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서점 Oct 08. 2021

대학에 갈 거야

 여느 날처럼 딸아이가 책가방과 손주머니를 달랑대며 학교에서 돌아왔어. 오자마자 책가방을 정리하는 질서 있는 성격은 아닌지라, 가방부터 정리하면 카스테라와 우유를 주겠노라 포섭을 하였지. 아이는 볼멘 표정으로 가방 문을 열어젖히더니 회색 갱지를 하나 꺼냈어. 거기에 써있는 큼지막한 글씨는 ‘가정환경조사서’. 찬찬히 둘러보니 보호자 인적사항, 아이 성격, 취미/특기 등 학기 시작 전에 적는 항목들이었어. 그중에서도 눈에 띈 건 ‘부모 학력사항’이었어.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수군대는 것처럼 목덜미가 빨개지고 종이를 딱 숨기고 싶어 졌어.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일 시작하면서 대학 근처도 못 갔거든. 요즘 시대에 대학이 무슨 벼슬이냐,  그깟 졸업장 없어도 유튜브로, 재테크로 성공하는 방법이 지천에 널렸다 한들 나는 응당 해야 할 일을 안 한 사람처럼 대학 이야기만 나오면 숨고 싶었단 말이야. 그때 어렴풋이 마음 먹었던 것 같아. ‘나도 대학이란 데에 가야겠다.’



  나도 아이 옆에서 같이 공부를 시작했어. 만학도의 삶이 시작된 거야. 집 근처 도서관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아이 학원 끝날 시간이 되면 얼른 돌아와서 밥 차리는 일상이 반복되었어. 일부러 아이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부엌 식탁에서 공부한건 , 지적 자극을 주기 위함도 있었지.


식탁을 닦고 설거지를 마치면 내 심야 스케줄은 시작이었어. 거실 한쪽에 놓인 컴퓨터 책상에서 스탠드 불을 희미하게 켜고 공부를 했지. 인강을 끝도 없이 들었던 것 같아. 2배속이라는 게 있다지만, 선생님 말씀도 두 배로 빨리 날아갈 것 같아 1배속을 고집했으니 남들보다 시간이 두 배로 걸린 건 당연지사지.



  컴퓨터 좀 그만 하라고 도대체 몇 시간째냐고 구박을 줘도 듣지 않던 아이가 ‘엄마 인강 들어야 하니 나와라’고 하면 못 이기는 척 비키는 거야. 먹이고, 재우고, 키우는 동시에 공부까지 해내는 엄마 앞에서 바득바득 자리를 지킬 자식은 별로 없지.



  그렇게 나는 40 되어서야 시작한 대학을 전액 장학금 받으면서 다녔고 졸업증과 자격증까지 따냈어.  언젠가는 그것으로 청소년 복지관에서 도우미도 했으니 아주 의미 없는 일은 아니었지. 가정환경조사서에 ‘대졸 적어낼 때의 뿌듯함이란 말로   수가 없어.


엄마도 꿈이 있다는 . 그리고  꿈을 이룰  있다는 . 이번만큼은  자신에게 고생했다고, 대견했다고 말해도 될까?

이전 09화 육아의 책임이 엄마에게 있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