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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y Oct 04. 2019

책을 잘못 골랐다

고 생각할 뻔했다: <인스파이어드>

당황스럽다.

첫 장을 읽으면서 불안함을 느낀 게 처음인 것 같다.

왜?


나랑 안맞아서.





<인스파이어드>


독서모임에 들어갔다. 만담(만드는 사람들이 나누는 담소)이라는 테마로, 모인 사람들 대부분은 IT 서비스를 기획, 디자인, 혹은 개발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나 역시 IT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첫 발제로 주어진 이 책을 펼치면서부터 식은땀이 흘렀다. "이거, 테마를 잘못 고른 것 같은데...?" 책 역시 철저하게 IT 서비스에 초점이 맞춰진 책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고?


잠깐 소회를 하자면, 나는 공대생인데 공대생이 아니다. 전공의 결이 그렇다. 신소재공학과, 누군가에게는 어렵고 어떤 이에게는 선망의 대상일 수 있지만 내게는 기초과학과 공학의 중간선상에 있는 이놈의 위치가 발목으로 느껴졌다. "대체 이 전공으로 무얼 만들 수 있지?"가 대학 생활 내내의 관심사였다. 소재는 어디에나 들어간다. 하지만 최소한의 프로토타입도, 그 어떤 서비스나 하드웨어도 마찬가지다. 소재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비즈니스에 뛰어들고 싶었다. 하지만 디자이너나 개발자와 같은 메이커의 지위를 갖지 못하는 한계를 어떻게 극복해야 좋을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심지어 예전에는 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꾸려 하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 어디에 있냐고? 아이러니하게도 대학원이다. 그것도 신소재공학과로.


응...?


왜 대학원을 선택했을까? 가진 한계를 깨부수고자 던진 하나의 시도였다. 이곳은 커리어를 성공적으로 피봇하기 위한 전환점이자 동시에 리스크를 짊어지기에 좋은 안전망이다. 특히나 공대 대학원은 문제를 해결하는 곳이다. 기술사업화 과제를 수주해냄으로써 창업을 경험해볼 수 있다. 실패하더라도 학위과정 중에 일어난 일이기에 데미지를 최소화할 수 있다. 심지어 경력까지 남는다. 이를 바탕으로 VC나 사업 개발 분야로 전환까지 고려할 수 있다. 철저하게 전략적인 선택이었다.(물론 다 내가 잘해야 가능하다는 거..)


그치만 여전히 불안감은 남아있다. 기술창업을 해낼 아이템은 찾아낼 수 있을지부터 시작해서 피봇하기까지의 과정 역시. 개발자와 디자이너, 심지어 기획까지, 그렇게 선망하는 비즈니스의 영역 그 어디에도 내가 속할 자리가 없을 것만 같아 걱정이 되었다. IT 비즈니스를 선망하지만, 정작 들어갈 자리를 찾지 못하는 처지. 그걸 첫 장에서 느꼈다.


여기에 소개된 여러 개념은 제품 소프트웨어 세게에서 다듬어져 발전된 것이기 때문에 그 세게를 넘어서도 동일한 효력을 발휘할지는 의문이다.




그런데 해답이 쉽게 나왔다. 한 단어에서였다. "제품". 하고 싶었던 건 감동을 주는 제품을 만들고 고객에게 영감을 선사하는 것이지, 기존의 틀에 내 자리를 끼워맞추는 게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건 사용자다. 그들을 감동시킬 능력이 있다면 직위나 직책은 그 다음 문제다.


그리고 이 책은 영감 가득한 제품을 생산해내는 방법을 세 가지 요소로 알려준다. 사람, 제품, 과정. 사실 본문의 내용은 스킬에 가깝다. 디테일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대처할 방법 등, 깊이 들어가기엔 아직 와닿기 힘든 요소가 몇 있긴 하다. 아직 IT 서비스에 종사하지 않는, 제품 소프트웨어를 제작하지 않는 나로서는 전부 공감하기는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첫 장에서 느꼈던 fit에 대한 불안감은 눈 녹듯 사라졌다. 예전에 읽었던 책 <원씽>에서 배웠다. 본질에 집중하면 일은 자연스레 해결된다는 걸. 지금 해야 할 고민은 다음 일자리가 아니다. 물론 현실은 잊지 않되 고객에게 충만한 감정을 제공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 그 자체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혼자 개발할 필요 없다. 내가 디자인할 필요 없다. 어차피 혼자서 다 해낼 수 없으니까. 제품, 그리고 이를 만들어나갈 동료들과 함께할 과정에 초점을 맞추자.





거듭 강조해왔다. 한달쓰기는 단순히 한달 동안 글쓰는 게 아니라 연결과 변화의 창발이었다고. 참 재밌게도 이 책을 읽고 나서였다. 제품 프로젝트 하나를 이끌어 달라는 제의가 들어왔다. 드디어 실천에 옮길 때가 왔다.  오롯이 집중해 사용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해 보고싶다. 나름 첫 프로덕트 매니징이다. 이 책에서 많은 도움을 받게 될 것 같다. 이제 보니 책과 너무 잘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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