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어린애가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고, 원하는 게 많았을 테냐. 엄마는 이미 지쳐있었고, 너의 투정을 받을 인내심이 없었어. 그래서일까, 어릴 때는 땡깡도 부리더니 갈수록 넌 조숙한 어른이 되어갔다. 그런 너를 보며 ‘엄마 맘을 제일 잘 알아주는 착한 딸. 어른스럽지, 우리 딸’과 같은 칭찬의 탈을 쓴 압박을 가하곤 했지. 어쩌면 너는, 착하게 굴어야만 사랑 받을 수 있다고 성급하게 판단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방송을 보니, 아이는 아이답게 크는 것이 제일 좋다더구나. 어린아이가 너무 일찍 성숙하면 그건 칭찬할 일이 아니라, 걱정할 일이라고 해. 응당 거쳐야 하는 성장 단계를 건너뛴 채 사춘기도 없이 어른이 된 아이는 ‘허구의 독립'을 한단다. 혼자 모든 걸 해내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은 어린아이가 마음 속에 남아있지. 늘 괜찮다고 하는 건 오랜 기간 내재화 한 ‘사랑을 얻는 방식’ 인 거지, 정말 모든 게 다 괜찮아서가 아니야.
그러니 어린아이가 다 좋다고 하면 ‘정말 괜찮은 거 맞니? 주변 생각 말고, 원하는 걸 편하게 말해봐’라고 스스로의 감정을 알아차리도록 도와야 한다더라. 남탓 해봤자 소용 없지만, 나 때는 왜 이런 방송 하나 없었나 몰라. 유투브인지 뭔지가 하나라도 있었다면 좀 더 훌륭하게 너희를 키웄을까? 그저 학교 보내고, 밥 해주고, 씻기기 급급한 나날이었구나.
그 시절 나는 미숙했고, 삶의 무게는 육중했어. 육아는 내 몫이었기에 매일이 전쟁이었거든. 그렇지만 다 변명이다. 너희가 세상에 나온 건 너희들의 선택이 아니라 부모의 선택이기에, 우리가 더 짊어지고 배웠어야 함을 깨닫는다.
너는 꽤 당돌한 면도 있었어. 어느 날 A4 3장짜리 계획서를 들고 와서는 유학을 가겠다 선포했지. 중학생이나 되었을까, 어디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알 턱이 없지만, 모르는 새 네 안에서 작은 씨앗이 심어졌겠지. 두려움이 앞선 나는 다 듣지도 않고 고개를 내저었어. 너는 왜 이리 유별나냐고, 외국생활이 얼마나 위험한 줄 아냐면서. 내 작은 걱정으로 너의 커다란 꿈을 산산조각내기 전에, 진지하게 의논했으면 어땠을까? 소원을 이루지 못한대도, 부모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 기억은 든든한 지원군이 되잖아.
아이는 누구나 특별하고, 개성 있고, 존중받아야 마땅해.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이 될 이유는 없는 거야.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죽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해서, 모두가 그렇게 살아야 되는 건 아니지. 세상 질서를 준수하고 다른 이와 어울리면서도 ‘나'로서 살아갈 수 있는 법인데, 나는 네가 모나지 않게 평범하기를 바랐고 그것을 때때로 후회한단다.
아직 늦지 않았다, 딸아.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 또한 너무 늦지 않았길.) 평생에 걸쳐 자신을 알아가는 게 인생이니, 너를 위한 실험을 계속하렴. 너만의 가설을 세우고, 가설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설령 그 시도가 실패로 판명 나더라도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나 또 가설을 세우라고. 한 번의 실패가 인생의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이름만 대면 아는 기업들이 세상에 우뚝 설 수 있었던 건 무수한 실패를 딛었기 때문이라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널 비웃고 손가락질해도, 적어도 이 엄마는 너를 외면하지 않을 거라고. 과거의 나는 네가 실패할까봐 불안했지만 이제는 날개를 달아줄 거라고. 말해주고 싶구나.
훌륭한 가정은 아이에게 뿌리가 되고 날개가 되어주는 법이거든. 네가 날개를 펼치도록 도와줄게. 세상과 부딪히는 용기를 응원한다. 훨훨 날아가거라, 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