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행복
맨 처음 내 정원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거실의 1/2과 베란다의 2/3였어요. 식물이 일 순위 거주자였다고 할 수 있지요. 베란다에 빨래를 널려고 할 때는 빨래를 들고 게처럼, 옆으로 살금살금 걸어서 건조대로 가야 했어요. 베란다 안쪽의 창과 거실 창밖으로도 넝쿨 식물이 유리창과 천장을 점령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살던 어느 해 늦은 봄날, 조롱박이 내가 구상해서 만든 철삿줄 모형을 거부하고 성장을 멈춰버렸어요. 이런저런 시도로 넝쿨손을 만지작거렸지만 요지부동이었죠. 나는 어쩌지 못하고, 그대로 손을 놓아버렸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조롱박이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손을 뻗어갔어요. 그때, 현실의 상황과 맞물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식물도 생명이며, 생명 있는 존재가 갖고 있는 힘은, 남이라는 외부에서는 어떻게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거예요.
식물의 사생활을 존중하자고 생각을 정리하자, 내 사생활도 존중하게 되었죠. 집안의 식물과 3단 화분대들을 치워나갔어요. 마지막으로 필요와 의미로 연결된 로즈메리와 군자란만 남기고 모두 떠나보냈어요.
밖으로 나갔어요. 그제야 주변에 나무와 꽃이 보이더군요. 여기저기를 마구 둘러보았어요. 그러다 보니 사진을 찍고 싶어 졌어요. 사진이라는 사각 프레임에 꽃과 나무와 풍경을 담아보니, 그 모두가 내 마음에 들어왔어요. 한 번 들어온 꽃과 나무와 풍경은 내 마음에 자리를 잡고 나가질 않았어요. 그렇게 마음속에 내 정원이 생겨났던 거예요.
고비도 있었어요. 어느 해 봄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라일락이 향기를 내뿜어서 향기에 취해 다니던 때였어요. 특별하게 향기가 깊은 라일락이 있었지요. 그 향기를 오랫동안 맡고 싶었어요. 그 나뭇가지를 꺾어 집에 갖고 가고 싶어 졌어요. 코가 아니라 손을 델까 말까 하다가 뒤돌아서기를 여러 번 하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러다 바쁜 일이 생겨서 다음다음 날 가보니, 누군가가 내가 손으로 만지작거리던 그 라일락 꽃망울과 꽃이 핀 나뭇가지를 꺾어 갔어요.
어느 날은 동네 가게에 들어갔는데 그 집 탁자에 꺾어온 라일락이 화병에 담겨있었어요. 볼 일도 잊고 그냥 밖으로 나오고 말았지요. 지금은 그 가게 주인과 말도 나누지만, 이상하게도 가까워지지는 않아요.
그때가 내 정원을 다시 작은 주거 공간으로 끌어들일 위험한 때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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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정원을 소유한 부자는 자기 정원을 얼마나 자주 돌볼까요? 얼마나 자주 둘러보기나 할까요? 저택을 유지하고 관리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한데, 정원을 돌볼 시간이 있을까요? 정원을 둘러볼 횟수는 한 해에 몇 번이나 될까요? 아마 저택의 정원을 관리하는 사람이 필요하겠지요. 그 저택의 주인은 땅의 소유주이지만 그 땅에 나고 자라는 꽃과 나무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전속 정원사가 주인일까요?
세상의 꽃과 나무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손에 꼭 쥐고 있는 것이 내 것일까요? 나무와 꽃을 손에 꼭 쥔다거나 어딘가에 잡아둘 수 있다는 건가요?
주인이란 본인을 살게 하는 존재 아닌가요? 나무와 꽃의 주인은 결국 그 나무가 그 꽃이 주인 아닐까요?
꽃과 나무는 주인으로서 움직이는 동물들을 만나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세대를 이어가려는 것이 최종 목적이 아닐까요?
우리 인간도 나비나 벌 같은 매개자의 일종이니 서로 돕는 관계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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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모든 꽃과 나무가 내 정원의 꽃과 나무라고 생각하면, 좋은 것이 많아요.
일단, 엄청난 부자가 된 것 같아요. 그래선지, 마음이 넉넉해져요. 뒷배가 든든하달까요.
슬프거나 고통스러운 일을 겪고 있을 때, 위로를 받아요. 그럴 때는 정원의 외진 곳에서 연약한 싹을 틔우고 가녀린 꽃 한 송이를 어렵게 피워내는 꽃이 도와줘요. 나에게 살라고, 함께 견디며 나가자고, 나를 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해줘요. 내 마음속에서 어떤 것이 손을 잡고 힘을 얻어요.
좋은 일이 있을 때는 화려한 꽃들이, 풍성한 꽃들이, 쭉쭉 가지를 뻗고 자라는 나무가 기쁜 순간을 더욱 빛나게 해 줘서 신이 나요.
마음이 혼란할 때는 잔잔한 호숫가에서 자라는 물풀들이 살며시 부는 바람과 함께 흔들리며 “가만가만, 찬찬히 찬찬히”라고 말해주지요. 일정한 리듬으로 움직이는 풀과 물결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준답니다.
세상의 모든 꽃과 나무들이 있는 곳을 내 정원으로 여길 때는 세상의 모든 꽃과 나무를 함부로 꺾거나 뽑아버릴 생각은 할 수 없을 거예요. 얼마나 귀한 친구들인데요. 그래서 외롭지 않아요.
세상의 모든 꽃과 나무와 그들을 품은 대지를 내 정원이라고 여기면, 이렇게 좋은 것이 많아요. 누구 것을 빼앗는 것도 아니잖아요.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요. 우리는 함께 즐기면 되는 거잖아요. 구체적으로 눈도 즐겁고 코도(아! 알레르기가 있는 분에게는 미안) 행복해지고, 마음마저 풍요로워지는 거잖아요. 이렇게 우리가 조금 더 기쁘고, 조금 더 위로받고, 힘을 내어 행복에 조금은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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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정원의 크기를 줄이고 있어요. 그래야, 자주 가보고, 가서 들여다보면서, 힘내라고 예쁘다고 고맙다고 할 수 있거든요.
정말로 자세하게 보아야 보이고 들리는 것이 있더라고요. 그냥 볼 때는 몰랐는데요, 벌레 먹은 잎도 그 자체로 멋이 있었어요. 예쁜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기운까지 있었고요. 꽃만 예쁜 게 아니었어요. 풀도 나뭇잎도 나무 기둥도 각자만의 묘한 아름다움이 있더라고요. 흐르는 물과 흙도요.
그래서 지금은, 내가 사는 아파트 울타리를 넘어 아랫동네 공원과 윗동네 공원을 지나 산기슭의 한 귀퉁이인 야생화밭과 조그마한 습지까지의 모든 꽃과 나무와 풀이 있는 전체 대지가 저의 정원이랍니다.
그래서 나는 내 집 평수는 알지만, 내 정원의 평수는 모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