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 겉으로 드러나는 외적인 성격
사람은 다양한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 직업인으로서의 내가 있고 취미생활로서의 내가 있다. 인간관계에서의 내가 있다. 각각의 상황마다 드러내고 싶은 목적에 따라 보여지는 내가 다르다.
이는 퍼스널 브랜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실 사람은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다. 사람을 단순화하는 건 어찌 보면 그 사람의 인생에 흩어진 파편을 무시하는 것과도 다름이 없다. 하지만 요약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관심조차 주지 않는다. 그 사람이 명료하게, 선명하게 그려질 때 비로소 기억될 수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 내가 가진 여러 특성은 상당히 이질적이다. 데이터 분석과 사업개발에 관심이 많은 연구자. 여기까지는 좋다. 뭔가 연구적인 관점으로 사업에서 가설을 설정하고 실험으로 검증한다는 그림이 그려진다. 그런데 막상 전공 얘기를 잘 꺼낼 일이 없다보니 왜 지금 전공이 중요한지를 나조차도 까먹고 있다. 오늘은 전공 이야기를 잠깐 해보려 한다.
그래서 어떤 연구를 하세요?
신소재공학이라는, 공대 내에서도 인지도가 마냥 높지는 않은 전공을 공부했다. 지금은 대학원에서 원자간력현미경 (Atomic Force Microscopy)라는 특수한 현미경 장비를 활용해 배터리 소재의 물성을 분석하는 연구를 한다. 정확히 말하면 소재가 지닌 다양한 특성을 현미경을 통해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이미지화한다. 여기서 얻은 데이터를 분석해 배터리 설계 및 제조에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게 우리 연구가 지닌 임팩트다. 물론 이렇게 적어도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는 관련 업계가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다. (조금 더 이해를 돕고자 이번에 뉴스에 나온 우리 연구실 소개를 첨부한다.)
https://www.hellodd.com/?md=news&mt=view&pid=71867
왜 신소재라는 전공을 택하셨나요?
솔직히 처음부터 신소재를 공부하고 싶어서 이 학과를 선택한 건 아니다. 그때는 솔직히 별 생각이 없었다. 원래 가고 싶던 과는 공대가 아니었지만 재수를 했다 보니 집안 눈치를 많이 봤다. 산업에서 소재가 중요하다는 아빠의 말도 영향이 컸다.
하지만 대학생에게 전공은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 페르소나다. 그러다 보니 학부 시절에는 늘 신소재를 중심에 두고서 생각했던 것 같다. 중간에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도 그랬다. “소재의 물성을 이해하는 디자이너”라고 자소서에 썼던 기억이 난다. 겨우 1학년 마치고 온 애한테 소재에 관한 지식은 전무했다. 그런데도 그걸 늘 고민했다. 전역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재료공학과 디자인을 섞을 수 없을까?” 라는 생각으로 감성 소재 연구를 해야겠다고 교수님께 상담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보면 인과론에 매달렸다. 모든 생각이 “내가 소재공학을 전공했기 때문에”로 출발했다. 이해는 한다. 그 당시 당장 할 수 있는 건 눈앞에 놓인 전공 뿐이었다. 하지만 막상 하고 싶은 디자인은 당장 손에 잡히지 않았다. 거리도 멀었고 미래도 불투명했다. 그러다보니 쉽게 손을 댈 수 있는 내 전공을 하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을까 고민했다. 그냥 하고 싶은 걸 하면 됐는데.
그런데 왜 신소재로 대학원까지 가셨나요?
한동안 그 고민만 계속했다. 소재공학을 기반으로 원하는 걸 할 수 없을지 찾아 헤멨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자동차 회사에서 감성소재 디자인을 연구하는 엔지니어링 부서가 있다는 걸 찾았다. 그곳에 들어가겠다는 일념으로 인턴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물론 거기가 아니더라도 일은 경험해 볼수록 좋으니 다른 곳 역시 준비했다. 하지만 가고 싶던 곳은 떨어졌고 졸지에 반도체 회사에 인턴으로 들어갔다.
반도체 공정에 대해 선행 연구를 하는 부서였다. 반도체 회사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빡세고 힘들다는. 실제로 인턴을 했을 때는 굉장히 만족스러웠지만 막상 연구원 선배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삶의 질이 좋지 않아보였다. 팀장님께서는 이런 곳 오지 말고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데 가라고 그러셨다.(...) 그런데 회사를 다니면서 재미난 게 보였다. “데이터 드리븐.”
그 이전부터였다. 인공지능을 주제로 기술 세미나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앞으로 엄청난 임팩트를 줄 것이라는 걸 들었다. 이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소재공학을 전공했는데, 어떻게 여기와 엮일 수 있을까?” 그치만 뭐라도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에 파이썬 언어부터 드립다 파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회사에서도 역시 데이터를 기반으로 혁신을 이끌어내려 다양하게 시도하는 것을 보았다. 새로운 전환점이었다.
결정타는 산학 과제였다. 기업이 지닌 문제를 전공지식을 활용해 해결하는 과제였다. 다양한 분석 장비를 다루는 경험을 했는데 실험을 하고 얻은 데이터를 가공해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흐름이 꽤나 재밌었다. 처음으로 전공이 재밌다고 느꼈다. 거기다 최우수상까지 타고 나니 열정에 불타올랐다. 전공에 대한 전문성, 그리고 데이터를 다루는 능력을 키워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더 쌓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학원에 진학하게 됐다.
지금은 만족스러우신가요?
한동안 만족스럽지 못했다. 너무 일찍 빨간 알약을 먹어버렸다. 대학원에 오고난 뒤 한달을 시작했다. 타인이 원하는 것이 아닌,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행동할 수 있는 힘이 담긴 메시지를 주고 싶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면서 전공과 다시 거리가 멀어졌다. 무형자산의 힘은 희소성 X 타인의 고마움으로 나타낼 수 있다. 신소재는 분명 희소가치가 높다. 하지만 거기에는 타인이 느끼는 고마움이 없었다. 있어도 연구가 실생활로 스며들어 고마움이 돌아오기까지는 거리가 멀었다. 그 자체를 즐기지 않으면 안된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다음 커리어에서는 전공을 살리지 말아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당연히 전공에 대해 흥미가 많이 떨어졌다. 한동안 방황했다.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대학원에 오게 됐지?” 지금 여기에 있는 이유가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런데 최근에 사업을 경험하면서 느꼈다. 가설을 세우고 현상을 분석하고 다음 스텝에 대해 결론을 내리는 그 일련의 과정은 내가 소재공학에서 배우고 단련한 코어였다. 지식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생각하는 힘. 본질은 거기에 있었다.
다시 마음을 돌렸다. 지금 당장에 충실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전공에 집중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이유는 딱 하나다.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라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다. 물론 전공에서만 기를 수 있는 건 아니다. 사업에서도 해낼 수 있다. 하지만 급하게 가지 않기로 했다. 지금 내가 가장 충실히 전념할 수 있는 곳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