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만난 유럽

그와 그녀의 이야기

by woony

"...?"


1.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서울에서 유럽을 만났다니. 애시당초 서울에 유럽이란 것이 있을까, 의문부터 들었다. 샹젤리제 거리를 광화문 한복판에 옮겨놓든, 이태리 레스토랑을 버젓이 차리든 그건 본판이 아니니까. 그 땅을 밟지 않고서야 유럽을 만났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했다.

2.
엊그제는 사진학 강의를 들었다. 유럽에서 찍은 사진이 우리나라의 그것과 다른 이유는 얼어죽을 감성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둘은 태양에서 들어오는 빛의 각도와 광량이 다르다. 공기의 미묘한 조성도 다를 테고 온도도, 습도도 다르다. 그 동네 건물이 뭐가 달라도 한참 다르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시작은 훨씬 더 작은 곳에서부터 출발했다. 우리는 서울에서 유럽을 만날 수 없다.

3.
찰나에 스쳐간 부정과 회의와 그에 더하여 약간의 오기까지. 그럼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의 달뜬 목소리 때문이 아니었고 내 생각이 틀렸다기보다 그저 꼭 잡은 두 손이 정말 사랑스러울 뿐이었다. 그건 차원이 다른 영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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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얼마 전 접어논 책의 귀퉁이를 펼쳤다. "하지만 외국인들과 이야기를 해보라. (...) 영국에는 차별적이고 알아보기 쉬운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 그것은 물기 없는 아침식사와 음울한 일요일, 매연 자욱한 도시와 구불구불한 길, 초록빛 들판과 빨간 우체통 같은 것들과 어떻게든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p. 89

5.
그 차별적이고 알아보기 쉬운 무언가와 일평생을 함께한 사람은 그 자체로 영국이다. 그들이 얘기하는 유럽이다. 따로 더 묻지 않았다. 그녀는 그래서 서울이고, 그는 그래서 유럽이니까.

6.
서울에서 유럽을 만났다.
서울이 유럽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