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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점 Oct 10. 2021

끝도 없는 손님



손님들이 엮인 굴비처럼 끊일  없이 줄줄이 들어와.  가족이 가고 나면,  가족이 오고,  가족이  가족이 . 세상에, 번호표라도 뽑아야 되는거 아니니?



그래,  명절이 왔어. 민족의 대이동 명절이라는데, 나는 이동은 커녕 부엌에  붙어 차례를 준비하지. 요리를 싫어하진 않아. 차라리 좋아하는 이야.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준다는  얼마없는 인생의 보람  하나지.



문제는 다들 추석 예능에 빠져 내가 전을 부치는지, 송편을 빚는지 관심도 없다는거야. 텔레비전에서는 여성 패널들이 쪼르르 앉아 ‘며느리는 시댁가면 일꾼, 사위는 처가에서 손님’ 주제로 불평을 늘어놓고 있어. 그러게요.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여러분도 아시잖아요. 내년에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고,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이야기를 성토할거라는 걸.



꿍얼대는데 딸이 조용히 와서는, “엄마, 전부쳐? 도와줄까?” 뒤집개를 집어들어. 그래도 내가  하나헛키우지 않았구나. 마음이 녹았지. 아니, 근데    뒤집는 시늉 하다말더니, 전이 타들어가는지도 모르고 핸드폰에 정신 파는  아니겠어?


속이 시꺼멓게 타들어가는구나. 이리 내라며 뒤집개를 빼앗는데 남편이 부엌에 와서    타더라구. "  말고 냉장고에 있는거 먹어!" 버럭하며 컵을 빼앗자 남편이 토끼 눈으로 쳐다봐. "아니, 갑자기  성질이야?" 어유,  답답한 인간아. 그렇게 사람 속을 모르냐. 당신이 에비앙을 먹든 보리차를 먹든 무슨 상관이야. 하루종일  부치는 내마음이 정수 처리도 불가한 5급수다 이거야.



쇼파에 앉아계신 시어머니 눈치에 제대로  못하는  자신이  미워져. 티비 앞에 일렬로 놓인 엉덩이들은 바닥에 본드가 붙었는지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아. 전을 들고 강강수월래라도 추면서 관심을 끌어볼까? '전내려온다' 밈이라도 만들어볼까. 천장에서 갑자기 전이 쏟아지고 놀란 가족들은 떨어지는 전을 피해 요리조리 피하며 춤을 추는 거지.



그럼 거실에  붙은 이들을  쓰지 않고 일으켜 세울  잖아? 기사가 인터넷에 뜨, 세상천지에 저런 며느리가 있냐며 악성 댓글이 마구 달릴까. 생각이 꼬리를 무는데 외마디 비명이 들렸어. “엄마!   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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