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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담은 수식

안동 도산서당

by 월하랑


퇴계 이황의 도산서당은 우주를 간결하게 응축시켜 하나의 공간으로 표현한 곳이다. 세 칸의 집과 마당, 연못과 정원, 그리고 주변의 대자연까지, 마치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 이 작은 집에 앉아 있는 백발의 노인에서부터 인 듯 같다. 우주를 담는 것은 크기가 아닌 단순한 수식일 뿐이라는 것을 퇴계는 도산서당에서 말하고 있다.






퇴계는 도산서당을 통해 '3'이라는 숫자를 세 가지 형태로 제시한다. 세 칸의 건물, 세 개의 기능, 세 개의 경관. 숫자 3은 동양철학의 삼재三才사상에서 기원한 것으로 우주와 인간 세계의 기본 구성 요소를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으로 보는 것이다. 3이라는 숫자를 물리적 공간, 비 물리적 기능 그리고 근경과 중경과 원경을 아우르는 시공간에서 표현함으로써 퇴계는 우주의 수식을 완성한다.


도산서당 평면도


세 칸의 단출한 집은 부엌과 방 그리고 마루로 구성된다. 집의 원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세 칸을 퇴계 이황은 자신의 쓰임에 맞게 과감히 변형한다. ‘세 칸’이라는 물리적 형태에 얽매이지 않고 ‘세 개의 공간'이라는 개념에 충실한 건물이 바로 도산서당이다. 부엌을 반 칸 늘이고 들여, 기능은 유지하되 방에 부족한 공간을 보충하고 마루를 뒤와 옆으로 확장하면서도 기둥과 마루를 얇고 가늘게 만들어 과하지 않게 연출한다. 원형에 충실하면서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성은 근본을 꿰뚫었기에 가능하다.


도산서당의 세 개의 기능은 수양修養, 강학講學 그리고 유식遊息이다. 이 세 가지 기능은 방인 완락재와 마루 암서헌이 담당한다. 완락재 단독으로는 수양, 완락재와 암서헌이 함께 쓰일 때는 강학, 그리고 암서헌 단독으로는 유식의 기능을 한다.


도산서당 정면도 (출처: 영남대도면 / 김봉렬(1997), 김동욱(1996)의 논문 참조)



완락재玩樂齋는 누군가에게 작은 한 칸의 방이지만 퇴계에게는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춘 공간이었다. 완락재가 갖춘 것은 서가와 알맞은 창 그리고 건너편 마루이다. 부엌을 반 칸 들여 보충한 공간에 서가를 만들고 1,000여 권의 책을 꽂았다. 그리고 화폭 같은 비율의 창은 도산서당의 문과 일직선을 이룬다. 제자들이 가르침을 얻기 위해 문을 열고 들어오면 화폭 안에 담긴 듯한 퇴계를 볼 수 있다. 만약 창이 아닌 문이었다면 긴 프레임 속에 담길 것이고, 철학과 미학 모두 경지에 오른 퇴계는 무엇이 옳은지 알고 있었다. 건너편 마루가 완락재와 함께 만나면 강학의 장소로 변모한다. 완락재의 퇴계에게서 암서헌의 제자들은 가르침을 얻는다. 이렇게 한 칸의 작은 방에서 퇴계는 필요한 모든 것을 얻었다.





퇴계의 삶


계상정거도 (출처: K옥션)


퇴계의 삶은 말년에 자기 수양을 하면서 제자들을 교육시키고 자연에 기거할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관직은 생계를 위해서였다. 남들 같은 포부는 퇴계의 심성에는 애초에 없는 듯했다. 모두가 왕을 알현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포부를 표명할 때 퇴계는 해야 할 일만 묵묵히 할 뿐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는 이였다. 관직에서의 성공이 삶의 목표가 아닌 퇴계에게 을사사화와 같은 사건은 관직에 회의를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소수서원


그가 관직에 있으면서 그나마 위안을 삼았던 것은 관직과 교육을 겸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이러한 꿈은 후에 소수서원紹修書院을 최초의 사액서원, 즉 나라에서 인정받아 공식적으로 지원받는 서원으로 만들면서 조선의 서원 제도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서원 지원 제도는 조선의 성리학이 꽃을 피우는 근간이 되었지만, 훗날 어느 서원 출신인지로 당파를 가르게 되는 등 정치적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정작 퇴계는 생전 서원을 만든 적이 없다. 소수서원은 퇴계의 마지막 관직 생활이었던 풍기군수 시절, 이전 군수가 만든 백운동 서원을 공식 지원받아 유지될 수 있도록 해놓은 것뿐이다. 자신은 이후 계상서당과 도산서당을 10년씩 운영하며 죽는 날까지 수양과 교육의 삶을 살게 된다.




바위에 기대어


단양팔경 중 도담삼봉島潭三峯


퇴계는 자연을 사랑하였다. 기근이 발생해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강원도 어사로 파견되었을 때도, 백성의 가난을 자신의 탓으로 여기고 스스로 외직을 자처해 단양으로 발령받았을 때도, 퇴계는 틈만 나면 자연을 낱낱이 돌아보곤 했다. 그가 단양의 지방관으로 있으면서 남긴 것이 바로 '단양팔경丹陽八景'이다. 경관이란 퇴계에게 단순한 감상의 대상을 넘어 자신의 철학을 발전시키고 삶을 채워 가는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그런 그에게 암서헌巖棲軒에서의 유식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었다. 유식이란 잠시 쉬는 휴식과 달리 배움에 정진할 수 있는 쉼을 말한다. 모든 서원은 경치 좋은 곳에 입지 하고 높은 누각을 세워 유식의 공간으로 삼는다. 도산서원은 유일하게 누각이 없는 서원이라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곳 바로 암서헌이 도산서원의 누각을 대신한다.


암서헌에 앉아 바라보는 경관은 모든 건축물의 누마루가 그러하듯 조성한 이의 철학을 깊게 느낄 수 있는 장소이다. 암서헌에서 경험할 수 있는 근경, 중경 그리고 원경은 도산서당의 마지막 '3'이자 가장 깊이 있는 세 가지이다. 암서헌 바로 앞마당에는 정사각형의 연못, 정우당淨友塘이 있다. 퇴계는 수많은 시에서 고여 있는 물을 거울에 비유했다. 거울은 자아의 투영이다.


정우당


암서헌 옆을 흐르는 개울을 건너면 퇴계의 정원인 절우사節友社가 있다. 매난국죽梅蘭菊竹의 사군자가 아닌 매송국죽梅菊竹의 사절우는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친구들이다. 자신을 투영하는 거울 곁에 지조와 절개를 지키는 친구들을 둔 것은 외롭게 홀로 학문에 정진하는 것이 아니라 뜻을 함께 하는 친구들과 함께 지조와 절개를 지키는 삶을 살기 위함이 아닐까?


도산서당 앞 하늘을 담은 낙동강


암서헌에서 고개를 들어 멀리 내다보면 낙동강이 흐른다. 도산서당 앞 낙동강가에는 퇴계가 이름 붙여 놓은 좋은 경치들이 여럿 있다. 그중 천광운영대天光雲影臺와 천연대天淵臺는 하늘과 빛 그리고 구름의 그림자를 담은 물을 의미한다. 암서헌 바로 앞에는 자신을 담는 연못을 만들고 저 멀리 하늘, 빛 그리고 구름의 그림자를 담은 강물을 바라본다. 자신을 비추는 연못과, 하늘을 비추는 강물이 서로 대칭을 이룬다. 근경과 원경으로 짜여진 구도 속에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물과 대자연의 이치를 표현하였다. 이 세 칸의 단순한 공간 속에 우주의 원리를 함축시킨 퇴계는 평생 경건함 속에 거하며 만물의 이치를 터득하고자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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