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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Nov 12. 2020

75.독단과 어리석음은 속죄라는 무게 추를 더해만 가고

2학기 중 E와 함께 한 3박 4일 폴란드 여행 (4)

17.05.05  금요일 (계속)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마주한 독일어는 지금껏 강의실에서 배우고 뉴스에서 읽고 들은 독일어와는 달랐다. 수용소의 권력이며 억압과 폭력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곳을 찾은 수많은 수학여행 그룹이나 가이드 그룹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언어 또한 독일어다. 이때의 독일어는 수용소 간판이나 건물 외벽에 적힌 독일어와는 다른 독일어다. 역사를 되돌아보고 직시하는 통일 독일의 상징이다. 


캠프 1과 2(철길을 사이에 두고 나뉘어 있는데 캠프 2가 1에 비해 규모가 훨씬 더 크다)로 나뉜 수용소 내부에는 추모의 의미를 담은 향로와 꽃다발이 많이 보인다. 광활한 대지에 세워진 수용소는 서럽다 싶을 정도로 체계적으로 짜여 있다. 그런 광경을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함께 보고 듣고 있으니 날을 잘못 잡았나 싶기도 하다. 조금은 날씨가 좋지 않아도 되었다 오늘 같은 날은. 좀 거뭇거뭇한 하늘로 이곳에서의 이야기들을 위로해 줘도 될 법했다. 







수용소 내부를 거닐며 이따금 영화 세트장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곳에서 벌어진 일이 진짜였다는 점이 믿어지지 않아서이기도 했고, 또 수용소 내부가 현실감 없을 정도로 잘 정돈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오래지 않은 역사의 현장이라는 점 또한 소름이 가시지 않는 대목이다. 



캠프 1에는 'Arbeit macht frei(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정문이 유명하다면, 캠프 2에는 '끊어진 선로'가 눈에 들어온다. 들어오는 곳은 있어도 돌아나갈 곳은 없다는 메시지를 담은 듯한 그곳에 누군가 하얀 꽃다발을 하나 두고 갔다. 이 곳을 향해 달려왔을 기차를 생각해 본다. 도착이란 단어도 이때만큼은 잿빛이지 않았을까. 선로의 끝자락에서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한 장면을 떠올려 본다.





독단과 어리석음은 속죄라는 무게 추를 더해만 간다. 저울은 기울고 또 기운다. 그리고 옛날이야기가 아닌 오늘의 이야기는 끝을 내는 법을 잊어버렸다. 



    





To. Readers

우리에게(uns, [운스]): 바르샤바 중앙역에서 크라쿠프 중앙역까지 운행하는 아침 기차를 탔을 때 폴란드의 60대 과학자 할아버지께서 말동무를 해주셨다. 행선지를 물으시더니 아우슈비츠에 간다고 대답하는 나와 E에게 할아버지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시더니 조심스레 말을 이어나가셨다. 최근에 할아버지의 한 일본인 동료가 한중일 삼국 간의 역사 분쟁에 관심을 갖고 있어 아우슈비츠를 가고 싶어 했다고 한다. 때문에 가이드 차 할아버지는 예정에도 없던 두 번째 아우슈비츠 방문길에 나섰다는데 두 번으로는 족하다며 더 이상은 그곳에 가고 싶지 않다며 혀를 내두르셨다. 그렇지만 한 번쯤은 꼭 가봐야 하는 곳이라며 나와 내 친구의 일정을 격려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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