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넘어가는
5년 전이라니…….
5년 전 그때를 기억하라고!
그럴 수 없어. 기억하고 싶지 않아.
아! 그런데 …….
5년 전, 그해 늦봄. 그날은 화장실의 세면대 아래로 물이 샜어. 쏴하고 물이 세면대 아래로 쏟아져 내리는데 가슴이 철렁했어. 세면대 아래를 보려고 구부렸는데 일어설 수 없었어. 내 속 무언가가 우르르 무너져 내렸으니까. 쏟아져 내리는 물을 보며 한참을 앉아있었어.
화장실로 들어오기 전까진 담담했어. 기다리던 작은언니의 암 검진 최종 결과, 갑작스러운 발병인데 췌장암 말기라는 진단과 남은 시간이 4개월이라는 것. 그저 모임 통보를 받는 것처럼 들었고, 단지 나는 손을 씻고 싶었을 뿐이었어.
집 밖으로 나가 무작정 걸었어. 그날은 유난히 환했어. 나무는 어린아이 손바닥만 한 나뭇잎을 펼치고 앞으로 뒤로 뒤집으며 사랑스러운 잎사귀를 자랑했어. 햇빛을 받은 고운 연둣빛 잎은 반짝이는 별 같았고. 길바닥에 나뭇잎 그림자가 일렁이고 그 사이사이에 햇살이 금빛으로 부서져 내리고 있었어.
주변이 너무 아름다워 더 가슴이 미어졌어. 엉엉 소리 내며 울며 걸었어. 눈물에 비친 햇빛은 왜 그렇게 몽환적이기까지 한지. 걷다보니 경의선 옆 숲길이었어.
벤치에 앉아서 눈을 감았어. 세상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 전철이 오고 가는 소리, 숲길을 걷는 사람들의 두런두런하는 소리, 함께 산책 나온 강아지들의 짖는 소리, 멀리서 커다란 철심을 땅에 박는 것 같은 투박하고 둔탁한 소리가 들렸어. 어느 순간에는 바람결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도 들었어. 이 세상에 아무도 없듯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던 순간도 있었어.
그러다 멀리서 앰뷸런스 소리가 들렸어. 아주 멀리서 작게 들리더니 점점 가까워져서는 악에 받친 듯 소리쳤어.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그 소리만 영원할 것 같아 무서웠어. 그 소리가 내 몸에 꽉 들이찼어. 기가 막힌 사람처럼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어. 정신을 차려보니 덜컹거리며 지나는 전철 소리만 들릴 뿐이었어.
다른 언니들과는 달리 죽이 잘 맞았던, 작은언니는 그 해 봄을 지나고 여름을 지나고 겨울을 지났어. 그러나 다음해 초봄에, 엄마 같기도 했던 내 언니가 떠났어.
그러나 나는 맘 놓고 울 수 없었어. 치매로 이갑순이라는 이름과 추억을 모두 도둑맞은 어머니께서는 감만은 여전하셨거든. 형제들이 모두 모이면 빙 둘러보시곤 작은언니를 찾듯이 뒤를 더 보곤 하셨어. 어머니께 작은언니가 먼저 떠났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어. 형제들의 암묵적인 약속이었으니까.
난 지금도 잘 모르겠어. 언니가 떠난 후 어머니께서는 일 년 반이라는 시간을 견디시고 가을에 이 세상을 떠나가셨어.
어머니는 일제 식민시절에 자라셨고, 육이오 전쟁을 겪으셔서 그런지 마지막 가실 때는 많이 무서워하셨어. 어린 소녀처럼 해맑고 수줍은 미소를 띠면서도 “무섭다”하셨어.
어머니에게 따스한 말을 할 줄 아는 나이든 딸이 먼저 가서, 당신을 맞이할 거라고 말씀드렸더라면 어떠했을까. 아셨다면 편하게 여행 떠나듯 가실 수 있었을까. 물론 놀람과 슬픔으로 더 힘드셨을 수도.
30대 말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는 울고 슬퍼했어. 그러나 지금 난 울지 않아. 이제 나도 살아갈 날보다 돌아갈 날이 가깝다는 것을 아니까. 잠깐의 이별인 게야. 우리 주변에 각자의 이유로 떨어져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
내가 5년 전을 이렇게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줄은 정말 몰랐어.
왜 크리넥스 티슈 한 통이 필요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고.
울 거야……, 그냥 울고 싶으면 울 거라고.
그리우면……, 그냥 그리워하겠어.
5년이나 지난 지금에야,
내가 작은 언니와 어머니를 보내드릴 수 있게 됐나봐.
어! 내가 청개구리도 아닌데 눈물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