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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Choi Feb 15. 2017

그 많던 벌레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by Wodian Grace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워디랩스의 그레이스에요.

음.. 얼마 전 다섯 살 먹은 아들이 TV을 틀어달라고 생떼를 부려, 채널을 돌리다 보니 EBS에서 겨울을 보내는 곤충 알, 애벌레, 성충을 그린 담담한 다큐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만화가 아니었지만, 그 채널을 호기심 있게 보았고 저는 더 이상 생떼 부리지 않아 다행이다 생각하며 무심코 같이 앉아 시청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문득 작년 여름이 떠올랐습니다. 작년 7월 처음으로 주택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유난히 더웠던 그 여름  제가 겪은 여러 희로애락의 감정 중  ‘노’에 공을 혁혁히 세운 이들이 바로 집안을 여기저기 기어 다니는 ‘벌레’ 였는데요.

집이 야산과 닿아 있어, 벌레의 습격은 실로 엄청났습니다. 정말 살면서 처음 보는 희귀한 벌레부터, 좁쌀만 한 벌레의 번식까지 무시무시했습니다. 하루에 5번 정도 청소기를 돌려 벌레의 사체를 제거하고, 벌레퇴치 스프레이를 뿌리고.. 벌레 노이로제의 극심한 스트레스로 근처 이모네로 피신을 간 적도 있었어요. 

그리고 날이 시원해지면서 점점 줄어들더니 겨울이 되니, 그 작은 생명체의 움직임을 집안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추워서 좋다고 생각한 것은, 오직 하나의 이유!  "더 이상 벌레와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 벌레들이 어떻게 겨울을 보내고 있는지에 대한 다큐는 저희 편협한 생각의 각도를 틀어 준 긍정적 울림의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동면하는 동물들이 그러하듯 추운 겨울 최소한의 에너지를 쓰며, 나뭇가지 아래, 낙엽 아래, 도무지 육안으로는 식별되지 않는 보호색을 걸치고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이 추운 겨울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알에서는 부화의 준비를, 애벌레는 번데기로 변신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지요. 이렇게 꼼짝없이 견디지만, 천적인 새에게 발각되어 살아남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말없이, 이 겨울을 견디고 또 살아남은 이들은 따뜻한 봄이 왔을 때,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꽃도 보고, 나무도 보고 훨훨 날며 봄을 즐길 수 있겠지요. 

워디랩스 일을 시작하면서, 이번 겨울이 유독 춥게 느껴졌는데 곤충 친구들의 겨울나기를 보며,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꿋꿋이 버텨내는 것의 미덕을 ‘겨울을 나는 벌레’들에게 한 수 배워봅니다. 

누구나 인생의 스테이지에서 겨울을 견뎌야 하는 시기는 있기 마련입니다. 어쩌면 그 겨울이 무척 길 수도, 자주 찾아오기도, 또는 아주 매서울 수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겨울을 현명하게 보낸 시간 이후에는, 자연의 섭리가 그러하듯 우리네 삶에도 봄이 오기 마련이고, 겨울을 보낸 지내온 이가 느끼는 봄은 더욱 만끽할 것들이 많지 않을까요? 


이 글을 읽는 독자분 중, 삶의 겨울을 보내고 계시는 분이 있다면 밖을 나가 나무와, 나무 밑에 고요히 숨어 있는 벌레를 찾아보세요.


이 겨울을 보내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랍니다. 




Be Wodian,

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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