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려내진 건 나였다.
내 지난 시간 속에서 널 도려내고 싶었다.
내 세월의 유일한 흠, 내게 지독한 오점과도 같았던 너를 없애고 싶었다.
너를 걷어내니 추억이 걷어지고
너를 뽑아내니 기억이 뽑아지고
너를 지워내니 내 삶이 지워지고
너를 없애려 했는데
너를 지우면 지울수록 내가 사라지고 있더라
너는 왜 나에게 그리도 깊이 박혀 있었는지, 지울수도 없게 물들어 있었는지
다 버렸나 뒤를 돌아보니 또다시 한가득 밀려오는 너를 보며
나는 그냥 나를 휩쓸려 보내고 말았다.
내 지난 시간 속에서 널 도려내고 싶었다.
도려내진 건 나였다.
나는 사라지고 너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