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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y Oct 19. 2019

기술은 반성해야 한다

도널드 노먼, <디자인과 인간심리>: 엔지니어가 바라보는 디자인


수업시간이었다. 확실히 대학원에서의 수업은 조금 다른 느낌이다. 조금 널널하고(그렇다고 여유롭지는 않다. 전혀.), 학부 때보다 많은 대화가 오고간다. 아무래도 소규모이고, 교수님의 연구 분야와 직결되는 내용이다 보니 깊이 있게 다루게 된다.

그날의 수업은 나노소자 특론이었다. 교수님께서 연구하시는 분야는 나노 유기 반도체 소자다. 휘어지면서도 반도체가 갖는 본연의 성질을 그대로 유지해, 의복이나 각종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는 IoT 소자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수업 중에 질문을 던지셨다. “왜 이 기술이 아직까지 우리 실생활에 적용되지 못할까?”

많은 의견이 나왔다. 소자 특성의 한계를 깨기가 어렵다, 연구실 규모에서 양산으로 넘어가기가 힘들다 등. 그런데 누군가 손을 들고서 얘기했다.

“필요 없어서요.” 그렇다. 누가 옷에 휴대폰을 넣어서 사용하나? 물론 미래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당장은 아무도 이를 쓰지 않는다.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이 기술을 원하지 않는다



아무리 기술이 좋더라도 우리가 원하지 않으면, 사용자를 어렵게 하면 빛을 발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를 <디자인과 인간심리>에서는 “기술의 역설”이라는 키워드로 다루고 있다.

도널드 노먼, 디자인과 인간심리




연구자이자 공학자의 관점에서 이 책을 보니 흥미로운 관점이 많았다. 서문부터 찬찬히 읽다 보니 피식, 웃음이 났다. 매일같이 읽는 논문의 인트로와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설명한다. 자신의 연구 결과로 책을 내고, 연구 분야 이외로 확장해 대중성까지 확보했다니. 좁고 깊은 분야를 다루는 내 입장에서 참으로 부러웠다.

그런데 읽다 보니 이건 오히려 엔지니어가 읽어야 할 책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기술의 목적은 인간의 편리,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 있다. 그 욕망에 맞춰, 기술의 발전 속도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다 보니 몇몇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산업을 이루게 되었다. 인간의 편의를 위한 보조 수단이었던 기술이 막대한 수요를 이끌고 있다. 우리나라의 자랑 반도체가 그렇고, 차세대 먹거리이자 내가 연구하고 있는 주제인 배터리 역시 그렇다. 그 산물인 스마트폰 역시도.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사람들은 굳이 더 좋은 기술을 원하지 않는다. 이미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엄청난 혁명을 이끌었던 스마트폰은 결핍을 충족하는 한계점에 다다랐다. 인터넷 속도는 충분히 빠르다. 카메라 화소가 올라간들, 우리 눈은 더이상 식별하지 못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른 기능을 넣어도 마찬가지다. 결핍에서 나오지 않는, 기술을 위한 기술은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기술이 주는 행복의 기울기는 0에 수렴해가는 반면, 복잡성의 증대로 인한 스트레스는 오히려 증가한다. 우리의 생활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 등장한 기술이 오히려 우리를 괴롭히는 역설을 낳는다.

저자는 이를 좋은 디자인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감한다. 결국 사용성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웨어러블이건 휘어지는 배터리이건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할테니까. 기술이 다가 아니다. 그리고 이를, 엔지니어들은 명심해야 한다.

“고객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제품은 아무 쓸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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