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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Oct 28. 2020

60.쉥겐 조약이 지운 건 그저 '물리적인' 국경이겠지

'마스'와 '맵', 유럽학 석사생의 스트라스부르 수학여행 기록기 (6)

17.03.17 금요일


수학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뤼벤으로 돌아가는 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하지만 스트라스부르에서 뤼벤이라는 동선을 고려해 볼 때, 그저 버스에만 머무르기에는 다소 아쉬웠다. 그리하여! 학교에서 기획한 오늘의 일정은 룩셈부르크에 위치한 유럽재판소(European Court of Justice:ECJ)를 들렸다 맛있는 피자를 먹고 귀가하는 것이라고 전달을 받았다. 하나라도 더 구경하고 (운이 좋다면 견문도 넓힐 수 있겠으니) 돌아가는 셈이니 무척 반가운 소식이었다.


ECJ는 유럽연합 기구의 (quasi-) 사법부 역할을 함과 동시에 그 존재만으로도 상징성이 큰 기구다(quasi-라는 표현을 집어넣은 건 ECJ의 역할에 관한 논란이 끊이질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 유럽연합의 기구들에 관한 글들을 시리즈로 적든지 해야겠다). (quasi-) 사법부로서, 독립과 투명성을 강조하려는 듯, ECJ의 외관과 내부는 '공간의 개방성(Openness of Space)'을 200% 고려한 디자인을 선보인다.


재판소에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가장 먼저 한 것은 Lenaerts 재판관의 특강을 들은 것! 전공 수업 때 들었던 내용과 크게 다른 이야기가 오고 가진 못해서 특강 뒤에 손에 쥔 ECJ USB 선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허허). 그 이후에는 ECJ 도서관과 판례집 서가를 구경하며 약간의 자유시간을 가졌다. ECJ 도서관에는 나라별로 법학 전문 서적들을 정리해 놓은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독일법 코너를 찾아가 로스쿨 준비에 한창이던 학교 후배를 위해 인증샷을 찍어 보냈다. 판례집들은 주제별로 제본 표지 색을 달리 하고 있었는데, 어느 정리꾼(?)의 손길을 탔는지 알록달록하는 와중에 각이 제대로 잡혀 있었다. 내부를 둘러보면 볼수록 ECJ가 재판소로서 차갑고 딱딱한 이미지를 밀고 나가기보다는 일종의 박물관이자 복합 문화공간 같은 인상을 만들어하고 싶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강을 들었던 메인 법정의 풍경(하단 우), 왠지 책 읽기가 절로 될 것만 같은 도서관의 진풍경(하단 중), 알록달록하게 각이 잡혀 있던 판례집 서가(하단 우)


ECJ를 구경하고서는 근처 피자집에 들렀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고소(?)한 피자 향이 식욕을 돋워주었다. 하지만...'European Service Time...'에 제대로 한방 먹었다. 주문한 연어 피자는 1시간이 지나서야 서빙이 되었고, 배가 고프다 고프다 지친 나머지 우리 모두 대충 점심을 때우고서 식당을 나와버렸다. 뤼벤 행 버스 안에서는 룩셈부르크의 풍경을 하염없이 내려다보았다. 으리으리한 회사 건물들과 대로변을 중심으로 큼직큼직한 집들이 모여 있는 풍경. 단번에 '돈 많은 룩셈부르크'하는 말을 되새기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몇 km를 두고 벨기에 국경으로 넘어가자마자 미묘하게 분위기가 바뀌는 게  아닌가. 벨기에가 가난한 나라는 아니지만 룩셈부르크가 잘 사는 곳이라는 걸 차창 밖 풍경만으로도 실감할 수 있었다.


유럽은 쉥겐 조약(Schengen Agreement)으로 나라 간 국경 통제를 없애고 사실상 '무국경(borderless)'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마음으로 유럽연합에 이르기까지 '통합'의 역사를 끌어 왔던 지역이다. 그런데, 국경이 없다시피 이렇게 버스가 자유로이 지나다니는 와중에도, 눈에는 왠지 모를 경계선이 아른거린다. 어쩌면 쉥겐 조약이 없앤 건 물리적인 장벽에만 그친 게 아닐까. 2015년부터 유럽으로 대거 쏠리는 난민 이동 (혹은 난민 위기)로 몇 년간 통합의 역사를 이끌어 오던 이 지역 국가들은 좀 더 자주 국수주의적이고 급진적인 목소리를 내더니 끝내는 극심한 사회 분열을 겪고 있질 않은가. 통합의 역사 아직 끝나지 않았, 그에 반발하는 반통합의 움직임 또한 여전히 진행중이다.




To. Readers

우리에게(uns, [운스]): 수학여행을 끝내고 기숙사에 돌아오자마자 근처 빨래방으로 '빨래 여행'을 떠났다. 세탁을 마친 옷들에서 섬유유연제 향이 폴폴 났는데, 어찌나 강렬하던지 나중에는 자그마한 기숙사 방이 섬유유연제 향으로  가득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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