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듣는 울음은 더 천천히 가슴에 떨어진다.
어제저녁,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늘 "언니 뭐 해?" 하며 귀여운 농담부터 건네는 아이인데,
이번엔 아무 말 없이 숨을 들이켜는 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곧, 터질 듯이 울어버렸다.
그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 나는 영국의 조용한 부엌 식탁 앞에 앉아 있는데,
동생의 울음은 시차를 뚫고 그대로 내 가슴에 떨어진다.
동생과 나는 부모님 회사에서 10년째 함께 일했다.
내가 이민 올 때까지만 해도 회사는 그래도 안정적이었고
우리는 그 안정감 속에서 서로의 등을 믿고 버텼다.
그땐 정말로 회사의 미래가 서서히 더 커져만 갈 거라 믿었다.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었을지도....)
하지만 내가 떠나온 뒤 한국 경제는 더욱더 얼어붙었다.
건설경기의 흐름에 민감한 회사도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다.
계약은 줄고, 경쟁은 치열해지고,
남는 것도 없는 일을 울며 겨자 먹기로 해야만 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한참 울던 동생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언니.. 나 요즘은 3개월 뒤가 무서워.그리고 6개월 뒤는.. 그냥 안 보여."
그리고.. 사실 이 얘기는 엄마가 언니한테는 말하지 말라 그랬는데..
절대 엄마한테는 아는 티 내지 말아 줘. 그냥..그냥 힘들어서 전화했어."
라며, 요즘 회사의 자금 흐름 및 자세한 내막을 털어놓았다.
그 순간 또 한 번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거의 매일 통화하며 장난기 어린 목소리를 들려주던 엄마였는데....
바보같이 그 웃음 뒤에 숨겨진 힘듦을 보지 못했다.
엄마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너무 잘 안다.
멀리 사는 딸이 걱정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 하나라도 덜어주려고, 나에게만 감추셨겠지.
그 말이,
오히려 나를 더 무너뜨렸다.
사실 나에게 그 회사는 특별하다.
엄마의 젊은 청춘 대부분이 그곳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작은 삼촌이 개인 사정으로 회사를 넘기던 당시,
회사는 이미 빚더미 위에 앉아 있었다.
누가 봐도 회생이 어려운 상황이었고,
주변에서는 ''이제 끝났다''라고 말하던 시기였다.
그런데도 엄마는 하루하루 회사를 붙잡아 일으켰다.
무너진 곳을 다시 쌓고, 흔들리면 버티고,
넘어지면 더 단단하게 세워가며 큰 기업이나 회사는 아니지만,
지금의 안정적인 회사로 만들어내셨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 회사는 단순한 영업이익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다음으로 엄마가 소중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엄마의 인생과 가장 닮아 있는 존재에 가깝다.
그 회사가 흔들린다는 건
바로 엄마가 흔들린다는 것과 같았다.
멀리 있는 딸을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아프고 힘든 이야기를 숨기는 엄마.
그 비밀을 지키느라 혼자 버티며
결국 울음을 터뜨린 동생.
그 사이에서 나는, 그 두 마음을 함께 들어 올리지도 못한 채
멀리 떨어져 있었다.
2년 전 유방암을 겪은 엄마는 다행히 회복하셨지만
요즘 회사 문제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했다.
동생은 그게 너무 불안하다고,
혹시나 다시 재발이라도 하면 어떡하냐고,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조그라드는 심장을 손으로 붙잡는 느낌이었다.
여기에서는 이사 준비를 하고,
새로운 생활을 만들어가고,
아이도 준비하는 중인데
그 와중에 모든 걸 내려놓고
당장 비행기를 타고 달려가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처럼 그렇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바로 갈 수도 없고,
내가 있다고 해서 회사 상황이 단숨에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마음은 계속 저만치 앞서 달렸다.
나는 한 손으로 허공을 붙잡는 기분이었다.
닿지 않는 거리.
잡히지 않는 마음.
해줄 수 있는 건 고작 목소리 뿐이었다.
이민을 하며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외국에서의 외로움보다 더 큰 외로움은,
가족이 힘들 때 나만 그 곁에 없다는 현실이다.
유학이 연애처럼 반짝였다면,
이민은 이렇게 결혼처럼 현실적인 순간들을 견디며
서로의 삶을 멀리서 이어 붙이는 시간이다.
전화를 끊고 식탁 앞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동생의 울음, 엄마의 말,
그리고 내가 할 수 없었던 모든 것들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멀리서 산다는 건
가끔 이렇게 늦게서야 도착하는 마음으로
가족을 바라보는 일이다.
그리고 그 마음 옆에는
언제나 죄책감이라는 불편한 손님이 앉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