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풀: 넷플릭스 성장의 비결>
대학원에 들어온 이후로 첫 중간고사가 끝났다. 그간 몇 주는 말 그대로 지옥과도 같았다. 기껏해야 두 과목에 불과하지 않냐고 여겼던 시험은 세미나 발표 자료 준비에 커뮤니티 리딩 활동까지 더해지니 글자 그대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시간을 따로 재보지는 못했지만 분명 주 40시간은 넘게 일을 했다. 물론 개중에는 자잘한 행정 업무도 있었지만, 가장 힘들고 시간을 많이 뺏긴 세미나 준비에서 크게 배웠다. 앞으로 2년 동안 하게 될 전체적인 프로세스를 그려보는 큰그림 작업. 문득, 이곳은 정말 스타트업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따지고 보면 그렇다. 내가 있는 곳은 일종의 스타트업이다. 비슷한 점이 많다. 급여는 박봉에 스트레스로 가득차있지만 빠르게 성장을 이뤄낸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무한히 자유로운 시간일 수도, 나날이 고통스럽지만 배우는 기쁨을 맛보는 시간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읽은 책인 <파워풀: 넷플릭스 성장의 비결>은 적용해볼 소지가 많았다. 비록 실제 스타트업에 재직하는 건 아니지만 만들어진 지 3년 차의, 신생 랩인 우리 연구실이 어떻게 방향을 그려나가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좋은 책이었다. 서평의 제목에서는 마치 우리가 해야 할 행동인 것처럼 적어놨지만 사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건 회사의 문화, 환경과 같이 근본적인 측면을 다루고 있다. 그래도 도움이 된다. 책에서는 8장에 나눠 고속 성장을 이끄는 환경을 어떻게 만들지 설파하지만 우리는 이 중 크게 3가지만 살펴보도록 한다.
이 부분이 목차 순서에 상관없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두 가지 측면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투명성에 대한 관점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우리 연구실은 투명성을 굉장히 중시한다. 여기서 투명성이란, 모든 정보가 공유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수님(스타트업이라면 대표라 할 수 있겠다)의 일정을 비롯해 예산 관리, 월급과 같이 민감한 돈 문제까지. 그런데 이 책에서는 투명성을 다른 관점에서 접근한다. 바로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의 투명성”이었다.
온지 한달 반밖에 되지 않았지만 처음에 보였던 좋은 점이 엄청 커서 그랬을까. 여기도 다 사람 사는 곳이다보니 밖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사람 사이의 갈등이 수면 밑에 자리한다. 물론 그마저도 소통으로 해결하려고 실제 회의를 하는 등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한다. 이렇게 좋은 곳이 어디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으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결국 쌓이고 쌓여야 터진다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초장부터 찍어야 한다고 말한다. 바로 부정적 피드백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두 번째로 마음에 들었던 점이 나온다. 바로 “솔직함의 시스템화”였다. 위에서 말한 부정적 피드백이 단순히 “옆 사람한테 쓴소리를 아끼지마!”는 꼰대어린 조언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철저하게 모델로 구성한다.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쓰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 부담을 덜 수 있게 만든다. 사람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게 1년에 한 번 정도를 피드백 데이로 한다. 단순히 부정적 의견만을 늘어놓는 게 아니라 시작(새로 시작했으면 좋겠는 걸 추천)/중지(지금 하고 있는 걸 멈춰-부정적 피드백)/계속(지금 하고 있는 거 정말 좋아! 계속 그대로 해 - 긍정적 피드백) 3가지로 나눠서 폼을 작성한다. 키워드로 나타나기 때문에 명료하고 작성하기 쉽다. 또한, 상처를 주려는 의도가 아님을 명확히 한다. 셩격과 같이 고칠 수 없는 특징에 대해 지적하지 않고 오로지 행동만을 지적하도록 한다. 그리고 변화할 여지가 있는 것만을 지적한다. 목표는 지적이 아니라 개선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무릎을 탁, 쳤다. 넷플릭스가 그렇게 빠르게 성장할 수 있던 배경에는 현명한 리더들이 매번 수고를 쓰지 않도록 이를 모델화하고 체득하게 했다는 점에 있다. 우리 랩 역시 피드백 시스템이 존재한다. 심지어 잘 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의 시스템의 배경에 어떤 원칙이 있는지 이곳처럼 잘 공유되었나를 되돌아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구성원들이 나서서 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더 솔직해져야 한다. 미사여구 일색은 어떤 감흥도 주지 못한다. 애초에 이 양식 자체가 강제성에 기반해있다는 걸 다들 아니까.
이 부분은 스타트업이 가진 장점 중 하나일테다. 작게,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대기업이 할 수 없는 걸 해낸다. 그런데 많은 스타트업이 이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가진 장점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게 그 이유이지 않을까. 연구실 역시 마찬가지다. 대기업에 그렇게 좋은 인력들이 많은데 왜 대학원에서 연구를 진행할까? 돈에 치우치지 않는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지만 그것도 옛날 말이다. 연구실이 성장하고 더 좋은 연구를 해내려면 돈이 되는 곳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그것보다는 가설이 생기면 이를 빠르게 검증해볼 수 있는 여건에 있다고 생각한다. 회사는 기본적으로 그날그날의 업무가 주어진다. 기업 연구소에서 역시 연구를 한다지만, 애초에 방향이 정해져 있으니 다양성 역시 부족하다. 그와 달리, 대학원은 훨씬 작은 규모다. 예산도 그만큼 부족하지만, 자유도가 높기에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 혹자는 대학원 연구실이 따오는 산학 과제가 산학 인력을 땡겨오기 위한 커넥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얼마든지 가진 장점을 잘 활용해야 한다. 우리는 연구를 빠르게 시도하고 다양하게 시도해야 한다.
그런데 이를 가로막는 함정이 있으니, 바로 절차다. 연구를 위한 비용을 수주하는 것부터 시작해 사용하는 데도 엄청 비효율적이다. 여기에는 다음에 쓸 3번에서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자.
위에서 제시한 문제의 가장 큰 부분은 여기에 있다. 연구자를 어른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누군가 편의점에서 물건을 훔쳤다고 해서 편의점을 문닫게 하지 않는다. 그저 그 사람만 처벌할 뿐이다. 그런데 이쪽 세계에서는 편의점 문을 닫고 옆에 있는 조그만 구멍가게를 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