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이민 이야기를 쓰려고 했지만, 내가 이곳에 오기까지의 길 위에 엄마의 투병은 빼놓을 수가 없다.
우리 가족은 가장 길고 깊은 겨울을 지나야 했다.
2022년 겨울,
엄마는 암 진단을 받았고, 남편은 엄마의 부탁대로 퇴사를 하고 영국 본사에 입사를 했으며
출국일은 2023년 4월로 정해졌다.
함께할 시간은 두 달 정도가 남았고, 그와 동시에 엄마의 항암치료가 시작됐다.
선항암 12회 + 수술 + 후 항암 16회.
숫자로는 간단하지만, 그 시간은 매일이 칼날 위였다.
누구보다 강인하게 살아온 엄마였기에, 잘 버텨주시리라 믿었지만, 항암제는 암만 공격하는지 않았다.
엄마의 건강한 세포까지 무자비하게 죽이며, 하루하루를 지옥으로 만들었다.
첫 항암날, 약물 부작용이 엄마의 몸을 집어삼켰고 병실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엄마와
그 모습을 보이기 싫다며 엄마는 우리 보고 나가달라고 부탁했다.
닫힌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고통스러운 숨소리에, 나는 벽에 이마를 박고 울었다.
그 순간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엄마..., 제발 견뎌줘.. 엄마 조금만 버텨줘.. 절대 놓지 말아 줘."
이기적인 마음이었다.
엄마가 아픈 것보다 엄마가 없으면 내가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치료가 이어질수록 머리카락이 빠져나갔다.
드라마, 영화에서만 보는 장면이었는데.... 왜 머리가 빠지는 부작용은 없어지지 못할까?
이 상징적인 모습에 그 순간은 환자도, 가족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 모두가 무너진다.
더 이상한 모습이 되기 전에 머리를 말끔히 정리하고 싶다며 동생과 엄마는 머리를 모두 밀고 오셨다.
엄마는 모자를 벗으며 민망하게 배시시 웃지만, 그 웃음뒤에 숨은 눈빛은 한없이 여리고 슬펐다.
강인했던 사람이 '환자'가 되는 모습을 인정해야만 하는 순간, 나는 그 현실이 두려웠다.
항암 후 2주는 아무것도 드시지 못했다.
정성껏 만든 음식에도 맛이 이상하다며 화를 내셨고 우리는 속상해서 말이 날카로워졌고,
''뭐라도 먹어야지 견디지!! 참고 먹으라고!! 엄마 제발 좀 먹으라고!!"라며 윽박도 질렀다.
훗날 얼마는 말했다. "아파서 힘든 것보다 내가 짐덩이가 되어가는 게 더 힘들었다"라고.
엄마도 드시고 싶지 않아서 안 드신 게 아니라 도저히 '못'드셨던 건데 우리는 왜 몰랐을까.
그리고 그 와중에 남편은 두 달 동안 엄마 곁은 묵묵히 지켰다.
우리보다 음식 솜씨가 훨씬 좋은 남편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엄마에게 음식을 해드렸고
그래도 남편이 해주는 음식과 운동에는 훨씬 덜 예민해하셨고 가끔은 웃기까지 하셨다.
아마 '사위'에게 지키는 최선의 예의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남편은 두 달을 딸들보다 더 정성스럽게 엄마를 챙기며 보살폈고 영국으로 떠났다.
그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고 두려웠을까, 엄마가 이겨낼 수 있을까라는 불안도 있었을 것이다.
그 아픔을 헤아려 줄 여유도 없었고 남편을 보내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생각했고
각자의 아픔정도는 서로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남편이 떠난 뒤, 나와 동생은 남편의 빈자리를 채우려 두배로 노력했고
엄마도 어느새 적응을 하셨고 아픔에 적응하는 모습이 더욱 맘이 아렸다.
그렇게 처절했던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갔고 엄마는 드디어 수술대위에 올랐다.
길고 긴 6시간의 수술이 끝났고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가 아주 강한 사람이에요 그 긴 수술을 어찌나 잘 버텨주시던지 하루 종일 칭찬해 주세요.
그리고 하나 더, 이걸 기적이라고 보통 부르죠? 환부를 열어보고 암 조직을 살펴봤더니 암세포가 안 보이네요"
난 그 말씀을 이해를 할 수가 없어 다시 한번 더 여쭈어봤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
"그게, 정말 드문 경우로 이럴 때가 있는데, 선 항암이 잘 되었을 경우, 암세포가 전멸하기도 해요.
지금 모친이 그런 경우고요 대단히 좋은 일은 더 이상 항암을 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아서 정신을 못 차렸다..
완치를 목표로 할 수 있는 기수가 아니라고 하셨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암세포가 없다고 하신다.
엄마는 강물 위를 걸었지만 끝내 그 강물을 건너지 않으셨다.
수술을 끝마치고 힘들게 겨우 눈을 뜬 엄마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했다.
그제야 엄마는 맘 놓고 우셨다.
그간의 고생이 아마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신 게 아닐까, 아님 수술대를 들어가던 엄마의 무서운 마음이 안도가 되었을까?
그리고 3개월 정도를 방사선만 하고 더 이상 항암을 하지 않다 보니 엄마도 살만하다고 하셨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엄마 너무 대단하지? 나 너무 잘했지?? "
"응 엄마, 너무 대단해 너무 고마워 진짜 고마워"
"그러니까, 나 이제 괜찮은 거 확인했으니 이제 너도 가, 영국으로"
나는 알았다.
엄마가 병과 치열하게 싸운 많은 이유 중 하나는, 나를 바다 건너 남편이 있는 곳으로 보내기 위해서였다는 걸."
부모라는 존재가 어떤 건지 아직은 이해가 안 가지만 부모는 본인 자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식이라는데,
그것이 바로 이 순간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 상황에서도 엄마는 나를 보내려고 하는지, 나 같으면 절대 그럴 수 없을 것 같은데...'
바보 같고 속 터지고 아리고 어쩌면 불쌍하고 미련할 만큼 주기만 하는 사랑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부모'인 것인지.
그렇게 몇 달뒤, 엄마의 빠졌던 머리가 자라나는 만큼 건강도 많이 회복하셨고
나는 꼬박 1년이 지난 2023년 겨울, 밟을 수 없을 것 같던 영국 땅을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