 그때 너네 덕분에 삿포로 가서 털게도 먹고 그랬잖아. 맛있었는데 참.” 하는 말을 내뱉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우리 사전엔 동상이몽이란 표현이 있다. 같은 자리에서 다른 꿈, 생각을 하는.
준비된 코스 요리가 다 나오자 아빠는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잠시 자리를 비웠다. 게 요리를 잘 사주지 않던 아빠가 나가자 남편과 나는 더욱더 눈빛을 반짝이며 엄마를 바라봤다. ‘지금이야 엄마, 우리를 칭찬하고 아빠에게 쌓인 화를 풀기엔 지금이 딱이라고!’
그런데 그때 엄마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가 우리 둘을 얼어붙게 했다.
“털게는 이제 안 먹어도 될 거 같아.”
아? 잠깐. 배부르다는 걸 돌려서 표현한 건가.
당황한 것도 잠시, 이번 여행의 기획자로서 그냥 넘어갈 순 없겠다 싶었다.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데 엄마의 표정이 썩 밝지 않다. 어라. 이거 아닌데.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세 가지가 문제였다.
1. 털게 요리의 하이라이트(아마 대부분의 갑각류 요리의 하이라이트)인 털게찜이 찼다. 우리나라에서 먹었더라면 따끈따끈했을 게살이 일본에선 그렇지 않았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음식이 식은 게 아니라 일본은 원래 그렇게 먹는단다. 그런데 그게 또, 엄마의 입엔 영 별로였다.
2. 그래도 어떻게 얻은 게 요리 먹방 기회인데 먹어야지, 하고 털게찜을 해체하려는데, 아뿔싸. 털게 녀석들이 몸에 두르고 있던 털들이 이쑤시개처럼 손끝일 콕콕 찔러댔다. 안 그래도 먹기 수고스러운 갑각류인데, 먹기 난이도가 확 올라간 것이다. 게살을 파내는 도구를 식당에서 갖다 주었지만 그걸로도 엄마의 손놀림이 야무지지 못했다. 먹다가 화딱지가 날 정도로.
3. 털게찜에서 실망을 해서 그런지, 코스 요리가 괜히 비싸게 느껴졌다. 아빠가 없는 틈을 타 "이거 1인당 얼마니?" 하는 문답이 이뤄졌다.
그러고 나서하는 말,
“나는 그라탱이 제일 맛있더라.”
아. 그건 호텔 조식에서도 얼마든지 맛볼 수 있는 요리일 텐데. 삼진아웃도 모자라 넉다운이 되고야 말았다. 이러면 한 상 정성스레 차려드렸더니 다 먹고 나서 “이 집은 물이 제일 맛있네!”하는 사자(부모님과의 해외여행 에세이 1탄, [모든 게 찬푸르]에 등장하는 나의 시아버지)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
아빠의 복귀는 아직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엄마 앞에 나란히 앉은 채로 고개를 떨궜다.
“엄마, 근데, 그 말은 굳이 우리한테 안 해도 되지 않았을까?”
나는 이미 웃음 반, 정색 반이었다.
“어머니, 어째서! 그럼 이번 여행은 실패인데!”
남편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을 하면서 분위기를 바꿔보려 했다.
오마카세고 뭐고, 다 소용없었다.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널브러졌다. 그렇게 든든히 먹었는대도 어쩐지 힘이 나질 않았다. 남편은 장난 반, 진심 반으로 “이번 여행은 실패했어!” 하며 머리 뜯는 시늉을 했다. 나는 흐린 털게 눈을 하고 여행 가기 전에 부모님께 읽기 자료로 건넨다는 여행 십계명을 검색했다. 놀랍게도 열 가지 주의사항 중에서 절반 이상이 음식에 관한 내용이었다. 어디 보자.
1. ‘이 돈이면 집/한국에서 해 먹는 게 낫다’ 금지
2. ‘이거 무슨 맛으로 먹냐’ 금지
3. ‘이거 한국 돈으로 얼마냐’ 금지
어라?
쌍방 삼진아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