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Zone of Interest's garden
*스포일러 주의
활짝 핀 다알리아 꽃이 화면을 한가득 채운다. 여느 다알리아와 같이 아름답다. 아름다워서 기괴해 보이고, 공포스러우며, 추하다. 저 꽃은 무언가를 가리기 위해 존재하며, 누군가의 짓밟힌 생명으로 자라났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 학살을 관리하는 행정관의 집을 담은 영화다. 절규하는 사람들 바로 옆에서 태연하게 삶을 영위하는 자들을 비추며 학살의 잔혹성을 간접적이지만,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들의 집에는 수영장과 텃밭, 그리고 온실이 있는 정원이 있다. 루돌프의 부인 헤트비히는 황무지였던 공간을 아름다운 정원으로 탈바꿈시킨 것에 뿌듯해한다. 갓난쟁이 아이에게 활짝 핀 장미와 다알리아 꽃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면서 동시에 집안일을 돕는 하인에게 ‘너 같은 것은 어렵지 않게 재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의 정원은 양면적이다.
정원은 사각형으로 가운데는 수영장이 있다. 정원의 네 면의 배경은 모두 다르다. 왼쪽의 집을 기준으로 맞은편에는 소각장이 있다. 사람을 태우는 냄새가 정기적으로 주변을 감싼다. 낮에는 냄새로 수많은 이들의 죽음을 느끼고, 저녁에는 고요히 소각로의 존재가 더해진다. 모두가 잠든 밤, 커튼을 걷으면 소각로의 불빛과 소리가 들려온다.
정원의 다른 쪽 면은 수용소와 면해있다. 수영장과 수용소가 한 화면에 담긴다. 헤트비히는 수용소가 보기 싫어 이를 가릴 포도가 빨리 자라길 기다리고 있다. 수영장의 아래쪽에는 온실이 있다. 수영장과 온실이 한 화면에 잡힌다. 온실 위로 기차가 연기를 내뿜으며 지나간다. '쉰들러리스트'에서 보았던 기차칸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떠오른다.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더위에 지쳐 죽어가던 사람들의 모습이 기차의 연기만으로 그려진다. 수영하는 사람들과 더위에 죽어가는 사람들이 대비된다. 온실의 식물만도 못한 기차의 사람들의 모습이 동시에 보인다. 내면에 떠오르는 이미지와 눈앞에 보이는 이미지가 겹쳐진다.
정원에 꽃들이 활짝 펴있다. 재로 거름을 주는 정원사의 모습이 보인다. 앞서 말한 '누군가를 짓밟은 생명으로 꽃을 피운 다알리아'는 수식어가 아니다. 정말로 사람을 태운 재로 키운 꽃이다. 화면을 꽃으로 가득 채우고 똑바로 보라고 주문한다. 아름답게 활짝 핀 다알라이를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에 죄책감이 든다. 다알리아의 꽃잎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살려달라고 내뻗는 손이 보인다. 정원에서 보이는 것은 꽃이지만, 정작 느껴지는 것은 꽃을 제외한 것들이다.
실제 이 집의 정원사였던 사람의 증언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복원한 모습이라고 한다. 울타리 안에서 철저히 주변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며 만든 정원이다. 하지만 정원은 사람이 타는 냄새와 울부짖는 소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정원이 제공하는 시각은 청각과 후각에 의해 왜곡되어 보인다.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불태워지는 곳 바로 옆에서 일상을 살아내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내면을 곪게 한다. 아빠와 낚시를 떠난 강에는 시체를 태운 재가 떠내려오고, 길에서 주운 금이빨로 공기놀이를 하며, 온실에 동생을 가둬놓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즐겁게 감상한다. 곪아가는 아이들의 유년시절과 상관없이 루돌프가 승진을 하여 다른 지역으로 발령을 받았지만 헤트비히는 떠나길 거부한다. 꿈에 그리던 삶을 드디어 이뤘는데 떠날 수 없다는 헤트비히는 좋은 집과, 정원, 하인과, 언제든 손쉽게 얻는 옷들과 화장품에 만족한다. 회스 가족의 삶을 보며 경멸감이 들지만 영화는 홀로코스터 주제의 영화를 여가로 감상하는 우리 자신을 비춘다. 영화는 루돌프가 다시 아우슈비츠로 발령이 나서 돌아가게 됐다는 소식을 전한 후, 계단에서 구토하는 모습과 함께 끝난다. 돌아가는 것을 생각하니 역겨워진 것인지, 자기 스스로가 역겹다고 여겨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토하던 그가 갑자기 우리를 바라보는 장면에서 관객은 영화관에 앉아 있는 스스로를 바라보게 된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정원은 끔찍한 주변환경과의 철저한 단절 속에서 회스 가족의 욕망을 드러낸다. 하지만 스며드는 냄새처럼 그들의 삶에 은은히 퍼져있는 학살의 언어는 피할 수 없다. 끔찍한 욕망의 언어는 정원의 단순하고 평범한 구성 속에서 그들의 행복이 더할수록, 꽃이 아름다울수록 잔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