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질이 나와 달랐던 첫째에게.
너는 어릴 때부터 기다 아니다가 확실했지. 똑부러지게 자기 주장을 했어. 나는 늘 상대부터 살피는 편이었고. 어쩜 그렇게 밝고 쾌활하냐는 칭찬을 자주 들었고, 그건 얼마없는 내 자존심을 지킨 훈장이었어. 강하게 나를 드러내는 건 폐끼치는 거라 여겼어. 여자는 잘 웃으며 분위기를 망치지 않고, 평화롭게 지내는 게 미덕이라 생각했지.
그런 내가, 싫다고 말하는 내 딸의 소신을 보며 얼마간 적의를 느낀 적이 있어. 우습지. 딸에게 적대감을 느끼는 얄팍한 엄마라니. 소신을 명확히 밝히는 건 치켜세워야 마땅함에도, 나로서는 하고 싶은 일을 끝끝내 하고야마는 너가 이해되지 않았던 거야.
같이 장을 보러 가자 해도, 친구들과 선약이 있거나 좋아하는 가수가 텔레비전에 나오면 너는 가지 않겠다고 했어. 너에게 하고싶은 일이라는 건 꽤 중요했거든. 할머니 칠순이라든가, 고모 결혼식 정도는 되야 따라나섰지.
하자는 대로 잘 따르지 않던 너야. 사실은 당연하지. 딸은 엄마의 꼭두각시가 아니니까. 법을 어기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취향따라 자유롭게 살 수 있음에도 나는 서운했단다. 어쩌면 하고 싶은대로 하고야마는 남편의 실루엣이 너에게 겹쳤는지도 모르겠구나.
엄마가 참 미숙했지. 사람이 그렇게 이기적이면 안된다며 널 흘겨보곤 했어. 남편과 다툰 날에는, 분노의 화살을 은근히 너에게 돌렸지. 남편에게 어찌 해보지 못하는 물렁한 자아가 유독 너를 만나면 자신감이 충천해서 성질머리를 부린걸지도 몰라.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너에게서 남편의 결점을 발견할 때 내 빈약한 인내심이 무너졌어.
“도대체 나를 왜 낳았어 그럼! 낳지 말지!”라는 잔인한 말에 “그래! 내가 왜 너 같은 걸 낳아서 이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더 잔인하게 받아치는 건 하지 말았어야 했지. 요즘 디지털 장의사라는 직업이 있다는데, 내가 뱉은 말도 감쪽같이 지워주고 네 기억까지 지워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미안하다. 내 옹졸함 때문에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 했던 것 같아. 그 때의 나는 어쩜 그렇게 혓바늘이 무섭게 돋아 내 딸에게도 무차별적으로 쏘아댔을까.
당당하게 네 의견을 말하라고, 소망을 밝히는 게 잘못된 게 아니라고, 원하는 걸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타인의 소망도 이해하는거라고, 그렇게 얘기해주고 싶구나. 30년 전 해줬어야 할 따뜻한 말을 이제서야 한다.
첫째이기에 받았던 많은 부담, 더 엄격하게 다가오던 의무, 다 잊고 하고 싶은 대로 살았으면 한다. 그것이 인생을 사는 최선의 방식이니까. 그렇게 살았으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