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I_옥산서원 자계
에어컨 있는 시대에 살면서도 여름이면 많은 이들이 계곡과 바다를 찾는다. 시원한 계류에 발만 담가도, 한낮의 치솟는 열기와 숨 막히듯 답답한 공기는 순식간에 사라질듯하다. 이렇게 뜨거운 계절이 오면, 경주 독락당獨樂堂의 자계紫溪가 떠오른다. 깨끗한 물에, 깊이도 적당해서 여름이면 피서객들이 찾는 물놀이 명소이다. 물장구치기 딱 좋은 곳이기에 여름이면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이 당연하건만, 500년 전에 살다 간 주인의 심기가 불편해질까 걱정된다.
퇴계 이황의 스승이자, 조선 성리학 정립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 회재晦齋 이언적은 홀로 즐기는 집이라는 뜻의 독락당에서 살았다. 이언적은 독락당 위 약 600m 부근에서 아래 700m까지 징심대, 탁영대, 관어대, 영귀대, 세심대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곳을 사유화했다. 주변 자연물에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많은 선비들이 즐겨했던 일이다. 하지만 독락당을 중심으로 약 1.5km 정도 내외의 공간에 집중적으로 붙인 이름은 마치 이곳의 고요함을 지키기 위한 조치 같다.
이언적이 죽고 난 후, 제자들은 합심하여 세심대 아래에 옥산서원玉山書院을 세웠다. 생전에 독락당은 ‘옥산정사玉山精舍'라 불리며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다. 정자亭子는 자연 풍경을 즐기기 위해 만든 건축물인데, 정사精舍는 이러한 정자의 기능에다가 교육의 기능을 더한 것을 말한다. 대부분의 서원은 스승이 돌아가신 후, 생전에 제자를 양성하던 곳 옆에 제사를 지낼 사당을 건립하며 위계를 갖춘다. 그중에서도 나라에서 정식으로 인정받는 서원을 특히 사액서원賜額書院*이라고 한다. 옥산서원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원이 되어 201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9개의 서원 중 하나가 되었다.
*사액서원賜額書院: 임금이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내린 서원. 흔히 서적, 토지, 노비 등도 동시에 하사하였으며, 조선 명종 때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 서원에 ‘소수 서원’이라 사액한 것이 시초이다.
옥산서원의 독특한 점은 서원을 가로지르는 물길이다. 독락당 앞을 흐르는 물이 서원 안으로 들어가게 된 것은 특별한 상징성을 갖는다. 옥사정사에서 시작된 이언적의 가르침을 서원으로 이어간다는 의미, 그리고 자계에 이름 붙여진 이언적의 사상과 철학을 이어간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상징이 무색하게 지금 서원의 물길은 콘크리트 옹벽으로 자계와 분리되었다. 서원의 물길엔 쓰레기가 떠다니며, 이 물길을 건너는 다리는 회반죽에 옹졸한 돌을 몇 개 박아놓은 전통 양식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어쩌다가 서원으로 이어지는 물길을 콘크리트 옹벽으로 막아버리고, 수로의 다리와 계단이 궁색해졌는지 알 수 없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이렇게 관리되어도 되는지 부끄럽고 안타깝다.
독락당 계정 아래 관어대觀魚臺는 정자에 앉아 물고기를 바라보기에 좋은 곳이기도 하기만 진짜 의미는 장자의 추수秋水편에 나오는 물고기 우화이다.
장자가 혜자와 함께 호수의 다리 위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장자: 피라미가 나와서 한가롭게 놀고 있으니, 이것이 물고기들의 즐거움이겠지
혜자: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있나?
장자: 자네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혜자: 나는 자네가 아니니까 물론 자네를 모르지. 그렇다면 자네도 물고기가 아니니까 자네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확실한 일이지
장자: 자 처음으로 돌아가보세, 자네는 나더러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있느냐고 했지.
이 말은 자네가 이미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안다는 것을 알고 물은 것이네, 나는 호숫가에서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있네.
출처_ 열려 있음의 미학 : 하이데거와 장자의 비교를 중심으로 / 이선일 / 한국현상학회 / 철학과 현상학 연구 제19집 / 2002.11 / p201
두 현자의 심오한 대화는 다양한 생각을 끌어낸다. 아리송한 대화의 뜻을 몇 년 동안 곱씹어 봤을 때, 혜자는 사물에 진리가 있다고 보고, 장자는 사물에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닌 자신의 생각하는 바가 사물에 투영될 뿐이라는 것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과연 이언적은 계정에 앉아 물고기를 보며 어떤 해석을 했을지 들어보고 싶다.
자계에 이름 붙여진 장자와 혜자의 관어대觀魚臺, 공자와 증점의 영귀대詠歸臺, 그리고 굴원의 탁영대濯纓臺는 이언적이 자신의 삶에 담고자 한 인생의 화두이다. 끝없이 사유하는 철학자의 정원은 대단한 장식이 아닌 자연 그대로에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 만족한 듯 보인다. 그러나 자연 계류 같아 보이는 자계는 이언적이 곳곳에 인위적으로 손을 대어 완성한 정원이다.
이언적은 자연을 더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인위적으로 돌을 깎고, 옮기고, 파고, 쌓았다. 하지만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인위적인 정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것이 한국 정원의 특징이다. 자연을 증폭시켜 극대화하는 것. 자연스러움의 경지는 조선의 백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투박한 맛의 아름다움을 우리는 정원에서도 맛볼 수 있다.
자연이 증폭되도록 인위적으로 손을 댄 것은 자연일까? 인공일까? 자연을 사유화하는 것, 인위적으로 자연을 증폭시키는 것, 어렵고 심오한 철학들을 뒤로한 채, 자계의 깨끗한 물을 감상하며 어지럽고, 시끄러운 생각들을 씻어낸다. 자계와 같은 자연 속에 거하다 보면, 마음은 자연스레 경건해지고, 마침내 이치를 깨달을 수 있을 것 같다. 성리학의 학문수양법인 거경궁리居敬窮理가 여전히 흐르는 곳, 경주 이언적의 철학과 사상의 정원, 자계의 여름은 투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