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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Nov 13. 2020

76. 바르샤바 산책:마주 보지 않고 나란히 앉기로 해

2학기 중 E와 함께 한 3박 4일 폴란드 여행 (5)

17.05.06 토요일


폴란드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다녀오느라 정작 숙소가 위치한 바르샤바를 아직 둘러보지도 못했다. 때문에 오늘은 하루 종일 바르샤바에 진득하게 머무를 예정이다. 충분히 잠을 자고서 쇼핑 거리에 위치한 브런치 카페를 찾았다. 


개인적으로 유럽에서 마주한 풍경들 중 흥미롭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테이블 하나를 두고서 마주 보고 앉지 않고 대로변 혹은 거리를 향해 나란히 앉아 바깥 구경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처음엔 풍경이 참 이상해 보였다. 왜 서로의 눈을 바라보지 않고, 풍경을 보면서 이야기를 하며 커피를 홀짝이는 거지? 함께 하는 사람의 존재가 무색해지는 건 아닌지 의아했다. 그런데 E와 함께한 오늘의 브런치에서 나란히 거리를 보면서 음식과 커피를 나누다 보니 이상하게만 느껴졌던 그 풍경이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했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해서 그런가, 함께 나눌 것들이 더 많아졌다. 테이블에 놓인 음식과 커피, 같이 쓰기로 한 서로의 시간 말고도 당장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이 대화의 주제가 되어 주어 함께하는 시간이 왠지 더 풍성해지는 기분이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거리의 풍경에서 주제 삼을 것들이 생각보다 다양했다.


나란히 앉아 브런치를 즐긴 후에는 바르샤바 음대 옆 공원을 지나 쇼팽 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 내부는 쇼팽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들을 많이 구비해 두고 있었는데, 시간대를 잘 맞춰 온다면 피아노 연주회를 무료로 감상할 수도 있었다. "왜 예술가들은 폴란드를 떠났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던 마지막 기획 전시장이 특별히 인상적이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수도에서, 그리고 갖은 정치적 탄압으로부터, 많은 폴란드 예술가들이 국경을 넘은 것이다. 박물관의 하이라이트는 역시나 기념품점이 아닐까. 특히나 피아노를 전공하신 엄마 생각을 하며 뭐 하나 이쁜 거라도 사드리고 싶은 마음에, 좁디좁은 기념품점을 몇 바퀴는 돌고 돌았다. 그리고 고심 끝에 쇼팽이 외발자전거를 타고 있는 그림이 그려진 가방 하나를 골랐다.


쇼팽을 만난 이후, E와 나는 바르샤바의 구시가지를 산책하며 환전한 돈의 남은 잔액들(특히나 그 무겁던 동전들)을 처리(?)하고 싶은 마음에 엽서를 사고 요구르트 팬케이크를 사 먹으면서 바르샤바 국립대 캠퍼스를 구경하다가 거리 구석구석을 누비기를 반복했다. 잦은 폭격으로 여러모로 상처를 자주 입은 이 나라의 수도는 상처를 입을수록 건물 외벽을 더 밝게 칠하려고 노력이라도 한 걸까. 구시가지의 풍경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평화로워 보였다.









To. Readers

우리에게(uns, [운스]): 이따금 천둥이 치면서 소나기가 내리곤 했다. 그때마다 E와 나는 건물 밑으로 달려가 고양이 동영상을 보면서 비를 피하곤 했다. 고양이의 행동을 비디오로 촬영한 한 집사가 불어로 고양이 더빙을 하면서 장난을 치는 영상이었는데, 어찌나 많이 돌려 보았던지 비디오에 등장한 불어를 문장 통째로 외워버렸다.

"Ouvrez la porte, humaneeeeeee (문 열어라 닝겐!)"
https://www.youtube.com/watch?v=hHdFQlqSB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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