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학기, 데이터에 기반한 의사결정으로 인생이 바뀌었다. 바로 진로 설정에서였다. 올해 초,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아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한국의 대학원생은 굉장히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다. 교수의 갑질이 만연한 곳이 바로 연구실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여 어떻게든 좋은 환경을 확보하는 게 정말 중요했다. 그래서 단순히 관심 가는 연구주제 이외에도 여러 면에서 나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최고의 연구실을 찾기 시작했다. 어떻게? 데이터를 기반으로.
많은 친구들이 대학원을 선택하는 프로세스는 보통 이렇다. 관심사가 어느 정도 있는 분야가 몇몇 개 있다. 그럼 그 중에서 좀 괜찮아 보이는 연구실을 찾는다. 홈페이지를 찾는다. 오 재밌겠네? 메일을 보내 연락한다. 잘되면 굳, 안되면 다른 랩을 찾아본다.
하지만 여기에는 큰 문제가 있다. 첫번째, 학부생 시야에서 흥미 있다고 생각하는 연구 분야가 실제로 진학해서 접해본 뒤에도 재미가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 즉, 흥미는 변동이 생기기 때문에 좋은 기준이 아니다. 어찌 보면 편협한 접근일 수 있다.
두 번째는 분야를 미리 정하고서 연구실을 찾기 때문에 너무 표본이 너무 적다. 이게 왜 문제인지를 알려면, 사업적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된다. 창업을 할 때 아이템을 미리 정하고서 들어가나? 그렇지 않다. 트렌드, 시장성 등 외부 요인도 분석해야 하고 흥미 외에 자신만의 내적 기준도 세워야 한다. 그러니 우리는 진짜 재미없어 보이는 분야가 아니라면 모두 선택안 중 하나로 취급해야 한다.
그래서 흥미 외에도, 앞길에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될만한 요소들-연구실 인원(석사/박사/포닥 인원 및 자대생 비율), 졸업생 현황(그 연구실 졸업생 분포가 산업계에 치중되어 있는지 학계에 치중되어 있는지), 김박사넷 평가 등을 정량적으로 측정했다. 각 항목에 가중치를 매겼고, 가고 싶은 학교에 있는 36개 연구실을 전수 조사해 엑셀 파일을 만들었다.
3일이면 다 한다
정말 재밌던 건, 막연히 재밌어 보인다고 생각한 연구실이 1등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를 토대로 1위 교수님부터 차례대로 메일을 보냈다. 다행히 상위권에 계신 교수님과 면담이 잘 진행되었고, 지금 다니고 있는 랩에 들어올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매우 만족스럽게 지내고 있다.
예전에 소명을 소개한 적이 있다. 만든 결과물이 사람들에게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영감을 준다고 믿는다는. 미션에 이어, 이 경험으로부터 비전까지 명확히 세웠다. 현상을 관찰하고, 데이터를 분석해 의미 있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 눈먼 열정에 눈을 띄워준 데이터, 그리고 이를 분석하는 힘을 계속 길러나갈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