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월하랑 Sep 05. 2023

야경에 가려진 신라의 정원

경주 동궁東宮과 월지月池

경주 동궁東宮과 월지月池

돌 전문가가 되고 싶었다. 돌의 형태와 질감만 보면 어느 지방의 것인지 어떻게 사용할 때 가장 쓰임이 좋은지를 단번에 알아보는 전문가가 되고 싶었다.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문화유산 답사를 하면서 이러한 꿈을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 날 정말 돌 전문가를 만나게 되었고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월지에 가면 천 개의 돌이 있는데, 그 돌을 유심히 살펴보세요. 어떤 이치를 깨닫게 된다면 장인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최고의 돌 전문가는 신라시대의 장인이며 그보다 돌을 잘 놓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가 그가 덧붙인 말이다. 월지는 이전에도 몇 번 가 보았지만 돌을 유심히 본 적은 없었다. 경주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월지를 찾았다.


출처: 문화재청


삼국통일의 염원


신라의 왕궁을 월성이라 부른다. 성의 모양이 반달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양의 모든 성에는 동쪽에 장차 왕위를 이어갈 세자의 궁인 동궁이 있다. 월지는 동궁 앞에 만든 정원이다. 본래 하나의 공간이었던 월성과 동궁은 일제강점기에 의도적으로 큰 도로를 가로지르게 하여 나뉘었다. 나중에 월성이 모두 복원된다면 가로지르는 길은 없애고 동궁과 붙여 원래 모습을 되찾길 바란다.


우리는 보통 건물을 먼저, 정원을 나중에 짓는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의 정원은 반대이다. 특히, 동궁과 월지는 정원을 먼저 조성하고 5년 후에 건물을 지어 완성했다. 정원이 만들어진 것은 674년이다. 신라는 670년부터 한반도로부터 당을 물리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이미 백제와 고구려를 정복했지만 당을 물리치지 않으면 완전한 승리라 할 수 없었다. 당을 물리친다 하더라도 세 나라가 하나의 국가라는 인식을 갖지 못하면 실패한 통일일 수밖에 없었다. 완전한 통일을 기원하며 신라는 월지를 조성한다. 국가의 동력을 전쟁에 모두 집중해도 모자랄 때에 정원을 만든 것은, 월지가 단순한 동궁의 정원이 아닌 통일을 염원하는 뜻의 정원이었기 때문이다. 월지 연못의 세 개의 섬은 각각 고구려, 백제, 신라를 표현한 것 같다. 북쪽의 중간 크기의 섬은 고구려, 서쪽 자그마한 섬은 백제, 남쪽의 거대한 섬은 신라를 상징한다고 보면 세 나라는 하나이며 당을 물리치기 위해 모두 힘을 합친 모양새다.


월지의 수조


월지로 입수되는 물은 주술적 힘이 담겨 있다. 거대한 통돌을 동물의 뼈처럼 깎아놓은 두 단의 수조는 월지의 동남쪽에 있다. 윗 수조에는 지금은 없지만 아마도 용이나 거북이 머리가 끼워져 있었을 것 같은 홈이 파여 있다. 용의 입에서 나온 물은 아래 수조로 들어간 후 인위적으로 만든 계류를 지나 두 단의 폭포로 떨어진다. 이렇게나 큰 수조를 하나의 돌로 만들 수 있는 신라인의 기술이 놀랍다. 물속에 잠겨 있는 수조를 자세히 보면 큰 돌판에 U자 형태의 통돌이 두 겹으로 겹쳐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돌과 돌의 얼개를 맞춰 끼우는 형식은 분황사의 기단, 불국사의 석단에서도 볼 수 있는 신라 고유의 기법이다. 신라인들이 얼마나 돌을 자유자재로 깎을 수 있었는지 경주의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분황사 기단과 불국사 가구식 석축


특별한 수조를 지나온 물은 정기를 담게 된다. 물은 흐르고 흘러 북쪽으로 나간다. 마치 당이 북으로 다시 돌아가는 모양이다. 완전한 삼국통일을 기원하며 월지가 완성되고, 2년 뒤 신라는 꿈을 이룬다.







천 개의 돌


임해전에서 정원을 바라보았다. 전에 왔을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돌들이 보였다. 동궁과 월지는 야경으로 유명하다. 저녁의 조명은 건축물과 나무를 향할 뿐 물가의 돌들은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았다. 정원을 통과하는 길도 물가에서 한참 떨어져 있어서 연못의 가장자리를 장식하는 돌들을 볼 수 없었다. 이번에 월지를 온 것은 오직 돌을 보기 위해서였다. 천 개의 돌들을 가까이에서 관찰했다.


월지의 돌


돌은 개별적으로 놓인 것이 아니었다. 모두 어떠한 군락에 속해 있었다. 뒤에서 봤을 때 하나의 군락이라고 여겨졌던 것이 옆에서 보면 구도를 달리하여 조금 떨어져 있는 돌을 끌어와 균형을 맞추었다. 단순한 돌의 배치가 아니라 돌들 사이의 관계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한 치밀한 계획이었다. 신라인들은 돌을 깎는 것에만 전문가가 아니었다. 돌을 놓는 것에서도 그랬다.


돌의 군락들을 계속 보니 전체를 아우르는 한 가지 특징이 느껴졌다. 정원의 지형은 물가에서부터 뒤로 갈수록 조금씩 경사져 있다. 물가에 가장 가까운 돌들은 대부분 누워 있는 모습이다. 납작한 돌도 많다. 납작한 돌 뒤의 돌들은 아주 조금 세워져 있다. 그 뒤의 돌은 조금 더 세워져 있다. 결국 가장 뒤쪽에 있는 돌들은 거의 서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 각도가 90도를 넘어 쏟아질 것 같은 돌은 하나도 없다. 모두 땅에서 굳건히 일어서 안정감 있는 모습이다. 모든 돌은 앞쪽보다는 일어서지만 뒤쪽보다는 누워 있는 위계를 거스르지 않는다. 이러한 법칙이 천 개의 돌에서 보이는 공통적인 특징이다.



그냥 자연스럽게 돌을 놓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교토 도후쿠지의 시게모리 미레이의 작품을 보면 한국의 특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의 돌 놓는 법은 앞에서 말한 특징을 모두 거스르는 배치 구조이다.


도후쿠지東福寺 시게모리 미레이 정원


너무 길어 도저히 세울 수 없는 돌을 제외하고는 모든 돌이 거의 90도의 각도로 꼿꼿하게 서있거나 덮치는 듯한 모양이다. 도후쿠지의 암석들은 무자비한 자연에 대한 공포감을 느끼게 한다. 일본인에게 자연은 위태롭고 삶을 덮치는 대상이었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태도를 정원에서 표현해 낸 시게모리 미레이의 작품은 잔잔한 물결 위에 언제 인간의 삶을 집어삼킬지 모르는 자연과 공존하는 인간의 삶을 표현하였다. 그의 작품이 만들어낸 고요한 공간의 강인한 에너지는 자연의 순환 속에 찰나를 살다가는 인간의 존재를 생각해보게 했다.



돌에도 얼굴이 있다는 것을 월지에서 알았다. 돌의 어떤 면이 세워져야 할지, 땅에 닿아 눕혀져야 할지 신라인들은 알고 있었다. 지형의 경사와 어느 방향에서 보이느냐를 계산해 돌의 간격과 기울기의 리듬을 달리했다. 월지의 돌은 서로의 관계 속에서 아름다움이 완성된다. 상대적으로 크고 육중한 돌도 다른 돌들을 아우르는 듯하고 작은 돌들도 큰 돌을 받쳐주는 듯하다. 조화를 이루는 천 개의 돌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돌과 돌 사이의 관계성이 보인다. 관계가 없다면 아름답지 못할 돌들이다. 돌 만의 아름다움이 아닌, 돌 사이 공간의 아름다움에 눈이 간다. 계속 보고 있으면 아까는 놓쳤던 다른 돌과의 관계가 다시 눈에 들어온다.


정원을 연구하면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들은 모두 돌이었다. 특히 부석사의 석축과 월지의 돌을 본 후 이 오래된 돌들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아무도 월지에 돌을 보러 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 전 세계인이 경주에 가서 월지의 돌사이 공간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한국정원의 가치를 전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정원의 아름다움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쓰고  말합니다. 언젠가 많은 사람들이 한국 정원에서 우리 문화를 느끼고, 해외에서 온 여행객의 일정표에 우리 정원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정원 문화가 널리 알려지길 바랍니다.


달빛 아래 너랑 나랑, 월하랑


월하랑 인스타

이전 04화 볼품없는 이의 정원이 한국 대표 정원이 되기까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