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의 메일, '승인되었습니다.'
그날, 부동산에게서 메일이 왔다.
"물가오름, 이자오름 등으로 인해 집주인이 월세를 100파운드를 올리길 희망합니다."
우리는 작년에도 집주인이 바뀌었다 하여, 100파운드를 올려줬다.
(이전 집주인은 상당히 아주 상당히 좋은 분이셨다, 그런데 지금 집주인은.... 욕심쟁이 우후훗.)
순간, 3년 동안 오래 눌러왔던 감정이 스르르 무너졌다.
3년 동안 비싼 월세를 내며 '이 정도면 괜찮지'라며 스스로를 달래 왔지만,
언제부턴가 낯선 나라의 리듬 속에서
나는 늘 조금 작아지고, 조심스러워졌다.
물론, 누가 나를 억눌렀던 건 아니다.
다만 익숙하지 않은 문화와 언어, 생활 방식 속에서
나는 혹여 실수라도 할까, 손해라도 볼까, 조심스러워지고 무지함에 괜히 주눅이 들었다.
아마 그건 이민자로서 자연스러운 방어 본능이었을까.
그날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차분했다.
'그래,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누굴 원망하기보다는 그냥,
이제는 이 판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잘 먹고 잘 살아라!
나는 이제 내 집을 찾으련다.
영국에서 집을 산다는 건
은행과의 긴 대화로 시작된다.
앱을 열어 소득과 지출을 입력하고, 비자의 종류를 선택하고,
카드 결제 내역을 시간 순으로 끌어올리며
우리는 우리의 삶을 숫자로 번역했다.
몇 시간 뒤, 화면에 떴다. Agreement in Principle.
'가능합니다.'
단 세 단어가 이렇게 안심이 되는 말일 줄 몰랐다.
하지만 알았다.
이건 초대장일 뿐, 입장권은 아니라는 걸.
진짜 심사는 이제부터였다.
이메일함은 그날부터 서류 목록으로 가득 찼다.
3개월치 급여명세서, P60, 은행 그래 내역, 비자, 주소증명.
남편이 성실하게 일한 시간들이 PDF로 줄을 섰고,
커피 한잔, 쇼핑 한번, 넷플릭스 자동 결제가
고스란히 '지출'이라는 칸에 이름을 올렸다.
은행 직원이 물었다.
''월 생활비는 얼마로 계산할까요?"
우리가 매달 얼마를 쓰며 사는지,
그 생활의 무게까지 숫자로 말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영국은 집값의 몇 퍼센트로 대출을 내주는 한국과 달리,
'연봉의 몇 배'라는 계산법을 쓴다.
결국 모든 기준은 소득이었다.
영국 vs 한국, 주택대출의 기준 차이
- 한국: 집값 중심 - 보통 LTV(집값의 40-70%)만큼 대출이 가능하고,
지역이나 규제 여부에 따라 비율이 달라진다. (당연히, 소득도 참고하지만 출발점은 집값이다.)
- 영국: 소득 중심 - 보통 연봉의 약 4~5배 정도가 한도이며, 부부가 함께 일하면 합산 소득으로 계산한다.
핵심은 상환 능력이다. (은행. 지역. 정책에 따라 세부 기준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남편의 급여명세서가 중심이 되었고,
나는 서류상 '무직자'로 존재했다.
그 단어 하나가 유난히 맘에 걸렸다.
한국에서의 나는 내 이름으로 일했고,
남편보다 높은 연봉을 받았었다.
그때의 나는 내 힘으로 계획을 세우고,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영국의 모기지 시스템은 오직 '소득이 있는 사람' 만을 기준으로 돌아갔다.
내 이름으로 벌어들인 수입이 없다 보니,
대출은 남편의 연봉만으로 계산되었고
그만큼 한도는 타이트해졌다.
며칠 뒤엔 은행과의 화상 인터뷰가 있었다.
은행 직원은 화면 너머에서 환하게 인사하며 물었다.
"두 분이 공동명의 대출 신청자 맞으시죠?"
각자 어떤 일을 하시나요?"
남편은 회사명과 직무를 차분하게 잘 설명했다.
그리고 나는 그 옆에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 묻는 질문은 없었고, ( 아, House Wife라서 좋겠다고 말했다..)
할 말도 거의 없었다.
일을 하지 않으니,
이 과정에서 내가 설명할 수 있는 건 이름뿐이었다.
거기에 비자 상태라는 조건이 겹치면서
금리도 시민권자보다 다소 높게 책정됐다.
이 모든 게 당연히 이해는 되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쓰렸다.
'내가 일을 하고 있었다면,
조금 더 여유로운 조건으로 집을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아쉬움은 자격지심보다는
뭔가 기여하지 못한 사람의 답답함에 가까웠다.
내가 지금 당장 벌어다 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내 몫을 보태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부족한 금액은
한국에서 결혼 전부터 모아 온 돈으로 채웠다.
은행은 그 자금의 출처를 꼼꼼히 확인했고,
나는 그 서류들을 정리하면서 묘한 감정을 느꼈다.
이건 단순한 증빙이 아니라,
적어도 공동명의로 올리는 내 이름에 대한 예의이자 도리였다.
벨류에이션(감정평가) 날엔 바람이 좀 많이 불었다.
평가사는 줄자를 꺼내 벽을 재고, 사진을 찍고
나는 멀찍이 서서 그 장면을 숨도 쉬지 않고 바라봤다.
조금 뒤, 앱에 한 줄이 떴다. 'Valuation received.'
'감정 평가 완료'
그 한 줄이 우리의 오퍼를 지켜줄지,
그날의 하루는 유난히 길었다.
그와 동시에 건설사와는 집에 들어갈 옵션 미팅이 진행되었다.
바닥재 샘플을 만지며, 페인트 칩 위로 햇살이 스며들었다.
남편이 물었다.
"여보 이거는 당신 취향 맞아?"
"음, 약간 더 따뜻한 색이었으면 좋겠어."
그 대화들이 쌓여, 도면 위의 선이
점점 '우리의 공간으로 바뀌어갔다.
은행은 조건부 승인을 보냈다.
딱 두 개의 서류만 더.
끝났다고 생각할 때마다 돌아오는 추가 요청들.
그런데 이번엔 이상하게 불안보다 리듬이 먼저 느껴졌다.
한 장, 또 한 장.
이민의 서사가 서류의 순서대로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어느 저녁,
메일 제목에 굵은 글씨가 앉았다. 'Mortgage Approved.'
'대출 승인'
소리 없이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그 순간을 위해 쌓아 올린 모든 증빙의 밤들이
짧은 문장 하나로 빛났다.
지금 그 집은 벽이 세워지고, 창이 달리며 하루하루 완성되어 가고 있다.
아직 이사 전이지만, 마음은 이미 그 집에 가 있다.
건설사 앱을 열어 새로 올라온 업데이트 사진을 볼 때마다,
벽이 한층 올라가는 그 순간이,
마치 내 안의 시간도 함께 쌓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민 후 처음으로,
"이곳에 오래 머물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원한 건 단순히 비가 새지 않는 지붕이 아니라,
이 땅 위에 나의 흔적이 남는 집이었다.
오랫동안 남의 집에 조심스레 살며
불편함보다 '감사함'을 먼저 배우려 했지만,
그 시간은 생각보다 길고, 솔직히 조금 고단했다.
그래도 그 덕분에 나는
'진짜 내 공간'이 주는 안정감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다.
이민의 시간은 결국,
낯선 곳에서 내 자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하루하루가 쌓여서 벽돌이 되고,
그 벽돌들이 내 삶의 기초가 되었다.
이민 3년 차, 나는 이제
남의 이름이 아닌 내 이름으로 세워지는 집을 바라본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 집은,
단순한 집이 아니라,
이곳에서 살아낸 나의 시간과 마음이 담긴
하나의 상징이자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