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남편은 매콤한 걸 좋아해. 청양고추가 맵다며 오이고추를 우물거리는 사람이니 말 다했지. (보통은 우유나 맨밥을 먹지 않아?) 두 딸은 성향이 다른데, 첫째는 매일같이 빵을 먹고 둘째는 고기라면 사족을 못 써.
어느 날 딸아이가 물었어. “엄마.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 순간 말문이 막히면서 눈알을 굴렸어. 그러게 말이야. 엄마는 무슨 음식을 좋아하지? 망치를 맞은 듯이 머리가 띵했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옷은 뭘 입는지, 기억이 안 나. 모든 건 가족 위주로 돌아갔지. 오해하지 말아 줘. 가정을 돌보는 게 싫었다는 게 아니야. 매일 집구석을 쓸고 닦고, 누구라도 집에 오면 얼른 반찬을 내놓고, 시간 나면 장을 보러 가고, 이 모든 건 내가 흔쾌이 한 일이라고.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작아졌다는 거야.
집안일이라는 게 그래. 직장에서는 돈을 주고, 평가도 주는데 나에게는 외적 보상이 없었어. 그이가 직장에서 승진을 거듭하고 명예로워질 때, 아이들이 반장을 달고 성적우수상을 받을 때, 뛸 듯이 기뻤지만 작은 좌절도 뒤따랐어. 엄밀히 말해서 내 성과는 아니니까. 가족의 뒤에서 나는 늘 ‘조연’이었지. 남편이, 딸아이가, 아들내미가 넓어지는 동안, 나는 좁아졌어. ‘쯧쯧, 그처럼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쳐서는 어떻게 살림할래?’ 다그치면 할 말은 없지만서도 '소외된 사람의 역사’는 때로 불편하리만큼 궁핍하고 비참하거든.
요즘의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해. 트로트 가수를 마음껏 덕질하고(그 가수가 광고하는 제품을 얼마 전에 샀거든. 또 무슨 핀잔을 들을까), 딸들이 여행 가잘 때 냉큼 따라가고, 밥 하기 귀찮으니 외식하자고도 해. 가족이 소중한만큼 내 몸도 소중하니까. 내가 나를 사랑해야, 가족도 사랑할 수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