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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정저장소 Jan 26. 2021

56. 죽마고우와의 벽

어쩌면 우리는 그리워하고 있을 수도 있다

9년 지기 친구가 있다. 학교도 같이 다니고, 여행도 같이 다닐 정도로 가까운 친구. 자그마한 사건들이 모여 약 2년에 걸쳐 우리 둘의 관계는 틀어졌고, 끝났다. 더 이상 연락을 하지도 않았고, 더 이상 연락이 오지도 않았다. 그렇게 서서히 그 친구는 내 기억 속에서 잊혔다.

종종 친구들에게 그 친구의 소식을 들을 때면, 난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때의 화난 감정이 다시 올라올까 봐였다. 우리 사이에 벽돌이 하나 둘 놓이다가 그 벽돌들이 모여 벽이 되었다. 그 벽을 넘는 것은 너무 어려웠고, 더 이상 넘어야 할 필요성도 못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가 정말 갑자기, 며칠 전에 그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받아야 될지, 말아야 될지. 받으면 무슨 말을 해야 될지. 수많은 생각들이 겹쳐졌다.

일단 전화를 받고, 수화기 속에서 미안하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그 친구가 나에게 무슨 잘못을 했는지, 내가 뭐 때문에 화가 났고, 왜 관계가 틀어지게 된 건지 기억이 안 났다. 목소리를 들으니까 그냥, 그 친구와 웃고 놀았을 때가 엊그제 일 같았다. 어쩌다 이런 사이가 되었을까.

그 친구의 전화 한 통으로 인해 2년간 쌓인 우리 사이의 벽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벽을 무너뜨리는 게 이렇게 쉬운 것일 줄은 몰랐다. 그가 건넨 전화 한 통이 영원히 등을 돌릴 것 같았던 우리의 관계를 다시 돌려놓은 것이었다.

죽고 못 사는 친구일지라도 사소한 일 하나로 등을 돌리게 될 수도 있다. 이미 등을 돌렸을 수도 있다.

그 당시에는 관계가 틀어진 이유가 컸을지라도,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별것 아닐 수 있다. 그렇다면 벽이 더 높고 굳건히 쌓이기 전에 한번 용기 내어 먼저 연락해 보는 것은 어떨까.

어쩌면 우리는 과거의 관계로 돌아가기를 그리워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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