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서점 Oct 08. 2021

육아의 책임이 엄마에게 있다고?

누가 그러더라. 아이가 잘못 크는 건 엄마에게 책임이 있다고. 나는 이처럼 논리가 하나도 없는 말은 처음 들어봤어. 부모가 아이를 낳기로 같이 결정했고, 함께 키우는데 왜 엄마에게만 육아의 책임이 있어? 열 달 걸려서 애를 낳은 것도 눈물 나게 힘들었는데, 키우는 것도 나 혼자 하라면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야. 



나는 어린 시절부터 아이를 따뜻하게 키우리라 다짐했어. 그런데 세상살이가 어찌 그리 따습게만 돌아갈까. 교육을 위해 이사 간 곳은 서울에서도 비싸기로 유명한 동네라 외벌이로는 어림이 없었고, 통장 잔고를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졌지. 나는 곧 아르바이트를 구했고, 의류점에서 옷을 판매하는 일이었어. 아이들이 학교에 가있는 시간 동안 일 할 수 있었고 체력적으로 힘들지만 정신력으로 버텼지.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어. 내가 일을 하기 시작하니 아이들이 손에서 공부를 놓는 게 느껴지는 거야. 계산이 맞지 않거나 예약 주문이 들어오는 날에는 매장에 남아서 일을 봤거든. 아이들 때문에,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무책임하게 돌아갈 수는 없잖아.



공부를 곧잘 하던 딸아이 성적이 자꾸 떨어지는 거야. 소심했던 아이가 씀씀이도 헤퍼지고, 말투에도 건방짐이 한 스푼씩 묻어나기 시작했어. 무슨 일일까 지켜보니 학교에서 소위 논다는 친구들하고 어울리는 거 아니겠어? 근묵자흑을 눈으로 목격했지. 아이들이 우정을 빙자로 친구의 나쁜 행동에 젖어드는 건 순식간이구나.



당연히 아이들이 엇나가는 걸 원치 않았지만, 그보다 더 싫었던 건 “아니, 엄마가 애를 어떻게 키웠길래”로 시작하는 비난조의 말이었어. 엄마는 지금 돈 버느라 정신이 없는데요. 엄마에게도 하루는 24시간이에요. 나도 일하고, 온 집안 청소하고, 육아까지 완벽하게 하려면 선미 말마따나 24시간이 모자라단 말이야. 요즘 맞벌이하는 엄마들은 그러고 보면 참 대단해. 아빠들도 예전과는 달라졌다지만, 아직도 엄마에게 씌워지는 ‘애는 엄마가 키워야지' 프레임은 꽤 견고하고, 관습의 힘은 생각보다 대단해서 깨기가 쉽지 않거든. 고정관념이라는 게 참 무섭지.



“애는 혼자가 아니라 같이 키운다니까요!”라고 정면으로 부딪힐 깜냥이 안 되는 나는 결국 일을 그만두고 육아에 몰입했어. 그러다 보니 아이가 내 삶의 전부가 되는 건 막을 수 없더라. 아이의 성적과 학교 생활이 곧 내 기쁨의 척도였지. 온 정성 다해 뒷바라지하는데도 그 마음 몰라주고 지들 잘난 맛에 밖으로 나돌 때는 괘씸하기도 하고, 괜히 토라지기도 했어. 아쉬운 소리 하지 않을 정도로만 자식한테 잘해야 부모-자식 간에 부담 없이 좋은 관계가 형성된다더니 딱 맞는 말이야. 가까울수록 거리를 지켜야 하는 법이니까.



아무튼 얼마 못 갔던 돈벌이는 그렇게 끝이 났어. 엄마가 사회생활을 하며 돈을 버는 모습이 아이한테 좋은 본보기였을까, 아니면 다정다감하게 집에서 맞이해주는 모습이 좋은 본보기였을까? 답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후자의 삶을 살아낸 나로서는 집안을 지키는 것 또한 쉽지 않았으며, 내가 해낸 중요한 일들 중 하나라고 믿고 싶어.

이전 08화 둘째에게 쓰는 편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