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race Choi Jun 21. 2019

성찰의 시간을
유투버에게 양보한 우리

By Wodian Grace 


몇 달 전 동대문 DDP에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갔다가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이 직접 판매하는 프리마켓의 현장을 보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큰 충격이었어요. 여고생들이 프리마켓에 들어가기 위해 어마어마한 공간의 DDP를 에워쌀 정도로 줄을 길게 서 있었고, 프리마켓 현장에는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인파와 물건, 물건을 담은 비닐봉지가 날아다니며 극도로 번잡스러웠지만 물건을 사는 아이들은 전혀 불만 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크리에이터가 만든 티셔츠, 후드티 (거의 대부분 검은색에 로고가 박힌)를 몇 개씩 사며 즐거워했습니다. 


유통업에 몸을 담은 경험이 있는 저는, 모든 유통서비스의 프로세스와 판매의 기준이 다 무너진 현장을 목격한 것이었지요. 내가 정말 이미 이 아이들과 소통하는데 나이가 들어 버렸구나, 세상이 이렇게 바뀌고 있구나.. 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애초에 그곳에 가게 된 계기는 사실 가족 나들이를 빙자한 남편의 시장조사를 따라간 것이었습니다. 온라인 마케팅을 해온 그는, 최근 크리에이터들의 프리마켓 ‘셀마켓’이라고도 일컫는 시장을 실제로 보았으면 했고 전 뭐 주말에 특히 할 일도 없으니 용감하게 아이를 데리고 그 난리통에 들어가 본 것이었지요. 남편의 정보에 따르면, 한 명의 크리에이터가 그날 하루 올린 매출은 2.5~4천만 원 수준이라고 했습니다. 어마어마하지 않나요? 2평도 안 되는 공간에 옷걸이만 몇 개 걸어놓고, 하루 장사에 몇천을 벌다니요!! 이 친구들은 각자가 운영하는 채널이 있을 뿐 물건을 파는 온, 오프라인 가게도 대부분 없을 거예요.  크리에이터는 고등학생부터 30대 초반까지 있었고 대부분은 20대 초반이더라고요. 

우리는 이들을 인플루언서라고도 부르는데 이들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질 것입니다. 앞으로 소비 주역으로 꼽히는 Z세대의 라이프 스타일을 분석한 것을 보면 'How to - 어떻게 배울 수 있나' 와 관련된 영상을 텍스트가 아닌 영상 콘텐츠 형태의 정보로 분석하는 검색량이 매년 70%씩 성장하고 있다고도 하니까요. 이 친구들은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이런 긴 글은 읽지 않을 거예요. 


사회는 인플루언서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꿈은 인플루언서가 되는 것이고, 기업은 이들과 어떻게 협업하여 마케팅효과를 극대화할지 모색하고 할지 개성으로 무장한 개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생산해냅니다. 자신이 좋아하고 즐겨하는 것은 무엇이든, 콘텐츠가 되어 팬을 구축하고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치지요.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고, 돈을 벌 수 있고, 어떤 소재로도 소통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이렇듯 크리에이터에 주목하지만, 사실 어마어마한 뷰어가 있기에 크리에이터의 성장도 가능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수백만의 클릭수를 찍어주는 뷰어들.. 사실상 대부분의 우리입니다. 7살 먹은 우리 집 꼬마도 한몫하는데.. 교육에 업을 두고 살아가는 저에게, 이 아이들에게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는 참 많이 봅니다. 보고 또 보고 작은 핸드폰 안의 세상 속에서 일상의 많은 시간을 동거 동락합니다. 그러나 보는 삶은 성찰의 시간을 자연스럽게 빼앗았습니다. 과거에는 노동을 하느라 바빠서 성찰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노동의 시간은 줄었지만, 우리는 즐거움을 찾고 재미있는 것들을 보느라 여전히 바쁘지요. 보는 시간과 성찰의 시간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성찰은 곱씹고, 떠올리고, 다시 재 해석하며 의미를 발견하는 시간입니다. 성찰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게 하고,  유용하고 유해한 것들을 걸러내는 힘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누군가의 독특함을 감상하기 위해, 스스로를 위한 성찰의 시간을 기꺼이 양보하고 있습니다. 


시장의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콘텐츠 시장에서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생산자(크리에이터)의 질은 그들만의 몫은 아닐 것입니다. '뷰어'의 니즈와 욕구로 만들어 지지요. 크리에이터가 되든 뷰어가 되든 양쪽 무엇이 다 되든 우리는 현재와 같은 '소통의 시대'를 거스르며 살아갈 수 없고, 속도는 예전보다 훨씬 가속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를 살아갈수록 개개인의 성숙한 관점은 더욱 단단하게 장착되어야 하고, 저 역시 성찰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교육과 콘텐츠를 만들어가야 함에 책임을 느낍니다. 

그리고 글을 써 보는 것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성찰의 방법이라고 입을모아 이야기합니다. 

몇 년 전 대학원 수업에서 일주일에 5장의 글을 써야하는 과제가 주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일상을 관찰하고 자신의 관점이 담긴 글을 써 보는 것이지요. 처음엔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누가 특별히 봐주는 것도 아닌데, 쑥스럽고 불편했습니다. 매끄럽지 않은 맥락과 뻔한 단어사용에 괴로워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잘 쓰고 못쓰고를 떠나 '글감'을 찾기위해, 제 일상이 그냥 스쳐보내지 않는 의지가 생겼습니다. 작은 사건과 누군가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게 되고, 연결시켜보려고 바둥거려보았습니다. 김영하 작가는 글쓰기를 '삶의 무의미에서 맞서는 일' 이라고 말합니다. 일상의 삶 속에서 글로 한가닥 의미를 끄집어 내고,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관점으로 표현해내는 일련의 과정에서 범람하는 콘텐츠에서 진짜 내 삶에 귀한 정보와 즐거움을 '취할 수 있는' 분별의 힘이 생긴다고 분명히 믿습니다. 


유난히 햇살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토요일 오전입니다. 
오감으로 만끽하는 주말 보내시고, 냉커피 한 잔 하시며 한 주의 일들을 글로 긁적여 보아요. 


Be Wodian
Grace Choi 드림 


매거진의 이전글 안도 타타오에게 배우는 워크디자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