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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Choi Feb 14. 2017

도쿄에서 생긴 일

by Wodian Jasmine

지난 구정연휴에 저희 부부는 친정 식구들과 함께 일본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을 5년 동안 왔다 갔다 했지만, 그 옆나라인 일본을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남편이 이번 여행을 주도 했고, 일본어를 전공하고 능숙하게 말할 수 있는 제 동생이 계획을 착착 서포트 해주었습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인천 공항 활주로를 치우느라 출발 부터 지연이 되었던 여정을 시작으로, (늘 그렇듯)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많았고, 우리 가족만(!) 이해 할 수 있는 농담 코드도 몇개 만들고 올 수 있었지요. 우리 중에 유일하게 일본어를 할 수 있는 동생이, 두돌이 안된 조카와 (아이와 다를 바 없이 독립성이 부족한) 성인 4명을 가이드 하느라 정말 고생을 많이 했어요. 동생 덕에, 여행 초반 코스인 오사카와 쿄토를 편하게 그리고 안전하게 여행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친정 식구들이 일정을 마치고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고, 우리 둘만 덩그라니 남겨져 도쿄로 가는 여정부터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불변의 법칙이지요, 조력자가 없을때 꼭 문제는 발생한다는것 이요. 둘다 일어를 못하고, 비행기는 연착이 되었고, 공항에서 시내로 돌아 가는 특급 열차 편의 스케쥴이 모두 종료 되었을때.. 차로 1.5시간이 걸리는 공항에서 시내까지 어떻게 들어갈 것인지 몰라 발을 동동 굴렸습니다. 다행히 몇분 차이로 시내로 들어가는 마지막 리무진을 잡아 타고 신주쿠까지 들어가 다시 비싼 택시를 잡아타고 겨우 겨우 예약해 둔 곳에 도착했습니다. 기진 맥진, 저녁은 커녕 마실 물도 주지 않던 저가 항공을 타고, 리무진과 택시를 갈아타며 숙소 근처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2시경. 동생의 호위와 가이드를 받으며 행복하게 시작했던 훈훈한 가족 여행은, 어느새 무능한 부부의 서바이벌, 극기훈련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에어 비앤비 예약으로 숙소 주소만 가지고 번지수를 찾아 헤매던 그 추운 새벽, 믿고 있었던 핸드폰 마저 방전이 되니 정말 눈물 날 정도로 깜깜했어요. 근데 저를 정말 좌절하고 짜증나게 했던 것은, 그 상황 자체 보다 남편의 반응이었어요. 네, 그는 정말 너무나 여유로웠어요. 



십몇년 전 일본에 관광을 와봤다는 이유로, 남편에게는 아내가 뭐든 다 해낼 도쿄 전문가(?)로 보였던 걸까요, 아님 춥고 배고픈 상황을 제가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아직 깨닫지 못해서 일까요.. 남편은 그 추운 새벽 숙소를 더듬더듬 찾아 헤매며 얼굴이 굳어져 가는 저를 보면서, 한 발짝 뒤에서 다 괜찮다고 금방 따뜻한 집으로 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자꾸 자꾸 다독여 주었습니다. 



'뭐? 다 괜찮다고? 뭐가 괜찮아! 그렇다면 네가 좀 찾아봐아! 나 추워 죽겠거든. 게다가 우리 저녁도 못먹었자나. 난 절망적인데, 넌 왜 자꾸 그냥 다 괜찮다고 하는 거야!'



나와있는 주소지를 찾을 수가 없어 동네를 몇번째 돌다, 너무나 추웠던 새벽 칼바람에 마음도 칼이 되었지요. 숙소 선정 부터 예약까지 제가 다 해두어서 주소를 들고 집을 찾는 것은 어찌 보면 제 몫이었음에도, 그때 저는 남편에게 슈퍼맨 능력을 기대한 것 같아요. 평소에는 유순한 곰 같은 남편이 제가 어려운 상황이 되면 민첩한 슈퍼맨이 되어 문제를 착착 해결하는 상상.. 푸.. 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



결국..!


시간이 지나고 문제는 해결 되었습니다. 다행이죠. 골목을 다시 찾고 찾아 그로부터 30 분 더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우리는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고 따뜻한 물로 샤워하여 몸을 녹힐 수 있었습니다. 자기 전, 남편에게 사과 했어요. 



'아까 내가 너무 예민했지? 내가 쏴 붙이듯 이야기 한것 인정해. 너무 춥고 어두운데, 혹시 이러다 노숙자로 밤을 새는건 아닌가 너무 걱정했어' 



'응 괜찮아, 근데 내가 맞았지? 우리 결국 집을 찾아 들어왔고.. 이렇게 따뜻한 곳에 누워 있자나. 결국 이렇게 된다고 내가 그랬지? 너는 상황을 최악를 염두해 두며 스스로를 들들 볶지만, 나는 너를 믿거든. 결국 해결점을 찾는 다는 것을. 시간이 좀 걸리고, 에너지를 쓰는 한이 있어도 너는 그걸 꼭 해냈어. 이번에도 미안하게도 내가 어찌 보면 도움이 전혀 안되는 상황인데도, 그래도 잘 해주어 고마워. 정말 고마워. 태어나서 도쿄에 처음 왔는데, 네 덕에 그리고 우리의 경험 덕에 절대 잊지 못할 첫 기억을 가졌네'



남편의 이야기가 쏟아지는 졸음에 멀리 아득해 지면서도 뭔가 마음이 따뜻해 졌어요. 그러고 보니, 남편은 그렇게 저로부터 한 발짝 뒤에 서서 늘 응원하고 다독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해도, 내가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의 열쇠를 쥐고 있지는 않아도, 어디서 오는 긍정성인지 알 수는 없지만 늘 그렇게 말 해주었어요. 



'다 잘 되거야. 믿어봐. 기다려봐. 조금 더 해봐.'



다음 날, 따뜻한 침대에서 푹 자고 일어나 남편에게 제가 먼저 그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래봤자 그게 몇시간 전인데, 우리 고생한게 아주 오래전 같다고요. 지나고 나면 정말 웃음밖에 안나는 사건인데, 그 중간에 서 있을때는 참 고생스러워 불필요하게 아픔을 극대화 하며 고통을 자처하는 습관이 제게 분명 있는 것 같다고요. 그리고 사실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 중 하나가 참 풀리지 않아 속상한 마음이 있는데, 당신이 이야기 한 그 교훈을 다시 기억해 보겠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시간이 좀 걸려도, 추워서 발을 동동 좀 굴려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어 무기력하게 느껴져도, 저를 더 믿어 주겠다고요. 





그렇게 아침을 먹고 롯본기 타워에 올라가 보니, 날씨가 완전히 개어 봄 날씨처럼 포근했습니다. 멀리 후지산도 아주 깨끗하게 보여서 아름다운 장관도 덤으로 보고 왔고요. 전 날 고생했던 그 새벽은 청소한 듯이 저쪽 머리 한 구석으로 치워졌습니다. 그리고 생각 했지요. 힘들었던 영겁의 시간 같았던 그 새벽이 지나고 보면 사실 아주 찰나 처럼 느껴지는 것 처럼.. 내가 하는 일과 삶에서 만나는 어둠의 길을, 깜깜히 막힌 동굴이 아니라 끝이 뚫린 터널로 생각 해야 겠다고요. 결국 빛을 만나고, 봄을 만난다는 믿음을 가지고 말이지요. 



끝이 좋으면 다 좋은게 맞는 걸까요? 그 어두운 새벽, 다시는 일본에 오지 않겠다 다짐했던 저는 어디가고, 내년 혹은 내 후년에 남편과 다시 오겠다고 약속 했답니다. 단, 춥지 않는 계절에, 간판이 크게 걸린 호텔에서 묶는 조건으로요. 흐흐. 



이제 입춘이 지났으니, 이 추운 터널 끝에 우리를 기다리는 아름다운 봄을 다시 그려봐도 되겠죠? :) 




Be Wodian,

Jasm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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