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부석사
부석사로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좁고 긴 길에 오르는 것을 수련의 한 과정이라 여긴다. 마침내 배흘림기둥의 무량수전에 도착한다. 소박하고 작은 건축물 앞에 펼쳐지는 산맥의 향연은 무색계의 깨달음에 이른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공무변처지(空無邊處地) 허공은 무한하다고 체득하는 경지
식무변처지(識無邊處地) 마음의 작용은 무한하다고 체득하는 경지
무소유처지(無所有處地) 존재하는 것은 없다고 체득하는 경지
비상비비상처지(非想非非想處地)
마침내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
(출처: 대순회보 144권 / 불지형체(佛之形體)에 대한 일고찰<1부> / 류병무)
끝없어 보이는 산 위, 하늘의 허공은 무한하다. 무한한 허공이 담기는 마음은 존재를 없애고, 마침내 생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지에 이른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경지, 무색계無色界의 경지이다.
오르는 것 만으로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게 만드는 이곳에 사찰의 터를 잡은 것은 의상대사다. 이전까지 왕궁 근처 평지에 조성되었던 사찰과 달리 통일신라의 사찰들은 산으로 들어간다.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 사찰의 정식명칭은 '산사山寺, 한국의 산지승원僧院·僧園'이다. 한국 사찰의 고유성을 산에 있는 사찰로 본 것이다.
서양의 성당은 압도적으로 높은 천장을 통해 신의 존재를 느끼게 했다면, 한국의 사찰은 겹쳐진 능선들 속에서 아득함을 느끼며 겸허함을 불러일으킨다. 부석사의 무량수전이 특히 소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앞에 펼쳐진 능선 때문이다. 만약 스케일이 크거나 화려한 건축물이 자리했다면 자연과 대립되었을 것이다. 오히려 소박하면서도 여백이 있는 건축물의 넉넉함이 이토록 아득한 산세가 들어설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안양루 앞에 펼쳐진 장관만큼이나 두 눈에 모두 담기지 않고 끝없이 펼쳐지는 한 편의 작품이 있으니 바로 부석사의 석축이다. 좁고 긴 일주문에서 무량수전까지 이어지는 공간의 흐름에 이와 같은 형식의 석축이 아니었다면 부석사의 품위는 달라졌을 것이다.
투박한 부정형의 자연암석으로 만들어진 석축의 높이는 2.5~3m가량이다. 그렇다면 암석의 크기는 대략 50cm~1m 내외로 추정할 수 있다. 가장 큰 암석을 아래에 받치고 위로 갈수록 작은 암석을 쌓는 일반적인 석축과 달리, 가장 큰 암석들이 대체로 중간에 배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육중한 암석의 투박스러운 모습에서 돌의 기운이 느껴진다. 큰 암석들을 살펴보던 시선이 갑자기 작은 돌에 빼앗긴다. 큰 암석의 힘에 작은 돌의 섬세함이 더해진다. 돌 사이를 흐르는 자연스러운 선은 작은 돌의 정교함에 있었다. 부석사의 석축은 자연인가? 인공인가? 자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정교하고 인공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자연스럽다.
석축 공사는 돌을 얼마나 정교하게 깎을 수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조선 초까지만 해도 위로 갈수록 작은 돌을 쌓는 단순한 형태의 석축 쌓기 기술이, 조선 후기에야 비로소 자연돌을 일정한 크기의 정방형으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조선 후기 한양도성과 수원화성에서 경사지지 않은 직각의 석축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석축이 후대의 기술을 뛰어넘는다.
큰 돌을 아래에 쌓는 것은 석축의 안정성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리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부석사의 석축은 가장 큰 돌을 맨 밑이 아닌 중간 높이에 배치시켰다. 큰 돌들을 이어주는 작은 돌 중에는 7개의 돌과 만나면서도 모든 선이 정교하게 맞아떨어지는 것도 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멀리 떨어져서 석축을 바라보았을 때다. 큰 돌의 크기는 조금 작은 것도 있고 조금 큰 것도 있다. 제각각인 돌들의 배치가 어느 한 곳에 치우쳐져 있지 않다. 마치 전체 윤곽을 짠 후 돌이 배치된 것처럼 보인다.
한국의 사찰, 산사의 길은 단순한 길이 아니다. 불교의 세계관을 옮겨 놓은 길이다. 인간 세계에서 세상의 중심이라 여겨지는 수미산까지 향수해라는 바다와 7개의 산맥을 건너야 한다. 수미산의 정상과 그 위의 세계는 욕망에서 벗어나 무아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사찰의 입구를 뜻하는 일주문은 수미산 입구에 도달한 것이고, 사천왕문, 불이문, 마침내 대웅전에 이르는 것이 바로 이를 공간적으로 체험하는 방법이다. 욕망과 육체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정상에 오르는 과정은 지난하다. 그 지난한 과정 중에 부석사 석축이 있다.
광활한 산맥을 품은 소박한 무량수전처럼 거석들 사이의 작은 돌이 석축을 완성한다. 무량수전 앞, 안양루에서 펼쳐지는 장관은 자연의 웅장함 속에 인간의 존재를 가벼운 티끌이 되게 한다. 가파른 길과 닮은 인생의 고난이 내뱉는 숨 가쁜 허덕임은 탄성이 되어 산맥 어딘가로 날아가버린다.
깨달음에 이른 사람의 공간에 가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남아 있는 기운이 있다. 천년의 돌과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을 가슴에 품고 무아無我의 경지 즉, 허공은 무한하다고 체득하는 경지, 마음의 작용은 무한하다고 체득하는 경지, 존재하는 것은 없다고 체득하는 경지, 마침내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가 무엇인지 느껴보자.
한국정원의 가치를 전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정원의 아름다움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쓰고 말합니다. 언젠가 많은 사람들이 한국 정원에서 우리 문화를 느끼고, 해외에서 온 여행객의 일정표에 우리 정원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정원 문화가 널리 알려지길 바랍니다.
달빛 아래 너랑 나랑, 월하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