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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Choi Jan 03. 2017

빙산의 아래를 보는 눈

work designer_Jinnie 

지난 겨울 저는 예상치 못하게 3주라는 긴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예정되어 있었던 엄마의 수술이 생각보다 커져서 장기간 가까이서 간병을 할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고, 여건상 제가 그 역할을 맡게 되었어요. 세상에.. 어떻게 저는 ‘병실에서 틈틈히 일하면 되겠지..’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던걸까요? 환자가 겪는 고통은 말할것도 없지만, 간병도 여간 힘든것이 아니더라구요. 매시간 아니, 매순간 뭔가를 해야했어요. 심지어 한밤중에도 1-2시간마다 깨서 모니터의 숫자들을 확인하고, 엄마가 괜찮으신지 보고, 화장실 용무를 도와드리고, 처치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간호사실에 연락하고.. 3시간에 한번씩 가습기 물도 갈았는데, 그 시간이 어찌나 자주 돌아오던지요.. 잠을 제대로 못자며 생활을 하다보니 낮에도 정신이 없더라구요. 밤새 수유하며 아이를 돌보는 엄마들의 생활이 이렇겠구나싶어, 새삼 엄마들에게 존경의 마음이 들었어요. 진심으로요!


그 존경의 마음을 갖게된 다른 분들이 있는데 바로 의사, 간호사들을 비롯한 병원에서 근무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제대로 잠도 못자고,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피로한 이 생활을 1주일만해도 좀비가 되어 돌아다니는 기분이었는데, 매일 장시간 근무, 교대근무를 하고 계시는 의료진 분들은 도대체 이 생활을 어떻게 유지하고 계실까하는 의문과 함께 무한한 존경심이 동시에 생기더라구요. 매일 아침 병실에 들르는 레지던트 선생님이 한분 계셨는데, 어느날은 그 선생님이 너무 피곤해보이셔서 제가 “선생님이 침대에 누워 쉬셔야겠는데요? 왜이리 피곤해보이세요”라고 농담을 한 적도 있었어요. “아, 그런가요? 뭐 레지던트 생활이 다 그렇지요 뭐..”라며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셨지만, 지난 이틀 내내 주야로 근무하셨던것을 봤기에 안쓰러운 마음까지 들더라구요. 밤낮없이 일하는 일정, 늘 환자들을 대해야하는 피로함과 업무의 긴급함에서 오는 중압감과 스트레스도 이미 이 일을 힘들게 만들기에 충분했는데, 병원에 있는 동안 불만이 있는 환자나 보호자들이 병원에서 큰 소리를 내며 의료진들에게 다짜고짜 화를 내는 장면들을 종종 보기도했습니다.


참.. 쉽지 않은 직업이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이 힘든 장면을 빼고 이 직업을 얘기할 수 있을까라고 질문하면, 그것도 말이 안되더라구요. 멀끔한 가운을 갖춰입고, 점잖게 환자들 회진하고 오피스에서 진료만 하는 의료진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겠지요. (글쎄요.. 경력이 한참 높은 분들은 가능하려나요? 하지만 그분들도 이 과정들을 모두 거치고 그 자리에 계시는거겠죠?) 입원 환자들이 있는 환경이니 누군가는 밤샘 근무를 해야하고, 다급한 상황들에 의료 카트를 밀며 뛰어야하고, 식사를 거르는것은 다반사에, 밤샘 교대근무로 두 눈은 충혈되고, 투병에 지치고 힘든 환자들과 그 가족들을 매일 상대해야하는.. 의료진은 제가 본 직업중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아무리 존경받는 직업이라도, 아무리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직업이라도 이런 일을 내가 할 수 있었을까..? 선뜻 그렇다는 대답이 나오지 않더라구요. 직업에 대한 대단한 흥미와 열정, 사명이 아니라면 정말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의사와 간호사.. 그 화려한 이름 뒤에 놓여진 이 모습을 간과하고 이 일을 하겠다고 한다면, 또 어떤 이유로든 이런 생활 패턴을 견딜 수 없는 사람이 이 직업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요? 비단 의료 분야에만 국한되는 얘기는 아니겠지요. 펀드매니저를 하는 제 친구의 출근 시간은 제가 아는 그 누구보다 빠르고 퇴근 시간은 따로 없습니다. 업계에 큰 이슈라도 있는 날에는 1분1초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컴퓨터와 전화기에 모든 촉각을 세우고 있어야하고요, 얘기치 못한 상황에 고객의 항의를 오롯이 들어야하는 것도 그 친구의 몫이기도 합니다. 글로벌하게 진행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일을 했던 후보자 분은 여러나라의 요청에 대응하느라 밤낮없이 일을 하셨고, 덕분에 친구를 만나거나 취미활동같은 개인생활은 잊고 산지 오래라고 하셨어요.


제가 했던 헤드헌터 일은 어땠을까요? 후보자를 인터뷰하고, 인터뷰한 후보자를 고객사에 추천해주는 일이라고만 생각하고 헨트헌터 업무에 지원하신 분들 많이 봤는데요, 그건 이 일의 아주 극히 일부에 불과해서 걱정부터 앞섰지요. 고객을 확보하려면 콜드콜도 많이 해야하는데, 이런 일을 생각이나 해봤을까?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고객도 많을것이고, 대체 연락처는 어디서 알아낸거냐며 큰소리를 치는 고객도 있을텐데, 괜찮을까? 매달 어깨를 짓누르는 세일즈 압박이 있을텐데 잘 이겨낼 수 있을까..?


어떤 직업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우리가 고객으로, 파트너로, 제3자로서 그 직업을 만나는 순간들로 해석되고 기억되기 마련이지요. 그러나 내가 그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그 빙산의 일각만 보는것을 넘어서 수면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까지도 모두 감당해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큰 부분을 차지하기도 하지요. 그 어려움을 들쳐보고 ‘어? 내가 생각했던것이 아니네?’하고 돌아설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겠다고 결심할때 그 뒤에 숨겨진 어려움과 고난을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것 같습니다. 그 힘든 부분을 안고 갈 수 있을만큼 내가 이 일에 열정이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그 어려움을 해결해 나갈지 계획을 다듬어 볼 수 있도록요. 또 보이지 않는 업무까지 알만큼 일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다는것, 또 그것들까지도 잘 해내고싶은 각오가 되어 있다면  누구라도 함께 일하고 싶을거예요.


보통 눈에 보이는 이유에 반해 일을 시작했다가, 보지 못했던 이유때문에 일을 그만두게 되지요. 하지만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있을까요? 일이 갖는 나름의 어려움을 인정하고 그것을 잘 해결해낸다면, 보지 못했던 기쁨과 환희로 그 노력을 보상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또 그 모든것을 오롯이 보듬었을때 비로소 이 일이 내것이 되었다는 충만한 느낌도 가질수 있을거구요.


오늘도 수면 아래에서 고군분투하고 계실 여러분, 모두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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