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3천을 내고 얻은 건, 남의 집 열쇠였다.

월세로 버틴 시간끝에서, 우리는 계산기를 켰다.

by Stella

영국에서 월세를 산다는 건,

매달 누군가의 대출이 착실히 갚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단지 그 대출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게 문제일 뿐이다.


처음 영국으로 왔을 때만 해도

월세집을 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찼다.

그때 나는 브런치에 이렇게 썼다.


"드디어 우리에게도 주소가 생겼다.
이 도시에 발을 디딘 기분이다."


그 글을 쓰던 순간의 감정은 진심이었다.

방 하나를 얻은 걷만으로도 안도감이 밀려왔고,

이제 우리도 이 나라에 정착하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감정은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월세로 1억 3천만 원을 쓴 지금,

우리는 다시 계산기를 두드라며 묻고 있다.

"우린 대체 뭘 위해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


집주인은 매년 계약이 끝날 때마다

월세를 조금씩 올렸다.


"물가 상승으로 인해 월세가 소폭 인상됩니다.
이제는 집주인이름으로 도착한 이메일조차 무섭게 느껴진다.


처음엔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라며 넘겼다.

하지만 대출이자보다 비싼 월세를 내며

소득 없는 달에는 통장을 비워가며 살아보니,

이건 생활이 아니라 버티기에 가까웠다.


남편이 말했다.


"이렇게 외국까지 와서 일하면 뭐해.
월세내고, 공과금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잖아.
돈을 모으기는커녕 오히려 마이너스네....."


그의 긴 한숨이 차가운 공기와 섞여, 무겁게 내 앞에 내려앉았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일하고, 아끼고, 작은 사치를 미뤄가며

'조금이라도 저축'을 목표로 살았다.

그런데 정작 통장은 늘 비어 있었다.

집세가, 세금이 ,공과금이,

우리의 노력을 아무 일도 없던 일처럼 삼켜버렸다.


물론, 우리가 이 모든 걸 모르고 온 건 아니다.

집을 사기 전 몇 년은 돈을 모으기보다 경험을 쌓는 시기라 생각했다.

지금은 조금 힘들어도, 본사에서 커리어를 쌓으면 분명 더 나은 미래가 있을거라고.


하지만 막상 도착해보니

현실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냉정했다.

끝없이 오르는 물가,

매일 새로 고쳐 써야하는 환율,

그리고 치솟는 공과금과 월세.


처음엔 '이정도면 감당할 수 있겠지'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의 계산보다 언제나 몇 발짝 앞서 있었다.

우리가 '러프하게' 세운 예산표는

이곳의 생활비 앞에서 금세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제야 알았다.

이곳에서 산다는 건,

단순히 외국에서 살아간다는 뜻이 아니라

매일의 생존을 숫자로 증명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그날 밤,

우리는 엑셀을 켰다.

한쪽에는 월세지출, 한쪽에는 모기지 계산기를 띄워놓고

숫자를 비교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대출 이자가 더 쌌다.

단, '우리에게 대출을 얼마를 해줄 수 있는지'라는 전제가 붙었다.


그래서 우리는 결심했다.

더 이상 남의 대출은 갚지 않겠다고.

이제는 우리의 '진짜 보금자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물론 알고 있었다.

남의 땅에서 집을 산다는 게,

월세를 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울 거라는 걸.

하지만 세상 일은 늘 그렇다.

모든 난관은, 막상 부딪혀보면

언제나 우리의 예상보다 조금 더 높고, 조금 더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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