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살 때마다 항상 예의 주시한다. "이 사람은 내게 물건을 팔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쓸까?" 가끔씩 재미난 게 보인다. 판매자가 온갖 화려한 스킬을 구사해 소비를 유도할 때 특히 그렇다.
절판된 책을 구입하기 위해 온갖 애를 쓰고 있었다. 모든 서점에서 판매하고 있지 않은 책이었다. 학교 도서관에 있을까 싶어 찾아봤지만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e북 역시 마찬가지였다. 중고책으로 눈을 옮겼지만 최저가를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7만 원. 정가는 분명히 15,000원짜리였는데 5배 가까이 올랐다. 절판될 법한 책에 투자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려나 생각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어떻게든 사야 했다.
다른 곳을 뒤져보던 중이었다. 가격표시를 해놓지 않은 한 게시물이 있어 문자를 넣었다. "책을 사고 싶은데 재고가 있나요? 가격은 어떻게 되는지 문의드립니다." 답장이 왔다. "7만 원. 택포." 가격이 중고 온라인 매장에서 본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렇다면 굳이 중고나라에서 살 이유가 없었다. 답장을 하지 않고 알라딘 사이트로 이동하려던 참이었다. 그때부터였다.
중고 거래의 특징 중 하나는 텍스트 기반으로 소통한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실시간으로 소통이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물품이 *고관여 제품일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구매자는 백이면 백 여러 채널을 동원해 구매할 곳을 찾고 있을 것이다.
(*고관여제품: 제품의 중요도가 높고 값이 비싸 구입할 때 소비자들의 의사결정 및 정보처리 과정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제품을 뜻한다. 책이라는 상품 자체는 고관여 제품군이 아니지만 이 책의 경우 절판되어 중요도가 높고 가격이 비쌌기에 고관여제품을 구매할 때와 비슷하게 행동했다.)
그렇다면 구매자의 시선을 어떻게 집중시킬 수 있을까? 시간을 뺏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전화다. 적어도 이 사람과 통화하는 동안에는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소통의 생동감이 올라간다. 감정이나 소구점,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문자로 소통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온라인으로 물건을 팔아야 할 때 상대방에게 전화를 걸 수 있다면 꼭 전화로 이야기하자.
1번에서 반문이 들 수 있다. '아니, 전화를 걸면 뭔 말을 할 건데? "사실 거예요?"라고 물어보나?' 판매자는 다음과 같이 말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94년생이신가 봐요?"
"엇 네 ㅎㅎ 맞습니다."
"좋은 나이네요. 제가 그 나이 때 이 책을 읽었다면 인생이 정말 많이 달라졌을 텐데.."
필자의 전화번호 뒷자리는 1994다. 판매자는 그걸 캐치하고는 자연스럽게 나이 이야기로 운을 떼면서 대화를 시작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그 특징과 상품을 구입해야 할 이유를 부드럽게 연결했다.
협상에서 사전에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 중 하나가 상대방의 정보다. 구매자의 정보는 많이 알수록 좋다. 그래야 그 사람이 진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감을 잡게 된다. 구입하려는 책의 주제는 청년창업이었다. 20대가 창업에 관련된 책을, 그것도 구매하기 힘든 절판된 책을 사려한다는 건? 인생을 바꾸고 싶다는 간절함이 구매자가 진짜로 원하는 바였을 테다. 판매자는 그걸 포착하고서 상품과 연결했다.
'당신이야 전화번호에 정보를 남겼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않잖아요?' 이럴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 그냥 물어보면 된다. "왜 이 책을 사고 싶으셨나요?"와 같이 직접적인 동기부터 물어봐도 좋다. 사례처럼 다른 연결고리를 잡고 싶다면 그걸 질문으로 치환하면 된다. 본 책은 청년창업과 관련된 책이었으니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를 물어보면 됐을 것이다. 만약 직업과 관련된 책이라면 "직업이 어떻게 되시나요?"라고 물어보자.
"저는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포착하고 그에 맞는 책을 연결하는 일을 합니다. 부동산이면 부동산, 주식이면 주식, 창업이면 창업. 제 서재에 2만 권 정도가 있는데 사람들을 만나면 그에 맞게 책을 처방해드려요."
"제 가게로 놀러 오세요. 책 읽고 더 궁금한 게 있으면 제가 강의 한 번 해드릴게요."
단순히 해당 책 이야기만 하지 않았다. 똑같은 책이더라도 자기한테서 구입해야만 하는 이유를 명확히 제시했다. '자기는 관심사와 책을 연결하는 사람이다.'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내가 해줄 수 있다.' 물론 저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다른 곳과는 다르다는 차별점을 어필했다. 그 점이 구매하는 입장에서 신뢰할 수 있게 만드는 요인으로 다가왔다. 이는 마지막 단계에서 빛을 발했다.
"7만 원이면 인터넷 최저가입니다. 이게 원래는 15만 원 정도 하는 건데 지금 코로나 때문에 가격을 많이 내렸어요."
판매자가 특별하더라도 상품 자체는 여기서 사나 저기서 사나 다를 바 없는 공산품이다. 그럼에도 장점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최저가라는 특장점은 강력하다. 중고나라라는 리스크를 제하면 다른 곳에서 살 이유가 전혀 없다.
사실 판매가 자체가 7만 원에서 9만 원 사이로 왔다 갔다 했기 때문에 그렇게 특출 난 장점은 아니었다. 하지만 판매자 입장에서 이 얘기를 꺼내고 꺼내지 않고의 차이는 크다. 위에서 '투자'라는 관점을 잠깐 언급했다. 투자는 매도했을 때 비로소 손에 쥘 수 있다. 절판된 책이라 가격이 올랐지만 7만 원이든 70만 원이든 팔려야 비로소 그 가격이 된다. 2만 원으로 올려놔도 팔리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 다른 곳은 '세월아 네월아 쌓아두면 그만이지~'했겠지만 판매자는 분명 알았을 테다. 5배나 올랐건 팔리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음을.
"인생을 바꾸는 데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서 제가 선물 하나 같이 드릴게요. 사실 구입하시려는 책 보다 훨씬 더 값어치 있는 책입니다. 구입하려는 책은 좋은 책이지만 제가 드릴 책은 인생이 달라지는 책이거든요. 읽고 맘에 드시면 다른 책도 소개해드릴게요."
저 말까지 들어버리니 각이 바로 섰다. 다른 곳은 아무런 소통 없이 결제하고 땡일 텐데 여기는 덤까지 준다고? 당장 구매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자신만이 제공할 수 있는, 그것도 구매자가 원하는 가치를 정확히 제공했다.
칼같이 결제하고 나니 서비스를 주겠다면서 이메일 주소를 불러달라고 했다. 뭐지? 싶어서 보니 pdf 파일로 된 e북이었더라. 자기한테 돈 들지도 않으면서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상품이 덤이라니. 받는 사람도 기분 좋은데 주는 사람도 손해 볼 일이 전혀 없는 서비스였다. 심지어 내용마저 좋았다. 이렇게나 윈윈인 서비스라니.
끝까지 완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