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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Oct 25. 2020

57. 그저 잠을 청할 뿐이죠, 라푼젤은 없었으니깐요.

'마스'와 '맵', 유럽학 석사생의 스트라스부르 수학여행 기록기 (3)

16.03.15 수요일(계속)


45분쯤 달렸을까. 쥐도 새도 모르게 어느새 국경을 넘었다(이게 바로 유럽 도로 여행의 묘미!). 스트라스부르 근교 독일 시골마을 오르텐부르크(Ortenburg)에 버스가 멈춰 섰다. 산들만 없었을 뿐, 유럽의 시골 풍경은 한국 시골 풍경과 꽤나 비슷했다(아 물론 전통 가옥들이 다르게 생겼다는 것도 빼고). 포도밭과 독일 전통 가옥 화크베어크하우스(Fachwerkhaus)들이 들어선 풍경 뒤로 붉은색과 회색 벽돌로 고이 쌓아 올린 성이 보였다. 라푼젤이 살 것만 같은 그 성이 바로 우리의 호스텔인 듯했다. 


오르텐부르크 고성 호스텔 근처의 풍경들. 때마침 노을이 지고 있어 너나 나나 할 것없이 사진을 찍기 바빴다.
오르텐부르크의 노을 풍경. 탁 트인 공기에 멋진 뷰까지! 길었던 하루 일과를 제대로 마무리하는 기분이다!
고성 호스텔의 외관. 숙소 방에서 내려다 본 다음날 아침 풍경! 정말 성이다 여기...



짐을 풀자마자 우리 모두 1층의 거실에 모여 파스타와 샐러드 뷔페를 즐겼다. 분명 음식을 가지러 가기 전까지만 해도 내 앞자리엔 독일 친구 N이 앉아 있었는데, 어느새 구스타보 교수님이 앉아 계셨다(하, 교수님과 마주 보며 식사를 해야 하다니). 하지만 부담감도 잠시, 식사 중 대화를 나눠본 구스타보 교수님이 꽤나 유쾌하시고 호기심이 넘치시는 분임을 알 수 있었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시는 게 한눈에 보였다(이런 교수님, 정말 정말 드물다). 식사가 진행됨에 따라 와인 몇 잔들이 오고 갔는데, 그에 따라 거실도 점점 더 시끄러워졌다. 어느새 고함을 고래고래 지르면서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이만하면 충분한 수다 타임이지 않았을까, 싶어 방에 돌아가 휴식을 취하려고 하자, 친구들을 한껏 사로잡은 (와인) 취기는 나까지 붙잡으려 했다. 하는 수 없이 30분 정도 더 놀다가 방으로 올라가자고 결심하고선 테이블의 유일한 한국인으로서 '프라이팬' 게임을 가르쳐 줬다. 반응이 있을까 반신반의였지만 생각 외로 친구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게 아닌가. 게임을 통해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동기들 몇몇의 이름을 외운 뒤에 나는 간신히 방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복층으로 구성된 숙소 내부는 고성 호스텔의 탑 부분에 위치한 방이었다. 그야말로 라푼젤이 머리카락을 늘어 뜨릴 것만 같은 창문이 여러개 나 있는 곳이었다(창가 근처로 가서 괜히 문을 열어보곤 했지만 3월의 밤바람은 여전히 쌀쌀했기에 계속해서 닫아두기로 했다). 총 8개의 잠자리가 있었다. 3개의 2층 침대, 그리고 다락방 느낌이 나는 복층에 1층 침대가 두 개 있었다. 아직 다른 룸메이트들이 방에 들어오지 않은 터라, 내게는 8개의 옵션이 있었다. 고성 호스텔에서의 하룻밤이니, 기왕이면 독특한 곳에서 자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어릴 적부터 2층 침대나 복층, 하여간 높은 층에 관한 로망이 있었다. 때문에 여행지에서 종종 1층 침대 좌석을 놔두고서 2층 혹은 좀 더 높은 곳에 위치한 침대를 찾아가 잠을 청하곤 했다. 나는 이를 높은 곳을 향한 로망이라고 부르곤 하는데, 이번에도 역시, 그 로망에 충실해 보기로 했다. 복층에 위치한 침대에 자리를 잡고서 사진첩을 정리하고 하루를 정리했다. 다음 날 있을 자유여행을 기다리며 인터넷으로 맛있는 카페를 찾아 지도 위에 표시해 둔었다. 이불을 덮고 천장을 바라보자 그제서야 룸메이트들이 한두명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Herzlinch Willkommen University Leuven-Belgium: 환영합니다 벨기에 뤼벤대학교! 라고 호스텔 로비 거울에 적혀있다(좌).
라푼젤이 머리카락을 늘어뜨리는 나무 창틀을 뒤로하고 나는 방의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한 침대에 자리를 잡았다.





To. Readers

우리에게(uns, [운스]): 고성 호스텔의 장점 - 유럽의 이색 숙소라 이야깃거리가 된다(이렇게 글로 남기지 않았는가!). / 고성 호스텔의 단점(생각보다 많다) - 건물 내부가 그렇게 따뜻하진 않다. 밤에 복도를 걸어 다니면 조금 무섭다(기사 갑옷 장식들이 움직일 것만 같다!!!). 라푼젤을 찾아오는 왕자님은 없다(물론 그 이전에, 머리카락을 늘어뜨리는 라푼젤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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