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과 배척 사이 그 어딘가.

by Stella

며칠 전, 런던 시내에서 시위대를 마주쳤다.

"Send illegal immigrants back!!"( 불법 이민자를 돌려보내라!)


굵은 글씨가 적힌 푯말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푯말을 들고 시위를 하는 영국인들의 표정에는 결기와 분노가 가득했다.

그리고 나는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직도 나는 이곳에서 '초대받지 못한 손님'일까, 아니면 이 사회의 작은 부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걸까.


나는 불법이민자가 아니다.

합법적으로 서류를 준비했고, 많은 세금을 내며,

영국인들은 면제받는 NHS 의료비까지 부담하며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거리의 목소리 속에서 그런 구분은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그들의 눈에는 나는 단지 '이민자'라는 하나의 단어로 묶여 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괜한 자격지심이 마음속에서 꿈틀거린다.

환영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의 진정한 커뮤니티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듯한 묘한 거리감.


실제로 내가 살아가는 동네는 또 다르다.

옆집 영국인 이웃은 늘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함께 커피나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고민을 나눈다.

친구들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때로는 한국에서보다 더 따뜻한 연대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정치와 언론은 점점 더 거세게 "반이민"을 외친다.

특히 최근 꽤 굵직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정당은,

만약 다음 선거 때 집권하게 되면 영주권 제도를 폐지하겠다는 공약까지 내세웠다.


우리 같은 이민자들은 대부분 비자로 살아가며,

5년 뒤 영주권 취득을 목표로 한다.

영주권은 단순히 '체류 자격'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1년, 2년마다 찾아오는 비자 갱신의 불안과 높은 신청 비용에서 벗어날 수 있고,

자녀의 교육이나 안정적인 주거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기반이 된다.

말하자면, 영주권은 이 땅에서 하루하루를 '임시로'가 아니라 '당당하게 주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자리다.


나는 종종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도 던진다.

"더럽고 치사해서 그냥 우리나라로 돌아가고 싶다..."

"그렇게 불안하고 걱정이라면 한국으로, 내 나라로 돌아가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남편의 직장은 영국 본사에 속해 있고,

그는 한국보다 이곳에서 더 인정받으며 성장하고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내로서,

"이 모든 걸 한순간에 접고 돌아가자"는 말을 쉽게 꺼낼 수가 없다.


우리의 생활과 미래는 이미 이곳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건 단순한 귀향이 아니라,

지금까지 이곳에 정착하기 위해 들인 적지 않은 시간과 돈, 수많은 선택들을 모두 무효로 돌리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 남아, 불안 속에서도 뿌리를 내리려 한다.

내가 이 나라에 머무르려 애쓰는 것을 한국을 외면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미 내 삶의 일부가 이곳에 깊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어느 나라를 가도, 어느 집을 가도 '내 나라가 최고고 내 집이 최고'라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요즘은 이런 생각도 든다.

지금 런던에서 일어나는 일은 어쩌면 남의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도 중국인 유입을 막기 위한 시위가 열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주한 미군을 내보내자는 목소리도 들린다.

나라와 도시만 다를 뿐,

본질은 비슷한 불안에서 비롯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영국인이었다면, 나 역시 그들과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나 갑자기 외국인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내 나라의 세금과 복지가 낯선 이들에게 돌아가며,

익숙한 거리의 간판과 언어가 변해간다면... 그 또한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불안의 큰 부분은 '치안'에서 비롯된다.

불법 이민자들 중 일부가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신분을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체포나 범죄 예방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이런 현실이 반복되나 보면,

사람들은 점점 '이민자 전체'를 향한 막연한 두려움과 거부감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 나는 지금 아이러니한 자리에 서 있다.

영국에서 나는 '내보내져야 할 외국인'이지만,

한국에서는 외국인 유입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마음 또한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이 땅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외국인이면서도,

한국이라는 또 다른 나라의 시민으로서는 낯선 이들의 유입을 걱정하는 마음을 가진다.

결국 나는,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두 세계의 경계에서 서로의 불안을 동시에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나는 매일 이 땅에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고 있다. ( 아니, 사실은 버티고 있다.)

분명 이곳에서 웃고, 사랑하고, 미래를 꿈꾸고 있는데,

동시에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경계선 위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환영과 배척, 이해와 두려움, 정착과 이탈 사이에서 흔들리는 이민자의 삶.

아마 이것이 지금 내가 살아가는 현실이고, 짊어지고 가야 할 감정일 것이다.


이러한 불안한 현실 속에서도, 내가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래서 나는 오늘을 꿋꿋이 '잘' 살아가려 한다.

별다른 탈 없이, 소중한 사람과 따뜻한 밥을 먹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가을의 공원을 걸을 수 있는 하루에 감사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우리나라를 위해, 그리고 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작은 것이라도 실천할 수 있는 일에 귀를 기울이고,

이곳에서도, 또 나의 뿌리가 있는 그곳에서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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