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잘난 거 이제 알았니?

by woony

사업은 좋은 물건 혹은 좋은 서비스를 잘 팔면 땡이라 했다. 그러려면 상품을 잘 만들거나 혹은 잘 팔아야 한다 했다. 어제는 무엇을 만들지, 어떻게 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늘은 그 수식어를 고찰해보자.


열심히 하는 건 기본이고. 잘해야지 잘. - 팔식당


누구나 자기 딴에는 열심히 한다. 하지만 잘하는 사람은 적다. 피지컬부터 시작해 사소한 디테일까지, 잘하려면 어느 하나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 모든 걸 챙긴다고 해서 결과까지 좋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누구나 잘할 수는 없다. 결과는 잔인하니까.


그렇다고 절망할 이유는 없다. 누구나 남들보다 잘하는 것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그 잘하는 것조차 상대적이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보다 조금 특출나기만 해도 의미가 있다. 꼭 전국 1등을 해야 잘하는 건 아니다.


그래서 네 강점이 뭔데?


조하리의 창


커뮤니케이션 툴 중 하나인 “조하리의 창”을 이용해 내 강점을 분석해보자. 자신이 아는 강점과 모르는 강점, 타인이 아는 내 강점과 모르는 강점으로 4분면을 나눠 분석하는 진단 툴이다.


1. 나도 알고 남도 알고: 기술에 대한 관심과 이해. 문제를 찾는 능력. 숫자로 이야기하는 논리적 스킬.


가장 명확히 드러나는 강점은 “기술에 대한 관심과 이해”다. 본업이 신소재공학과 대학원생이다 보니 전공 관련 지식은 적어도 남들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다. 아쉽다면 신소재 지식 자체가 내 사업을 잘하는 데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강점은 아니긴 하다.


그보다는 이공계 베이스라 기술에 친근하다는 점, 그리고 대학원에서 연구를 경험했다는 소프트 스킬이 훨씬 도움이 되는 강점이다. 모르는 분야가 있으면 문헌을 찾아서 스스로 공부하고, 나아가 문제를 찾아낼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또한, 주변에 물어보면 강점 중 하나로 “숫자로 이야기한다”는 점을 꼽아준다. 당장 오늘도 아버지를 설득해야 할 일이 있었다. 처음에는 말로 논쟁을 하다가 데이터를 뽑아 눈으로 확인시켜드리니 그제야 설득해냈다. 객관적으로 지표를 제시할 줄 아는 능력 역시 내가 가지는 강점이다.


2. 나는 알지만 남은 모르는: 분위기를 주도하는 능력


남은 모르지만 내가 생각하는 강점으로 분위기를 주도하는 능력이 있다. 단순히 노는 모임에서도 분위기를 띄우는 힘이 있지만 회의같이 진지한 자리에서도 사회자 역할을 해 최적화된 방향으로 의견을 모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학부 시절 취업 준비 캠프에 참여했을 때다. 당시 유일하게 3학년이었던 나는 인턴 지원을 하기 위해 캠프에 참여했다. 모 기업의 기출 문제를 바탕으로 모의토의면접을 하는 자리가 있었다. 5명이서 30분 간 각자 자료를 읽는다. 자료에서는 회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문제가 발생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저마다 장단이 있다보니 남은 30분간 토의해 모두의 의견을 종합해 하나의 답안을 도출해야 했다.


자료를 읽은 뒤 토의를 시작했다. 모두가 머뭇머뭇거리는 가운데 내가 웃으면서 일단 자기소개부터 하고 가자고 운을 띄웠다. 자기소개가 끝난 뒤, 한 명씩 차례대로 어떤 답안을 선택했으며 그 근거가 어땠는지를 묻기 시작했다. 첫 번째 사람이 A를 선택했다고 하자 옆 사람에게 턴을 넘기지 않고 바로 끊었다.


혹시 다른 답을 선택하신 분 계신가요?


이렇게 하나의 답안을 도출해야 하는 회의에서는 한 가지 답안이 계속해서 나오게 되면 다른 답을 선뜻 꺼내기가 어려워진다. 즉, 발언에 압박이 생긴다. 그래서 다른 답을 쉽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 중의 하나로 위와 같은 방법을 쓸 수 있다. 모임 전원의 절반 이상이 같은 답을 말하면 나머지 소수 의견은 스스로 꺼내기 두려워지니, 최대한 모든 정보를 취합하도록 신경써야 한다.


그렇게 모두의 의견을 모았고 정리를 거쳐 최종안을 제 시간 안에 결정했다. 모든 캠프 참가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취업 담당 선생님께서는 “이 문제를 푼 조는 이제껏 너네가 2번째” 라고 말씀해주셨다. 뒤이어 한 말씀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너희는 이 친구 아니었으면 이거 절대 못 풀었어.


생각해보니 나도 한동안 까먹고 지냈다. 하지만 확실히 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잘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이 있다. 하지만 위의 예시처럼 제 3자가 아니면 잘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 내 의견이 채택되게끔 설득하는 게 아닌 모두가 제 의견을 잘 꺼내도록 돕는 입장이라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


3. 나는 모르는데 사람들은 잘 아는: 서비스 경험을 분석하는 능력


얼마 전, 전혀 모르는 분께서 지인을 통해 나를 소개받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알고 보니 그분은 내가 사용하는 서비스를 창업한 대표였다. 신기한 마음에 어떻게 연락을 주셨냐고 여쭤봤더니 예상치 못한 말씀을 하셨다.


서비스에 대한 경험을 잘 풀어내시는 것 같아 만나뵙고 이야기 나눠보고 싶었어요!


예전에 페이스북에 그 서비스를 이용하고 느낀 점을 작성한 적이 있었다. 그걸 보시고는 연락을 주셨더라. 얼떨떨했지만 기분이 정말 좋았다. 나도 모르는 강점이었구나. 기획을 비롯해 서비스 경험 등에 관심이 많긴 했지만 이를 풀어내는 능력이 있다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런데 그 서비스의 대표님께서 직접 연락을 주실 정도라면 확실히 강점이 있구나 생각할 수 있다. 사업을 하게 되는 이상, 잘 만들고 잘 팔려면 엔지니어와 마케터의 경계에 서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엔지니어 베이스인 내가 이런 강점을 갖는다는 건 축복이구나 생각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공계 백그라운드를 기반으로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문제를 찾아내며 조직의 의사결정을 현명하게 끌어낼 수 있는 서비스 기획자. 이게 내 강점이다.


위의 강점을 직접적으로 내 사업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는 더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렇게 강점을 주루룩 적어보니 나도 실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근래 다른 분야로 피봇해야겠다는 결심을 세우고서부터 자존감이 많이 낮아졌다. 이제와 코딩, 통계, 마케팅 등 새로운 것을 배우려니 속도는 나지 않는데 이미 잘하는 사람은 널려 있었다. 그러다보니 많이 불안해했다. 하지만 나는 원래 잘하는 사람이 맞다. 그러니 넘어가서도 잘할 수 있다. 확신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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