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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Nov 14. 2020

77. 바쁘더라도 나를 챙길 수 있는 여름이 되길

여름을 준비하던 어느 날, 타지에서 대선 개표 방송을 보면서

17.05.010 수요일


얼마 지나지 않아 FAZ(프랑크푸르트 신문)에 등장한 한국의 대선 풍경에 관한 글


대선 결과가 나오는 그 순간, 나는 CLT에서 베르나데뜨 선생님의 불어 수업을 듣고 있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개표 방송을 한참 동안 보다가 숫자들만 지켜보기가 꽤나 지루해진 나머지, '광장 민심'을 확인한다는 인터뷰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새로 출범할 정부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가 무엇일지, 지도자가 어떤 모습 혹은 전략으로 국민들에게 다가가야 할지를 두고 여러 패널들이 토론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유용한 방송이었다. 선거가 개표 과정과 숫자(득표수, 지지율 등)로 끝나버리는 게 아니라 선거가 비로소 어떠한 변화와 움직임의 출발점이 된다는 게 인터뷰와 토론을 통해서 드러나는 듯해 보였다. 내가 던진 표가 사표가 되느냐 아니냐도 중요한 문제지만 우리가 왜 선거를 치르게 되었으며, 왜 유독 이번 선거에 주목하는지를 상기시킬 수 있어 국민들, 유권자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음이 참 좋았다. 


양극화 해소, 일자리 복지 및 창출, 그리고 북한을 비롯한 각국과의 외교, 안보 문제, 동북아 국가 간의 역사 분쟁 등 어느 하나 아프지 않을 게 없던 주제들로 가득했다. 이번 스캔들과 선거 그리고 대학원 공부로 결국은 우리나라에 다시 시선을 돌릴 수 있음이 내심 기쁘기도 했다. 국제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나의 한국인 정체성은 더 또렷해져만 간다. 하지만 동시에 키워나갈 수 있는 정체성이 곧 세계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이다. 한국 속의 세계, 세계 속의 한국을 여전히 생각하게 됨은 그 때문이다. 맹목적인 애국심이 아닌 소신 있는 주장을 내세워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 곧 나의 석사과정인 듯 해 어느 때보다도 뉴스 기사들을 조금이라도 훑어보려고 한다. 


폴란드에서의 3박 4일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뤼벤에서의 유학 생활도 다시 시작한 지금. 논문을 마무리해야 할 때가 점점 다가오며 이곳에서의 1년 석사 프로그램도 끝이 다가오고 있다. 매 순간을 귀하게 쓰고 싶지만, 그리고 막상 논문에 집중하면 할수록 배움의 재미와 겸손의 자세를 몸에 익혀 나가곤 하지만, 그 집중하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려 지칠 때가 많다. 마음을 다잡고 좀 더 계획적으로 내 삶을 꾸며가 보고자 하는 마음과 조금이라도 더 게을러지고자 하는 마음 간의 줄다리기가 여전한데, 벌써 여름이 다가오려고 하고 있다.


다른 때는 그렇지 않더라도 올여름은 무엇보다도 졸업 시험, 논문 제출, 그리고 금의환향, 이 세 가지 키워드가 중첩으로 얽혀 있어 숨이 턱 막힌달까. 중앙도서관 앞에 쪼르륵 모여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는 뤼벤대 학생들의 여유 정도는 챙길 수 있는 여름이기를 기도해본다. 



한낮의 중앙도서관 앞 풍경. 햇살을 받으며 수다를 떨거나 책을 읽거나 혹은 샌드위치를 먹거나.





To. Readers

우리에게(uns, [운스]): 밖에서 하루를 온종일 보내고 돌아와 기숙사에서 챙겨 보는 <윤식당>이 당시 나의 힐링 루틴이었다. 좀 더 여유가 있는 날이면, 동기와 함께 우유가 커피보다 훨씬 더 많이 들어간 음료를 한 잔 시키고선 초콜릿을 한 입 베어 물기도 했다. 하루를 수고한 나를 챙겨주는 그 저녁 시간들이 참 따뜻했고 절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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