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돈으로는 올 수 없는 곳

어색한 나라의 미나

by 서울월매

미나는 자기 돈으로는 좀처럼 올 수 없는 곳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표정을 연습하고 있다. 그녀는 고급 호텔 스포츠 클럽의 회원이다. 남편이 지인의 추천으로 가입해 얻은 법인 회원권 덕분이다. 이 사실은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아도 됐고, 대부분의 경우 말할 필요도 없었다. 중요한 건,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자연스럽게 보이는 일이었다. 미나는 이 회원제 클럽의 일원이라는 것이 자못 자랑스러웠다. 남편의 벌이나 두 사람의 생활수준은 대단치 않았지만,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한 뒤 가운을 입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는 여자들 사이에 서 있으면 자신도 고급 사교클럽에 다니는 사모님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클럽에 온 지 두 달째인 미나는 이제 락커룸의 동선을 거의 외우다시피 했다. 수건은 크기별로 가지런히 접혀 있었고, 젖은 수영복을 담아가라는 비닐 봉투는 아무렇게나 집어 들어도 될 만큼 넉넉했다. 파우더룸의 칸칸이 나뉜 화장대마다 다이슨 드라이기와 고급 기초화장품이 놓인 앞에는 여자들이 면 가운을 느슨하게 걸친 채 각자의 목욕 바구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얼굴에 바르고 있었다. 가운의 바삭한 촉감은 늘 일정했고, 미나는 그것을 입고 의자에 앉을 때마다 이곳이 제공하는 균질한 안락함을 실감했다. 거울 속의 자신도 그 가운 덕분에 이 공간에 속한 사람처럼 보였다.


이제는 이 공간의 규칙이 몸에 먼저 와 닿았다. 미나는 이 클럽에서 ‘회원’이라는 말이 유난히 부드럽게 들린다는 걸 알게 됐다. 직원이 “회원님”이라고 부를 때마다, 그 호칭이 자신과 ‘일반 손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주는 것 같았다. 입구에서 두리번거리거나 지나치게 멋을 부린 차림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대개 하루 숙박객이거나, 기껏해야 큰 맘 먹고 십만 원짜리 빙수를 먹으러 온 카페의 손님들이다. 미나는 그들과 자신을 나란히 두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은근히 마음에 들었다.


사실 미나는 작은 외국계 회사에서 많지 않은 월급을 받으며 그럭저럭 사는 직장인이다. 처음 몇 주 동안은 이 공간이 제공하는 하염없는 풍요가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한번 쓴 수건이 무심하게 버려지고, 운동 양말까지 몇 개씩 가져가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이 친절하게 비치된 이곳에서 미나는 은근한 위화감을 느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지불할 수 없을 편안함이라는 점이 특히 그랬다. 그리고 더 신경쓰이는 것은 이곳이 비싸다는 사실보다, 비싼 것이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디올 로고가 박힌 운동화를 신은 여자들이 추리닝 차림으로 오가는 모습을 볼 때면 괜히 발끝을 한 번 더 내려다보게 됐다.


하지만 사람은 쉽게 적응했다. 그런 감각은 생각보다 빨리 무뎌졌다.


주차장에 들어설 때마다 더 확실해졌다. 얼마 전 리스로 무리해 산 미니 쿠퍼 때문에 남편과 한바탕 싸운 것은 괜한 짓이 아니었다는 것을. 외제차들이 늘어선 사이에서 미나의 차는 튀지 않았고, 부족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 사실만으로도 미나는 더 이곳에 소속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미나는 클럽에 있는 여자들을 유심히 관찰하는 편이었다. 대부분은 사십, 오십대로 보였고, 그 나이에 어울리는 여유를 몸에 두르고 있었다. 가끔은 자신과 비슷한 또래도,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도 있었다. 미나는 속으로 셈을 했다. 못생겼으면 아빠, 예쁘면 남편 돈이지. 스스로 돈을 벌어서 이곳에 있을 가능성은 애초에 떠올리지 않았다. 그런 여자들이 대낮에 사우나에 앉아 있을 리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운동을 마치고 일 층으로 내려오며 미나는 카페를 지나쳤다. 아메리카노 한 잔에 만 원이라는 걸 안 후부터는 카페 쪽은 쳐다도 보지 않고 있다. ‘나중에 한번 가보지뭐.’ 생각은 했지만 언제나 그 날이 오늘은 아니었다. 대신 식당으로 향했다. 남편의 법인 카드로 처리할 수 있는 점심, 설명이 필요 없는 지출이었다.


가방에서 편의점에서 사 온 라떼를 꺼내 한 모금 마셨다. 차가운 단맛이 입안에 퍼졌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도, 오늘은 제대로 된 점심을 먹어도 된다는 생각이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


식당에는 자리가 없었다. 대기 시간은 이십 분. 미나는 번호표를 받아 들었다. 짜증이 났지만, 이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곳은 원래 그렇다. 기다림조차 경험의 일부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리에 앉고 나서도 음식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정확히 얼마나 기다렸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미나는 물컵을 두 번이나 채워 마신 뒤에야 이 시간이 길다는 걸 인정했다.


미나는 초조해졌다. 이만칠천 원짜리 소고기 김치볶음밥과 구천 원짜리 커피를 시켜놓고 앉아 있는 이 공간은, 최소한 백 퍼센트가 아니라 이백 퍼센트는 마음에 들어야 했다. 이 정도를 쓰는 사람에게 이 정도 대접은 기본이었다.


잠시 망설이다 미나는 직원을 불렀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고, 말투는 단정했다. 불만을 드러내기보다는 상황을 확인하는 척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공간에서는 감정이 아니라 태도가 중요하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지나치게 공손한 말투는 오히려 이곳에 익숙하지 않다는 인상을 줄 수 있었다.


직원은 곧바로 사과했지만, 태도에는 미묘한 거리가 있었다. 충분히 친절했으나 더 다가오지는 않았다. 말 한마디, 시선의 각도, 몸을 기울이는 정도에서 이곳의 서열은 은근하게 드러났다.


미나는 괜히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지갑을 꺼내 정리하는 척했다. 누가 보라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신경 쓰였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화면을 보는 순간 숨이 막혔다. 받지 않으려다 결국 받았다.


“어, 엄마.”


목소리를 낮췄다. 짧게, 급하게. 병원비 얘기가 나오자 미나는 식당을 둘러봤다. 테이블마다 여유가 있었다. 이 공간에서는 돈이 늘 느리게 움직였다.


“지금은 좀 그래.”


나중에, 집에 가서. 통화는 서둘러 끝냈다.


휴대폰을 내려놓자 음식이 나왔다. 그럴듯한 그릇이었다. 김이 올랐지만 미나는 바로 먹지 않았다.


그녀는 안간힘을 써왔다. 친정의 궁색함을 가리고, 남들 사는 만큼은 사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아울렛에서 아버지에게 몽클레어 잠바를 사드렸고, 관심도 없는 명품 백과 벨트는 엄마에게 빌려줬다. 달마다 생활비를 보탰고, 강아지 병원비는 남편 몰래 송금하며 그 모든 걸 자연스러운 얼굴로 해냈다.


미나는 숟가락을 들었다. 천천히, 아무 일도 없다는 표정으로 맛본 김치볶음밥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그럴만도 하지. 가격이 얼만데.


오랜만에 부려보는 사치에 미나는 잠시 마음이 느슨해졌다. 재택근무 덕에 낮 시간은 비교적 자유로웠다. 월급은 적었지만 워라밸은 나쁘지 않았다. 이 시간에 식당에 앉아 있어도 회의 알림 하나 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느껴졌다.


결혼하고도 매일 출근하는 동기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대출 얘기를 할 때마다 말끝이 흐려지던 애들. 예쁘게 웃던 얼굴에 피로가 먼저 드러나던 순간들. 돈을 잘 번다는 골드미스 동창도 마찬가지였다. 성과급을 받아도, 연차를 쪼개도, 이런 평일 낮까지는 오지 못할 게 분명했다.


아직은 직장인이지만, 이쪽에 더 가까운 건 나라고. 언젠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쪽으로 가게 될 거라고. 그 생각이 은근히 기분을 좋게 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대로 갔을 때, 미나는 자연스럽게 법인 카드를 내밀었다. 직원은 잠시 화면을 확인하더니 짧은 정적 끝에 고개를 들었다. 개인 사용이 제한된 카드라는 설명은 담담했다. 사과도, 당황도 없었다. 이미 여러 번 겪어본 일처럼 자연스러웠다.


그 사이 계산대 뒤로 줄이 생겼다. 미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럼 제 카드로 할게요.”


말은 여유로웠지만 지갑을 여는 손놀림은 빨랐다. 개인 카드로 결제는 문제없이 끝났다. 영수증이 나왔고, 직원은 추가 설명 없이 그것을 건넸다.


“다음 이용 계획 있으시면 미리 말씀 주세요.”


정중한 말투였다. 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올지, 다시 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거울 속 자신을 보았다. 가운은 벗었고, 옷차림은 여전히 흠잡을 데 없었다. 표정도 연습한 대로였다. 자연스러웠다.


클럽을 나와 편의점에 들렀다. 라떼를 집으며 가격을 확인했다. 무의식적으로. 문득 엄마에게 보낼 생활비를 계산했다. 이번 달은 빠듯했다. 점심을 먹고 받은 가방 속의 영수증이 무거웠다. 하지만 미나는 안다. 자신에게 외제차와 비싼 점심이 필요한 이유를.


집에 돌아와 가방을 정리하다 클럽 수건 하나가 나왔다. 미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대로 세탁기에 넣는다. 돌려보낼 생각도, 버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

훔친 것도 아니고, 가진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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