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핸드 워시에 물을 좀 부어 바닥까지 긁어쓰는 중이다. 펌프를 누를때 점점 공기 소리가 섞이며 허전해지는 사용감이 작년 말부터 쓰던 500ml 짜리 거대 핸드워시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음을 기쁘게 알린다. 이쯤 되니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몇 년 전부터 가끔 생각이 나던 내 오랜 궁금증이다. 신라호텔 사장인 이부진씨는 거의 다 쓴 샴푸의 끝 부분을 꺼내 쓰기 위해 샴푸통을 뒤집어 놓을까? 천년의 미스터리인 것이다.
물론 샴푸가 바닥이 나는 상황이 그녀의 인생에서 애초에 발생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재력으로 미루어보아, 샴푸가 떨어지기 전 다시 채워놓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샴푸 전문 인력이 아마도 두세 명 정도 그 집에서 근무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만약 그녀가 이 통을 마지막으로 다른 샴푸를 쓰고 싶어진다면? 또는 샴푸를 한 통 한 통 바꿔 쓰는 소소한 재미를 선호하는 성격이라면?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러한 상황에 처했을 경우라면?
인간이라면 응당 할 수 밖에 없게 돼 있는 본능적인 행위들이 있다. 요플레 뚜껑 핥기, 뽁뽁이 터뜨리기, 다 먹은 과자 봉지를 딱지 모양으로 접어놓기 등.. 별 이유 없는 것들이지만 자연스럽게 하게되는 이 행동들이야말로 당위와 논리에서 자유롭다는 점에서 짙은 인간성을 띠고 있다. 귀중한 요거트가 잔뜩 묻은 요플레 뚜껑을 쿨하게 버리는 인간이 있다면 그 차가움과 비인간성에 주변 사람들은 모두 놀라 두려움에 벌벌 떨게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다 써가는 로션이나 샴푸 통을 뒤집어 두는 일은 그중에서도 백미다. 얼마 안 남은 내용물 정도야 그냥 버려도 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한정된 자원을 최대한 누리기 위해 중력을 이용하는 이 방법은 상당히 간단하면서도 낭비를 줄인다는 점에서 생산적이다. 이 방법을 한번 사용해 본 사람이라면 그 중독성으로 인해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소문도 있다. 이렇게 인류의 진화와 함께해온 샴집기 덕분에 대부분 샴푸들은 마지막이 물구나무서기 행이라는 숙명을 엄숙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분리수거를 위해서도 이는 중요한 행위다. 분리수거로 내놓기 위해서는 통을 닦아야 하는데, 단순히 우유팩을 물로 헹궈 버리는 것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다 먹은 우유는 쓸 일이 없지만 마지막 남은 샴푸는 물과 섞임으로서 1회(혹은 2, 3회)분의 머리감기에 충분한 역량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내부를 닦아야 하는 경우라면 마지막엔 물로 헹궈서 머리를 감는 데 써버리는 것으로 환경보호에까지 일조할 수 있으니 욕실의 고상한 분위기를 다소 흐릴 수 있다는 점 빼고는 안 할 이유가 없다.
정리하자면 샴푸 뒤집어 놓기는 절약의 차원이라기 보다는 상식적인 차원에서의 물건의 사용 양식에 가깝다. 하지만, 돈이 비상식적으로 많은 사람은 과연 이런 샴푸 영끌 행위를 할 것인가. 부자들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별 짓을 다 한다는데, 부진씨는 샴푸를 뒤집을 시간을 아껴 돈을 벌 생각을 하는 데 쓸 것인가. 가진 걸 아껴쓸 필요 없는 부자이자, 효율을 중시하는 사업가이자, 알뜰하게 집안을 지키는 엄마인 이부진 선생의 선택이 궁금하다. 답을 아시는 분은 어떤 방식으로든 연락을 꼭 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