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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점 Oct 03. 2021

나만의 안식처를 찾다

아이들이 크는 동안 부부싸움도 잦아졌어. 무심한 그가 못견디게 얄미웠어. 잔소리를 쏟아내는 나도 못견디긴 매한가지 였을 거야. 그날 아침식사 때는 유독 언성이 높아졌지.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시작한 것 같아.



이유는 보나마나 보잘 것 없지만 부부싸움이라는 게 그렇잖아. 원인이 중요해? 결국은 감정에 휘말리지. 날 선 말이 오고가기를 여러 번, 화가 치밀어 오른 그가 반찬을 확 밀었어. 김칫국물이 금세 천장까지 튀어올랐고, 반찬끼리 뒤엉키면서 식탁이 엉망이 됐지. 그는 그렇게 나가버리더라. 김칫국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방문 틈 사이로 빼꼼 고개를 내밀던 둘째랑 눈이 마주쳤어. 가엽게 흔들리던 눈동자. 당장 달려가서 괜찮다고 안아줬어야 했는데 힘이 나지 않아. 나도 사람이잖아. 나도 마음이 다쳤잖아. 국물을 닦아내고, 엎질러진 배추들을 긁어모았지. 배춧잎들을 다 모아가는데, 빨간 양념으로 물든 내 손이 보였어. 배춧잎은 주워주는 사람이라도 있지, 내 마음은 누가 주워주나. 눈물이 뜨거운 용암으로 터져나왔고 주저앉은 채로 펑펑 울었어. 아이는 다가오려다가 멈칫 하더니 몸을 돌렸어. 엄마의 통곡을 들었을까. 엄마의 슬픔을 목도한 아이는, 엄마를 다독일 수 없는 아이는, 태어나 처음으로 무력감을 느꼈을까.



  아이에게 상처를 준 것, 우리 싸움이 반복되는 것. 어쩌면 남북처럼 휴전 상태로 몇십 년을 지내야 한다는 것. 그저 막막했어.



 나는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자동차 키를 들고 현관을 나섰어. ‘돌아오지 않아. 이대로 돌아오지 않을 거야.' 그리고는 냅다 주차장으로 달려가 시동을 걸고, 운전대를 잡고, 남양주로 향했어. 왜 남양주였냐고? 남양주에는 잔잔한 강이 흐르거든. 활화산이 강물을 만나면 사그라들지 않을까. 강을 끼고 한참을 달리는데, 오른쪽 야트막한 언덕에 높게 솟은 동상이 보였어. 하얀 동상. 그것은 성모 마리아상이었던 것 같아. 홀린 듯 언덕을 올랐어. 수도원이었지. 



고요한 성당 안은 적막하고, 어두웠어. 아무도 없다는 해방감. 어딘지 차분한 분위기. 나는 십자가상을 마주하고 무릎을 꿇었어. 눈물이 주체 없이 쏟아지더라. ‘왜 이런 상황에 놓여야 하나요, 주님. 아이에게 사랑만을 주고 싶어요. 부모가 싸우는 걸 본 아이는 전쟁터에 놓인 듯한 공포를 느낀다는데, 왜 그랬을까요. 아침부터 나는 왜 그를 몰아붙였을까요’ 참회하고, 참회하고, 또 참회했어. 그러니까 마음이 후련해지더라.



  사람은 누구나 기댈 곳이 필요하구나. 종교든, 책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누구나 마음 전할 곳이 필요하더라. 꼭 가까운 이에게 위로 받아야 하는 건 아니야. 나조차도 내 마음을 모를 때, 안식처가 있다면 그래도 일어설 수 있구나. 그때 깨달았어. 그래. 우리 안식처를 하나씩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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