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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점 Jul 07. 2019

급할 것 없잖아

하와이 여행기-2

마우이에 도착했더니, 글쎄 짐이 오지 않았단다. 14시쯤 도착해서 baggage claim에서 한참을 서 있는데, 아무리 봐도 짐이 나오지 않는다. 관리자에게 물어보니, 짐이 다음 비행기 편에 실렸고 15:30쯤 도착할 것이라고 한다. 자리가 없던 탓일까, 승객만 먼저 보내고 짐은 나중에 보낸 것이다.


이 어찌나 여유로운지. 화를 내어 무엇하나 싶다. 허탈하기도 했지만, 하와이 속도에 맞추어 여유 있게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러자 주변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공항에서 보이는 초록, 파랑의 조화로운 풍경.
렌트카를 빌리는 곳을 트램을 타고 5분정도 가야 있다.



우여곡절 끝에 짐을 받아 들고, 3일간 발이 되어 줄 렌터카를 빌리러 간다. 렌터카 직원은 우리에게 각종 옵션과 주의사항에 대해 안내를 하고는,Tom's Favorite(직원의 이름이 Tom)이라고 적힌 책자 하나를 준다. 직원인 추천하는 맛집, 관광지 등이 적혀있다. 보통의 렌터카 직원은 기계처럼 설명을 마치고는 무심하게 key를 넘기기 마련일 텐데. 직접 typing 한 관광자료를 보고 있자니, 본인이 사는 곳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air b&b로 잡은 숙소는 앤티크 한 가구와 전기로 돌아가는 fan, 석조 바닥이 인상적이다. 거실에는 형광등 대신 아담한 탁상용 조명 2개가 대칭으로 자리해 거실을 주황빛으로 비춘다. 흰색 석조 바닥은 언뜻 차가운 느낌을 풍기지만, 진회색의 패브릭 소파와 카펫이 따뜻함을 채워준다. 부엌은 목조 캐비닛과 아일랜드 식탁으로 고풍스러움을 더할 뿐 아니라, 커다란 오븐과 냉장고로 실용적이기까지 하다.  방에는 퀸 사이즈의, 역시 나무로 된 침대가 놓여있고, 침대 위 커다란 fan이 있다. 처음에는 이것이 무슨 더위를 식혀줄 수 있단 말인가,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늦은 밤, fan을 켜고 침대에 누우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사정없는 날갯짓으로 집중 공격하는 선풍기는 틀어도 문제, 안 틀어도 문제고, 에어컨의 찬 기운은 냉정하기 짝이 없건만, 천장에 달린 fan은 켜진듯 안 켜진듯 자연스럽게, 그러나 큰 몸짓으로 돌아가서 나도 모르는 새 짐에 들고 만다. 방 끝에는 비밀의 문을 자리하고 있어, 열고 나가면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테라스가 있다.





저녁은 간단한 해산물 튀김이었다. 섬의 특징일까, 마우이는 바람이 많이 불어 야외에서 무언가를 먹기는 힘들다. 간은 짭조름하지만, 이제 막 건져 올렸는지 오징어는 신선하다.

kihei 근처 Paia Fish Market




튀김으로 허기를 채우기에는 모자라, Foodland라는 대형 슈퍼를 들른다. 하와이의 Poke는 한국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당근, 오이, 상추 등 각종 야채로 빈 공간을 채우는 한국식 포케와는 달리, 여긴 밥 그리고 생참치뿐이다. 재료의 손질이 완벽하여,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얼리지 않은 생참치는 부드럽게 입 안에서 밥과 버무려진다.


spicy ahi poke와 일반 poke. Ahi는 참치를 뜻한다.



비행기에서 내린 첫날은 잠을 이루기 힘들다. 여행의 설렘 때문일까. 아니면, 시차로 인한 때 아닌 각성일까.

잠은 들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달아나는 희한한 속성을 지녔다. 몇 번을 뒤척이다, 책 한 권을 집어 들어 거실로 나온다. 회색 패브릭 소파에 파묻혀 몇 챕터를 읽어본다. 창 밖으로는 금요일 저녁을 알리는 폭주족 오토바이들이 요란하게 내달린다.

낯선 공간에서 익숙한 책을 꺼내 읽으면 왜 기분이 좋은걸까. 새로운 공간에 있기 때문에, 책을 읽는 일상적인 행위마저 특별하게 느껴진다. 일상적인 것을 일상적이지 않게 만드는 것. 여행의 수만가지 매력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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