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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하랑 Sep 21. 2023

무심한 구름들 사이로 날아다니는 새들

구례 운조루 雲鳥樓

'산 골짜기에서 피어오르는 무심한 구름들 사이로 지저귀던 새들이 날기 지쳐 둥지로 돌아온다.'

도연명 [귀거래사歸去來辭]


삶의 문제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대부분 무심한 구름들처럼 실체가 없다. 앞이 보이지 않는 구름 사이를 날아다니는 새들은 지쳐 둥지로 돌아온다. 그렇게 우리는 구름과 둥지 사이를 오가는 존재이다. 부디 삶의 무심한 구름을 너무 두려워하지 않기를, 날기 지쳐 돌아온 둥지가 포근하기를 바랐던 집, 운조루雲鳥樓이다.



날다 지친 새를 위한 집



많은 민가를 다니면서 오래전 돌아가신 집주인의 성품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이 신기했다. 언뜻 보면 비슷하지만 건물의 배치와 높이, 때론 사소해 보이는 문의 방향과 동선을 유심히 관찰하다 보면 가문의 분위기, 주인의 성향을 짐작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은 사랑채의 누마루이다. 사랑채 누마루에 앉았을 때의 시선은 주인의 가치관이며, 밖에서 보이는 누마루의 모습은 주인이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보이고자 하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날다 지친 새를 위한 집을 만들고자 했던 류이주는 여느 사랑채의 누마루와 달리 대문을 열었을 때 시선이 바로 자신을 향하는 것을 피했다. 대문을 열자마자 관목 내지는 초화로 꾸며진 작은 정원이 손님의 시선을 빼앗는다. 그리고 대문에서 가장 먼 곳에 누마루를 두었다. 운조루는 누마루를 부각하는 건축 설계언어를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다.


낙선재 (출처: 문화재청)


명재고택 사랑채




누마루를 부각시키는 방법은 먼저, 사랑채에서 누마루를 'ㄱ'자 형태로 빼내는 것이다. 낙선재처럼 누마루를 한 칸 더 지어 건물 자체가 'ㄱ'자가 되게 하는 방법도 있고, 혹은 명재고택 사랑채처럼 나머지 방들을 들여놓아 누마루가 상대적으로 나와 보이게 만드는 방법도 있다. 그리고 사랑채의 창호를 좀 더 화려하게 장식한다. 기본적으로 누마루의 창호는 평소에 활짝 열어두어 시야를 많이 확보하기 위해 큰 편이고, 그 위에 현판을 두어 장식하면 더욱 부각된다. 마지막으로 바깥 대문의 위치이다. 대문을 열자마자 사랑채가 한눈에 들어오게 배치하여 주인을 부각한다. 운조루는 누마루를 상대적으로 빼지도 않았고, 창호는 아예 없으며, 대문을 열면 다양한 것들이 시선을 빼앗아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운조루는 이렇게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설계 언어를 의도적으로 뺐다. 그 이유는 사랑채 누마루에 앉은 자신의 존재가 부각되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다.


    

누마루에서 보이는 오봉산과 위성류


누마루에 앉은 주인의 시선은 서쪽 담장가 한 구석, 집의 귀퉁이다. 운조루를 그림으로 그려놓은 '전라구례오미동가도全羅九禮五美洞家圖'에는 담장 아래 구석진 곳을 바라보는 주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매화와 학이 노니는 것을 바라보는 주인의 시선은 애써 다른 곳을 일부러 피하는 듯하다. 누마루 앞에는 위성류를 심어 놓았다. 중국을 다녀온 친구에게 선물 받은 위성류는 중국 원산으로 생김새가 귀신이 머리를 흩날리는 듯하는 모습이다. 신선이 사는 듯한 선계를 표현하는 학과 당나귀가 어울려 현세가 아닌 분위기를 불러온다. 운조루는 누마루를 부각하지는 않되, 앞과 뒤로 예쁜 정원이 둘러싸이게 만들었다. 빨간 꽃이 핀 초화와 괴석으로 가득 채운 사랑채 정원은 아늑하고 평온하다.




동쪽 담장가 귀퉁이에는 이 집의 또 다른 주인이 등장한다. 농월헌弄月軒이라 불리는 또 다른 누마루는 곳간과 부엌 바로 옆에 있어 류이주의 어머니 내지는 부인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혹은 류이주의 4대손인 류견룡의 호가 농월弄月이라는 점으로 봤을 때 장차 가문을 이끌어갈 아들일 수도 있겠다. 알 수 없는 또 다른 주인이 누구 건 오른쪽 담장가의 괴석 3개로 장식된 작은 정원과 동쪽의 샛문은 류이주의 배려심을 느끼게 해 준다.





안동에서 구례로 대이주


류이주는 원래 안동사람이었다. 20대 후반에 무과에 급제한 후 40대 중반에 낙안 군수를 역임하였다. 그가 50이 되던 해에 안동의 식솔들을 모두 이끌고 구례의 운조루에서 살기 시작했다. 조선시대에 완전히 새로운 지역에 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큰 모험이었을 텐데 어쩌면 무모해 보이는 일을 감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막 무과에 급제하여 중앙정치 무대로 들어갔을 때에 조선사회를 뒤흔든 책이 출간되었다. 선비들 사이에서 큰 화젯거리였던 이중환의 '택리지'는 당시 사화와 당쟁으로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 수많은 양반들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안하는 책이었다. 몰락한 양반들, 혹은 언제 몰락할지 몰라 두려움에 떠는 양반들에게 택리지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지역별로 좋은 거처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했다.


마침 낙안군수를 역임하며 전라도에 살던 류이주는 '택리지'에서 말하는 전라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 구만촌을 방문했다. 지금의 구례인 옛 구만촌은 뛰어난 경치가 있고, 비옥한 토지가 있으며, 강가에 바짝 접하여 소금과 생선으로 이익을 낼 수 있는 뱃길까지 있어 가장 살만한 곳, 명촌名村이라 했다. 구만촌을 방문한 류이주의 눈앞에는 드넓은 평야와 마을을 감싸는 섬진강, 아늑하고 듬직한 오봉산과 노고단이 있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중환이 꼽은 명촌으로 대이주를 할 만큼 택리지를 좋아했던 류이주는 택리지가 말하는 살기 좋은 곳의 4가지 조건에 충실하고 싶었다. 풍수도 좋고, 경제적으로도 윤택하며, 훌륭한 경치를 갖춘 운조루에 남은 마지막 조건은 바로 인심이었다.


대문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부엌문을 열면 타인능해他人能解라 적힌 쌀독이 있다. 배고픈 이웃 누구든 와서 쌀독을 열어 가져가라는 뜻이다. 그토록 사랑채 누마루가 눈에 띄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은, 그리고 그의 시선이 담장 구석진 곳으로 향하고 있는 것은 살기 힘들어진 이웃을 위함이었다. 살다 지친 누군가가 운조루 주인이 베푼 넉넉한 인심으로 다시금 살아갈 힘을 얻게 되길 바랐다. 그렇게 운조루는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언급한 4가지 조건, 지리, 생리, 인심, 산수를 모두 이룬다. 남한의 3대 길지이며, 신이 금반지를 토해놓은 명국터이고, 땅속에서 거북모양의 바위가 나온 곳이라는 명성이 아니더라도 운조루는 충분히 뜻을 이룬 집이었다.



류이주 친영 (출처: 서울신문)


구례 유물전시관에 가면 할아버지가 되어 누마루에 앉아 어린 아기를 안고 있는 류이주를 볼 수 있다. 아이를 보살피며 감싸 안은 모습이 운조루를 아늑하게 두르고 있는 지리산, 오봉산과 닮았다. 누마루에 앉아 눈에 담던 산을 그는 어느새 닮게 되었다. 사람은 매일 무엇을 보며 사는지에 영향을 받는다. 무엇을 담으며 살고 있는지, 무엇을 담으며 살고 싶은지, 그리고 애써 시선을 둘 곳과 시선을 피해 줘야 할 곳을 따뜻한 둥지와 같은 삶이 되기를 바래보며 생각해 본다.





한국정원의 가치를 전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정원의 아름다움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쓰고  말합니다. 언젠가 많은 사람들이 한국 정원에서 우리 문화를 느끼고, 해외에서 온 여행객의 일정표에 우리 정원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정원 문화가 널리 알려지길 바랍니다.


달빛 아래 너랑 나랑, 월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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