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성 장애를 의심하면서 도착한 병원에서는 본격적인 진료 전, 간단한 심리 검사를 진행했다. '여기에서는 뭔가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실낱같은 희망을 품으며 체크를 해나갔지만, 그 희망은 진료 의자에 앉는 순간 무참히 잘려 나갔다.
양극성 장애로 사료됩니다
병을 공식적으로 인정? 받는 순간이었다. 의사는 지나가는 경조증인지, 집중 치료가 필요한 중증인지 지켜보자고 했다. 어느정도 결과를 예측 했으면서도 막상 진단을 받으니 다시 한번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나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의사는 덤덤하게 진료를 이어갔다.
특히 조증이 올라온 시기에는 뭐든 할 수 있을 거라는 망상에 사로잡힐 수 있으니 웬만하면 흑역사가 될 만한 일은 만들지 말라고 했다.
나름대로 일생일대의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이 말에 그만 웃음이 빵 터지고 말았다. 마침, 유튜브를 시작해 볼지 고민했던 시기라 찔려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의사는 환자 중, 이 망상이 긍정적으로 발휘돼 법학과 의학박사 학위를 동시에 획득한 사례도 있었지만, 이는 극히 드문 케이스고 대부분 일을 저지르고 그 결과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솔직히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좋은 케이스가 되지 말란 법이 어디 있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가 말한 망상의 시작이 바로 이 지점이 아니었나 싶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의사가 말했던 후자에 속했기 때문이다. 발병 시기보다 조금 빠르게 투입됐던 프로젝트가 있는데 진단 직후 하차해야 한다는 걸 직감했지만 너무 좋은 기회였기에 결단을 내리지 못했고, 그 결과 커리어에 오점을 남길 만큼 매우 아쉬운 결과를 냈고, 이에 따라 자존감 또한 박살 났었다.
양극성 장애가 본격적으로 고개를 드밀기 전에 찾아온 기회라 잡은 것이었지만, 나는 물러나지 않음으로 의사가 말한 흑역사를 만들고 말았고, 이를 두고두고 후회하며 이불킥 중이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이들 중에서 주변에 양극성 장애의 정점을 지나는 분이 있다면, 잠시 주요 프로젝트에서는 물러날 것을 권면해 주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는다면 어떤 흑역사가 소중한 이 앞에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