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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Choi May 31. 2019

안도 타타오에게 배우는 워크디자인

By Wodian Grace Choi 

일본 오사카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를 아시나요? 빛의 교회, 누드 콘크리트 기법이라는 시멘트 노출을 전 세계적으로 유행시킨 건축가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제주도와 가까운 곳으로는 원주의 '뮤지엄 산'에서 그의 작품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전 얼마 전 ‘안도 타다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노원의 한 복합 문화공간에서 상영했는데, 저희 집에서 지하철로 꼬박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 멀고 먼 곳 서울 땅이었지요. 영화는 건축가 안도 타다오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 그의 ‘건축 작품’처럼 군더더기 없고, 솔직하게 담아내었습니다. 


늘, 유명한 누군가의 이름을 알면 우리는 마치 그 사람이나 대상에 대해 아는 것처럼 느끼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는 것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듯 저에겐 이 영화가 ‘안도 타다오’라는 사람을 바르게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건축가로서의 50년이 넘는 여정에서 도전과 실패, 그리고 삶과 일을 대하는 태도가 사람으로부터 받는 강렬한 자극이 되어 한동안 제 마음에 공명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오늘은 제가 하고 있는 일과 삶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한 안도 타다오의 이야기를 워디 레터 독자분들께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공고 출신의 건축가가 도쿄대 건축학과 교수로 정년퇴직하다’ 

건축은 특히나 전문적 영역이라, 당연히 건축을 전공한 사람만이 건축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기 마련입니다만, 안도 타다오의 최종학력은 고졸입니다. 공고를 졸업했고, 고교시절 권투선수이기도 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보기 위해 권투에 입문했지만 스스로 권투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하여, 깔끔하게 포기한 후 그는 건설현장에서 소위 ‘막일’를 하며 건축의 세계로 발을 딛게 됩니다. 건축공부를 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가정 형편의 이유가 컸지만, 그는 독학을 즐겼습니다. 건축 전공서적을 모조리 혼자 공부한 것은 기본이고, 돈을 좀 모았다 싶으면 그 돈으로 끊임없이 해외로 나가 우상으로 삼고 있는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작품을 직접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왔습니다. 보고, 듣고, 경험해보는 스스로의 커리큘럼을 만들어 십수 년 외롭고 혹독하게 공부했습니다. 


그 역시 건축을 전공하지 못한 것은 아쉬워하지만,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방법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설계해 나가는 데 있어 오히려 자유롭게 펼칠 수 있었던 듯합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고 말렸을만한 선생님도, 선후배도 딱히 없었던 그는 건물의 레이아웃, 창의 위치, 건축의 재료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시도에 있어 거리낌이 없었지요. 그렇다고 건축의 기본을 무시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고객의 이야기와 건물의 입지, 그리고 그 건물이 왜 그곳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본질’을 그의 방식으로 구현해 내려고 했었지요. 


처음 사무소를 열고 몇 년 동안 일거리가 없어, 사무소 바닥에서 이런저런 상상의 스케치만 그렸던 그는 첫 데뷔작인 '스미요시 나가야(住吉の長屋)' 라는 작은 집을 설계합니다. 사진에서처럼 정말 작은집인데, 가운데 중정을 뻥 뚫어 버렸지요. 

이 집은 비가 오는 날 집 안에서 우산을 쓰고 다녀야 하는 집입니다. 그는 이 작은 공간에 중정이 있으면 자연을 담을 수 있기에, 우주가 있는 가장 큰 집을 설계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보통의 사람들의 눈으로는 분명 불편함 천지이지만, 주택이 반드시 편안해야 한다는 것은 서구식 서양주택의 프레임이니 이 역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지요. '스미요시 나가야'하는 작품으로 비난과 찬사를 동시에 받았지만, 그는 확실히 주목받는 건축가가 되었습니다. 이후 일본의 70~80년대 일본 건설경기의 호황으로 흐름을 타게 되며 수많은 일본 내 상징적인 건축물을 설계하게 됩니다. 글로벌 프로젝트도 자연스럽게 이어져, 건축계의 노벨상인 플리츠커상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건축가에게 주는 상을 모두 휩쓴 건축가가 되었지요. 그리고 도쿄대 최초로 고교 졸업장을 가진 건축학과 정교수로, 정년퇴직 때까지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지요. 


‘실패작만 모아 전시하다’ 

안도 타다오가 유명해지면서, 그의 작품세계를 담은 전시회에 대한 요청도 쇄도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연 한 작은 전시에서는 그동안 공모전에 출시하고 도전했지만 떨어졌거나, 중간에 프로젝트가 중지되었거나 등 소위 실패한 것들만 모두 모아 전시회가 열였습니다. 우리가 영국 런던을 여행하면 들르는 테이트 모던 갤러리 … 뉴욕 911테러 후 지어진 원트레이드 빌딩 등 지금은 다른 건축가의 작품으로 채워진 곳으로, 안도 타다오가 열심히 고민했고 제안했고 또 실패한 프로젝트입니다. 

그러한 어마어마한 공간을 제안을 하기 위해서는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의 고민을 담고 스케치하고, 디자인한 후 모형을 만들고 발표자료를 만들어야 하는 등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뒷단에서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노력한 것들이 성과가 나지 않았을 때, 우리는 그다음에 비슷한 조건이 주어진 제안을 해야 할 때 으레 겁먹거나 도망가거나 대충 하려고 합니다. 실패로 인해 상처 받고 싶지 않아서지요.  


그런데, 안도 선생은 그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대놓고 하는 것을 즐겨합니다. "해보고, 안되면 말지요! 죽는것도 아닌데~ 대신 죽기살기로 도전은 해보는거지!" 라는 호탕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그는 자신의 제안이 떨어진 다른 건축가가 완성한 건축물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며 역시 이래서 내가 떨어졌구나! 하고 떨어진 이유를 흠뻑 느끼고 온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그는 제안을 하는 과정 자체에서 희열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미 제안이 채택되어서 건축이 시작되면 그때부터는 현실과의 싸움이지만, 제안은 상상하고 그려보는 과정 자체가 자신에게 오롯이 주어지기 때문에 그 기쁨이 크다는 것이지요. 


도대체 무슨 말 일까? 상상을 하다 문득 지난해 겨울 공들여 제안한 한 프로젝트가 떠올랐습니다. 그 경쟁 PT자료를 위해 일주일 넘게 밤잠을 설치고,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상황을 열심히 상상하고 프로젝트에 함께 할 수 있을 만한 사람들을 모아보고 전화를 돌려가며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제안서를 준비하며 정보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주변에서는  “워디 랩스는 들러리가 확실할 듯해요. A회사와 어느 정도 이야기가 된 것 같은데요?" 라는 정보도 들어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묘하게 느끼는 상상의 즐거움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현실화되어, 교육장에서 진행된다면 어떨 느낌일까? 어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우리가 개발한 도구를 많은 사람들이 만지고, 쓰고 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흐뭇했습니다. 물론 이 제안에서는 보기 좋게 떨어졌고, 제안을 하며 만들어 놓은 문서의 폴더를 보면 아직도 착찹한 기분이 듭니다. 


안도 선생님의 말대로, 준비의 과정에서 느끼는 설렘에 주목한다면 실패를 다른 얼굴로 바라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다음의 도전 상황을 바라볼 때, 자격지심이나 피해의식에 얽매이지 않고 더 투명하고 순수하게 접근할 수 있겠다는 단단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안도 선생을 떠올리며, 이  글을 써 내려간 후 책상에 다시 가만히 앉아 눈을 감아 보았습니다.

치밀한 관찰과 성찰의 과정으로 대상을 이해하는 예리한 눈, 그것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풀어내는 손,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 내는 가치를 상상하고 끈질기게 소통하는 열정을 내뿜는 입술... 바다 건너 사는 한 할아버지의 강한 얼굴이 그려집니다. 



오늘도 이 할아버지가, 저를 움직이게 하네요. 

일터로 어서 나가 보아야겠습니다. 



Be Wodian

Grace Choi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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